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에세이 <저스트 키즈 JUST KIDS> / 패티 스미스(Patti Smith), 박소울/ 아트북스 / 2012.9.28(1쇄), 2012.12.17(2쇄)/ 인터파크 12.17/ 2013.01.22 다 읽음

오! 오! 오! 오!.........주말부터 읽기 시작한 패티 스미스Patti Smith의 자서전 '저스트 키즈 Just Kids'를 다 읽었다. 한동안 열병을 앓을 것만 같은 예감.아주 오래 전 로버트 메이플소프 Robert Mapplethorpe의 사진집에서 (그의 이성친구인) 패티 스미스의 중성적인 사진을 처음 본 이후 이들의 신비로운 사랑 이야기는 처음 제대로 읽게 되었다. 할 말을 잃었다. 아름답고 슬프고, 우주 속 홀로 반짝이는 한 쌍의 푸른별과 같은.... 뮤지컬 <렌트>도 생각나고... 1960-80년대 뉴욕 문화계의 분위기가 실감난다. ...이런 인연, 이런 예술........이라면! ..... 리뷰는 나중에.

라고, 1월 22일 페이스북에올려놓은 이후로, 리뷰를 쓰지 못한 이 책을 12월에서야 다시 들여다본다.

그 동안 패티 스미스는 한국을 방문하여 악스홀에서 공연을 했지만, 일정상 가보지 못했다.

예술가의 삶이란 이래야 한다는 지표가 있다면 참으로 근접해 보이는,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삶인 사람들이다.(심지어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삶은 극적이기까지 하다) 시대의 ‘멋쟁이’이자 문화적 아이콘으로 각자 숭앙을 받은 패티 스미스와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생과 사를 넘는 인연으로 강하게 묶인 사람들이다(“아무도 우리처럼 될 순 없어, 패티.” 그가 다시 이 말을 했다. 로버트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시공간이 멈춘 듯 이 세상에 둘만 있는 것 같았다. - 140면). 1946년생 동갑내기로 연인관계였던 두 사람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동성애를 통해 각자의 길을 걷지만, 동반자의 길을 포기하진 않았다(Separate Ways Together). 1989년 로버트 메이플소프는 에이즈로 사망한다.

특히 대단한 문장가이자 시인인 패티 스미스는 2010년 이 책을 발간하고 그해 내셔널 북어워드 에세이 부분을 수상한다. 이 자서전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우리 귀에 익숙한 예술가들, 가수들, 화가들, 사진가들, 패션디자이너들, 브로드웨이 배우들, 감독들이다. 밸뱃 언더그라운드, 밥 딜런, 샘 셰퍼드... 아마도 1960~80년대의 뉴욕 문화계의 문화지도라 불러도 될 만큼 뉴욕에서 활동하던 예술가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큰 재미다.

왠지 지금 이 시대에는 결코 복제할 수 없는, 그 시대에서만 가능했을 것 같은 오리지널한 예술가상을 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예술가란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 25면

>> 로버트의 미소는 항상 어떤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했다. - 29면

>> 스무 살에 나는 버스에 올랐다. 면바지에 검은 터틀넥 셔츠, 전에 캠던에서 산 회색 레인코트를 입고 있었다. 노란색과 빨간색 체크무늬가 쳐진 조그만 여행 가방엔 연필과 공책, 『일뤼미나시옹』, 옷 몇 벌, 가족사진이 들어 있었다. 미신을 믿는 나는 오늘이 월요일이고 나도 월요일에 태어났으니까 뉴욕에 가기엔 딱 좋은 날이라 믿었다. 아무도 내가 가는 줄은 모르지만, 모든 것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 41면

>> 마주 앉아 그림을 그리는 동안 우리가 서로 느꼈던 행복감이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몇 시간이고 시간을 잊고 작업에 몰두하곤 했다. 오랫동안 작업에 몰두하는 그의 집중력이 전해져 나 또한 그의 곁에서 하나둘 배워가며 작업을 해나갔다. 잠깐 쉬고 싶을 땐 물을 끓여 커피를 타 왔다. - 80면

>> “아무도 우리처럼 될 순 없어, 패티.” 그가 다시 이 말을 했다. 로버트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시공간이 멈춘 듯 이 세상에 둘만 있는 것 같았다. - 140면

>> 그날 밤 너무 신났던 나머지, 무한한 가능성들이 머릿속에서 소용돌이쳤다. 어린 시절 그랬듯 천장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끊임없이 진동하는 패턴들이 물결을 이루며 공간 속으로 사라져갔다. 내 인생의 만다라화였다. - 143면

>> 고작 몇 달러를 썼을 뿐인데도 우리 둘은 행복해졌다. 손을 꼭 잡고 집으로 향했다. 나는 문득 손을 놓고 앞서 걸어가는 그를 지켜보았다. 세일러복을 입은 그의 모습은 언제 봐도 멋졌다. 언젠가 지금처럼 나는 멈춰서 바라볼 테고 그는 계속 앞을 향해 걸어갈 걸 예감했다. - 145면

>> 고등학교 시절 가수가 되기를 동경했던 많은 소녀들은 결국 동네 미용사가 됐다. - 187면

>> 촬영할 때의 로버트는 「욕망」의 주인공 데이비드 헤밍스를 많이 닮았다. - 257면

>> 지그펠트 극장과는 전혀 다른 세계였다. 화려하지 않은 이 세계는 우리에게 더 친밀했고, 정말 우리가 속한 곳으로 느껴졌다. 밴드가 연주하는 동안 당구공이 큐대를 맞추는 소리와 조너선이 짖는 소리와 맥주병 부딪히는 소리가 섞여 드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별들이 춤을 추고 천사들이 합창을 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 308면

>> 까만 플랫슈즈를 신고, 핑크 색 카프리 바지에, 진녹색 레인코트를 입고 보라색 양산을 들고서 톰이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시네마빌리아에 들어섰다. - 309면

>> 그 당시를 추억할 만한 일들이 많다. 지린내와 맥주 냄새, 리처드 로이드와 톰 베를레인이 기타로 함께 연주하던 「킹덤 컴」, 레니가 ‘개척 지대’라 불렀던, 조니가 자신의 길을 개척해나간다는 내용의 「랜드」를 공연하면서는 나를 가두고 있던 락커룸에서 뛰쳐나와 와일드 보이들이 점령하고 있는 불온한 밤을 극복하고 무한한 가능성의 바다를 향해 달려나가는 느낌이었다. - 315면

>> 하지만 로버트와 나는 서로의 작품을 여행하는 맨 처음 사람이었고, 둘만의 공간을 꾸며 나갔다. 그가 없는 세계를 걸어 나갈 때 나는 눈을 감고, 가죽 조끼를 벗고 내 손을 잡고 서 무한히 펼쳐진 새로운 대륙으로 나와 함께 걸어 들어가는 그의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 330면

>> 언제나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잃어버린 무언가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정작 우리는 약간 후회만 하고선 어떤 기억을 서랍 속에 넣고 영원히 묻어버리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느 날 우연히 오래된 손수건 속에 넣어 고이 간직해둔 조개껍질이나, 의미 있는 돌멩이를 발견하게 되면 우리는 어느 오후 행복했던 한 때를 추억하게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