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 <장거리 사랑> / 울리히 벡(Ulrich Beck), 이재원, 홍찬숙 / 새물결/ 2012.12.26 인터파크/ ~2013.6.23

“사랑은 일종의 세속적 종교다. 자본주의 안에 있는 일종의 공산주의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은 황홀한 것이다. 그러나 장거리 사랑은 이와는 다른 아주 특별한 사랑이다. - 『장거리 사랑』 울리히 벡 이메일 인터뷰 / 2012. 12.19(수), 중앙일보

이 인터뷰를 읽고 산 책이다.

세상이 달라졌는데, 가족관계, 남녀관계가 안 바뀌는 게 이상하지 않을까?

이 책의 표지에 등장하는 문구들은 참으로 자극적이지만, 현실적이다. “결혼은 기피되고, 출산은 회피되고, 듣도보도 못한 온갖 남녀, 가족 관계들이 하룻밤 사이에 탄생하고 있다.”, “페이스북과 이메일, 카카오톡으로 이루어지는 사랑과 가족, 20세기의 ‘정상가족’은 난파 중이고, 21세기의 ‘세계 가족’은 닻을 올리고 있다.”....

굳이 남녀관계가 아니라 해도, 예전에만 해도 외국사람 혹은 외국에 살고 있는 사람과 커뮤니케이션을 나눈다는 게 좀 힘든 일이었나... 밤낮이 뒤바뀐 전화통화, 몇 주, 몇 달이 걸리는 편지와 소포... 지난한 과정을 뚫어야 간신히 ‘잘 살고 있다’는 안부를 들을 수 있었다. 불과 몇 년 전에는...

하지만 지금은 나만 해도, 스마트폰에 세계 각 도시에 있는 친구들의 시계를 저장해 놓고, 낮에는 아메리카 친구들과, 밤에는 유럽 친구들과 각종 페이스북, 카톡, skype, gmail 화상통화 등으로 안부를 챙기고 있다. 처음엔 세상은 생각보다 넓지 않다는 생각이 들고, 그 다음단계엔 세상 사람들은 정말 다 똑같구나 하는, 지금까지 단일민족 대한민국, 반도 나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해온 경계에 대한 이데올로기와 실존의 변화를 맞게 된다.

이 책은 대량유목생활로 접어든 오늘의 사회, 국제문제에서 남녀관계와 가족의 문제점을 들여다본 책이다. 울리히 백은 이미 여러 권의 사회과학서적을 통해 한국사회를 언급한 적 있는 독일의 사회학자라 이 책에서는 심심찮게 한국 사례도 나온다.     

이 책은 두 가지의 현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나는 남녀관계. 지리적, 문화적 근거리사랑에 비해 장거리 사랑의 결과가 애정과 남녀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앞으로 ‘거리’ 가 개입된 새로운 관계 형성 혹은 감정이나 개념의 변화는 어떠할지, 현실적으로 장거리의 연애에서부터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 간의 국제결혼에 대한 전망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둘째는 장거리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특히 비정상적 국제결혼에 따른 이주여성들의 문제, 저개발 국가 출신 여성들의 선진국 가사도우미나 대리모 역할로 야기되는 문제들은 세계화의 그늘을  드러낸다. 부의 분배나 경제, 윤리나 사회질서, 나아가 정체성과 고유성, 전통과 현대 등 모든 것의 거대한 혼합, 융합의 시대로 나아가는 현대화의 열차는 멈추지도 쉬지도 않는다. 그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속도에 몸을 맡기고 갈 데까지 가보는 것? 

 

>>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지금까지 밀접하게 결합되어 있던 세 개의 실존적 구속 요인 - 장소, 국가, 가족 - 이 이제 서로 분리되어 별개의 요소가 되어간다는 것이다.(33면, 1.정상가족은 어떻게 세계가족으로 바뀌는가)

>> 오늘날 파트너 선택의 특징 중의 하나는 가능성의 범위가 엄청나게 확대되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랑의 한계의 세계가 사랑의 기회의 세계로 바뀐 것이다. (89면, 3. 사랑이 버틸 수 있는 거리는 얼마 만큼일까?)

>> 사랑은 예나 지금이나 늘 상상된 사랑이었다. 사랑은 본질적으로 머릿속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터넷 사랑에서 특별한 점은 그것이 오로지 머릿속에서만 일어난다는 것이다. 인터넷은 사랑의 연결/응집 상태를 바꾸어놓는다. 그것은 첫째로 참여자의 육체적 부재를, 둘째로 접촉의 익명성을 가능하게 한다. 그리하여 셋째로 환상이 부추겨지고 넷째로 ‘영원히 구속될 것인지, 아니면 더 나은 것이 있지 않은지 검토해보라’는 최적화 명령이 관철될 수 있다. 인터넷 사랑의 비육체성과 인터넷 만남이 보장하는 익명성은 사랑을 찾는 행위의 낭만성을 고양시킬 수 있다. 그러나 또한 제동 장치를 풀어버릴 수도 있다. (91면, 3. 사랑이 버틸 수 있는 거리는 얼마 만큼일까?)

>> ‘행복한 결혼’의 비밀은 무엇일까? 결혼에서 행복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이 불행해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대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111면, 3. 사랑이 버틸 수 있는 거리는 얼마 만큼일까?)

>> 전 세계적인 화장품 산업 헤어 디자인 산업, 주름제거 산업은 컨베이어벨트에서 생산하는 듯이 개인적인 자기연출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온 세상에 자기를 입증하는 결정은 파트너 선택이다.-그것은 필요할 때 요청할 수 있는 상품과 같다(Elizabeth Gilbert 2010) (115면,  3. 사랑이 버틸 수 있는 거리는 얼마 만큼일까?)

>> 우리 세계의 근본적 특징은 사회적 불평등이다(Beck/Poferl, 2010) (127aus, 4. 세계시장, 세계종교, 세계위험, 세계가족)

>> 사랑과 가족은 한 장소에 함께 살아야 한다는 구속력을 잃고 세계의 다양성 속에서 행복을 찾는다. 그리하여 지리적으로 떨어진 장거리 사랑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떨어진 장거리 사랑이 생겨난다. 사랑의 지평 속에서 ‘이거 아니면 저거’-여기가 아니면 저기이고, 우리가 아니면 그들-의 이항대립이 사라진다. 극복하지 못할 분리선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피부색 차이도, 국적도, 종교도, 나라와 대륙 간 거리도 더 이상 분리선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반대로, 지구거리 만큼 떨어진 곳의 타자에게 사랑의 새로운 무한정 가능성이 지펴져서 그에게 이끌린다. 사랑에 날개가 돋아난다. (290면, 9. 함께, 그러나 또 따로)

>> 남성 부양, 여성 돌봄의 젠더 차이와 관련된 근현대 핵가족의 지반 밑에서 끓고 있는 마그마는 다름이 아니라 바우만 역시 근대성의 핵심이라고 지적한 바 있는 개인주의이다.(바우만, <위험사회> 55면)(335면, 옮긴이 후기 중)

>> ‘세계시민정치화’란 내 삶의 구석구석에서, 심지어는 내 몸의 장기구성과 내 아이에 대한 사랑에서마저 타자의 흔적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335면, 옮긴이 후기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