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김탁환의 원고지/ 황소자리/ 2011.11.5(1쇄) / 11.5~11.27

소설로 가득 찬 동굴 속의 ‘글곰’으로 살아가기

  소설가 김탁환의 10년 간의 창작일기다. 아주 오래 전 <허균, 최후의 19일>을 잠시 읽은 것 빼고는 이 작가의 책을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다. 그러나 15년 간 그의 이력을 빼곡하게 채운 리스트를 보니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 <황진이>, 영화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등을 쓴 원작자로서 그가 만든 이야기들은 비록 글로 읽지 못했을 뿐 은근 우리의 눈과 귀를 채우면서 생활 속에 들어와 있었던 것 같다. 

  작가도 성향에 따라 글 쓰는 스타일이 다 다르겠지만, 이 일기에 기대어 보면 김탁환은 삶과 글쓰기가 구분되지 않는, 그리 흔치 않은, 성실한 생활형 작가임에 틀림없다. 마치 김원우나 안정효의 일기문을 읽었을 때처럼 그의 하루와 그의 시계는 글쓰기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하고, 그는 마치 문장을 먹고 살아가는 동굴 속 ‘글곰’(글쓰는 곰)처럼 보인다.

  특히 역사를 소재로 한 그의 대부분의 소설들은 단순한 글솜씨나 어떤 여흥에 의한 글이 아니라, 공부하고 연구해야만 간신히 누에실마냥 조금씩 그 실체를 보여주는 역사라는 흙덩이를 빚고 또 빚어 만들어내는 도자기와도 같은 결과물들인 것이다.

  창작의 고통마저 객관적인 견자의 눈으로 지켜보고 때를 기다리고 컨트롤하면서 한걸음 한걸음 스스로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 마흔 중반쯤 된 지금의 그가 그의 인생의 어디쯤 서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공이 산을 옮기듯 어느 날 문득 김탁환은 스스로 쌓은 산 위에 우뚝 거인으로 서있지 않을지….

  100퍼센트 예술가로서만 살고 싶다는 사람, 답사를 다녀와서는 좋은 글은 발바닥을 통해 나온다고 말하는 사람, 스스로 글을 앓고 책으로 사는 문화주의자라고 선언하는 사람. 부럽도록 스스로의 작업에 푹 빠진 한 소설가의 삶, 책을 읽다 보면 ‘성실’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된다. ‘너 스스로 뜨거워본 적 있느냐’는 표현처럼 나는 얼마나 내 삶에 치열한가, 얼마나 미쳐 있나, 이루고 싶은 것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또 다가가고 있는가 등과 같은 질문과 함께…. 

 

 

	▣ 소설가들이 창작과정에서 병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초고를 쓸 때가 아니라 그 초고를 다듬을 때이다. (2000.10.3 / 17면) ▣ 우선 많이 먹는다. 사실 퇴고를 잘 하려면 체력이 중요하다. 지치면 그만큼 문장들을 대충 보게 되기 때문이다. 퇴고하는 동안 살이 많이 쪘다가 원고를 완전히 넘긴 후부터 살을 빼는 생활이 반복되고 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또 찌고 있다. (2003.4.17/ 96면)   ▣ 천천히, 꼭 이야기로 만들어야 할 것들만 만들며 글곰(글쓰는 곰)으로 제대로, 살아봐야겠다. (2004.3.28/175면) ▣  오늘은 풍납토성, 몽촌토성, 아차산성을 둘러보았다. 답사는, 언제나 그렇지만, 즐겁다. 좋은 글은 발바닥에서 나온다. (2005.9.27/ 222면) ▣ 그래 나는 글을 앓고 책으로 사는 문화주의자다.(2005.11.10/ 230면)   ▣ 집필실을 마련했다. 100퍼센트 예술가로 살겠다. (2005.11.25/223면) ▣ 집중 집중 또 집중할 것! 삶은 문장 속에 있고 나머지는 모두 사소하다. (2008. 3.18/263면)   ▣ 단순함의 힘. 쓰는 시간 그리고 쓰는 것을 준비하는 시간, 이것 외에 작가에게 필요한 시간이 무엇이 있나. (2008.11.19/ 274면) ▣ 8주 연재를 마쳤다. 전체의 l25퍼센트 정도가 끝난 것이다. 아직 75퍼센트가 남았다. 좀더 집중하자. 강의와 연재를 병행하는 일이 쉽지 않다. 아프면 안 되고 잡생각 해도 안 되고 술 너무 많이 마셔도…. 기쁘게 갇히자 기쁘게. (2009.3.1/27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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