에세이 <인생학교 - 섹스> / 알랭 드 보통(Alain de Botton), 정미나 / 쌤앤파커스, 240면/ 2013.5.2, 인터파크/ 2013.6.10~8.10

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 시리즈 중 유일하게 읽은 책이다.

언젠가부터 알랭 드 보통을 읽고 싶지 않아졌다. 아주 예전 처음 알랭 드 보통을 발견하게 해주었던 <섹스, 쇼핑 그리고 소설>(무려 1997년에 읽은!)에서의 경이로움은 그가 점점 인기를 끌어가면서 비례적으로 줄어든 것만 같다. 이번 책만 해도, 나는 책 앞뒤로 덕지덕지 추천서가 붙은 책을 참으로 혐오하는데, 무슨 목사님부터 스님까지 가세한 해설서들로 읽기도 전에 미리 이 책 참 좋은 책입니다, 라는 것을 새겨듣고 싶지 않기에 관심은 뚝 하고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읽었다. 왜냐, 주제가 섹스이니까.

(아, 이 책은 작년 여름에 읽었는데, 솔직히 다 읽고 나서 그래, 그래서 뭐, 하듯 아무 것도 기억에 남지 않은 책이었다. 정말 이상해서 오늘 다시 한 번 꺼내보았고, 이제야 리뷰를 쓴다.)

 

섹스는 예술과 닮아 있다. 민주적이거나 평등의 개념에 대입한다면 백퍼센트 그 반대에 서 있는, 독재적이고 빈익빈 빈익부의 시스템이다. 인류가 아무리 평등한 민주사회를 구조적으로 만들어왔다고 쳐도, 인간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인 성/본능 자체의 성향은 약육강식의 원시성을 바탕으로 하기에 오늘의 사회구조가 맘 먹은 대로 균등한 획일화된 무엇으로 진화되지는 않는 모양이다.

>> 성적 기벽을 없애려고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섹스는 결코 기대만큼 단순해지거나, 유쾌해지지 않는다. 섹스는 근본적으로 민주적이지도 친절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잔학성이라든가, 위반違反, 정복하고 모욕을 주려는 욕망 같은 것들과 관련이 깊다.(22면)

따라서 이 책의 주제는 현대인들의 성생활에서 오는 고독과 불안에 대해 당신 혼자 그런 것 아니니 안심하시고 편하게 지내세요, 이다. 그리고 섹스란 본래 좀 이상한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최선이라는 것.

어차피 결혼생활에서 우리가 원하는 세 가지 요소인 사랑, 섹스, 가족은 서로에게 잔인하게 영향력과 피해를 입히는 관계임을 인정하고, (침대 시트가 그러하듯-한 쪽을 제대로 펴놓으면 다른 쪽이 더 흐트러지거나 구겨지는) 완벽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완벽히 만족스런 섹스가 거의 드물듯이 완벽한 결혼생활 또한 드문 일이니, 이제 조금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고 삶이 특유의 잔인한 방법으로, 그리고 언제 어느 때고 자기 멋대로 우리에게 비참한 진실을 증명해 보여주기 전에, 냉정하게 삶을 마주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섹스라는 한 단어만으로 이토록 다양한 ‘썰’을 풀 수 있는 사람이 우리 시대에 알랭 드 보통 말고 또 있으랴 싶다. 책의 처음에 밝혔듯 이 책은 더 격정적으로, 더 자주 성관계를 가질 수 있는 요령에 대해서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그보다도 성욕이 지나친 문제, 혹은 섹스를 회피하는 문제 때문에 스스로를 비정상이라 여기는 사람들에게 그 고통을 조금이나마 편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어 하는 책이다.

그렇게 마음에 많이 남지는 않지만, 뭔가 진지하고나 다르게 생각할 여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책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