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여행에세이/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 안도 다다오/ 이기웅/ 오픈하우스/2011.6.1(1쇄)/ 2011.7.25. 인터파크/ 8.30~11.6

극한의 건축가, 안도 다다오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으로 파리를 동경하기 시작한 건 1965년 23세 때였다. 10대의 마지막 무렵 헌책방에서 처음 그의 작품집을 발견했다. 그 책값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내가 간단히 살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나는 책을 손에 쥐고 시간 흐르는 줄 모르고 서서 봤다. 그날은 다른 사람이 사갈까 봐, 산처럼 쌓인 책 더미 제일 밑에 슬그머니 숨기고 돌아왔다. 다음날 찾아가자, 그 책이 제일 위에 놓여 있었다. 다시 맨 밑으로 숨겼다. 다음날 가보면 다시 맨 위에 나와 있다. 다시 숨겼다. 그런 실랑이를 반복하다, 아르바이트비를 모아 그 작품집을 손에 넣은 것은 결국 한 달 후였다.”(26면, 파리1. 건축의 빛을 구하여)

 

1965년, 르 코르뷔지에를 동경하던 스무 세살의 일본 청년 안도 다다오는 르 코르뷔지에를 찾아, 파리를 찾아 해외여행에 나선다. 일본에서 일반인의 해외여행 자유화가 시작된 이듬해였다.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은 청년은 요코하마에서 배를 타고 나훗카로 건너간 후 시베리아 철도를 타고 다시 모스크바를 거쳐 5개월 만에 꿈에 그리던 파리에 입성하게 된다.

 

쌍둥이에 권투선수 출신인 안도 다다오라는 한 청년의 건축 인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독학으로 건축을 공부해 지금은 세계 건축계에서 ‘안도 스타일’이라는 특별한 조류를 만들었을 만큼 세계적인 거장의 반열에 들어선 안도 다다오. 그를 건축으로 이끈 것은 이렇듯 르 코르뷔지에였지만, 그가 건축이라는 항해를 일생을 걸고 유지해올 수 있었던 저력은 바로 여행이었노라고 고백한 책이 바로 이 <안도 다다오의 도시방황>이다.  

이 책은 스무 세살부터 시작된 안도 다다오의 건축 인생을 여행이라는 방랑기를 통해 설명하는 독특한 형식의 에세이다. 파리, 바르셀로나, 밀라노, 뉴욕, 로마, 베를린, 아테네, 베네치아, 지브롤터, 이스탄불, 러시아, 마르세유…, 이들 도시로의 여행은, 아니 그 도시 안의 건축과 역사를 통과해내는 안도 다다오식 여행은 그의 삶을 격렬하게 흔들었고, 사고를 해방시켰으며, 결국 여행을 통해 ‘인간의 골격’을 갖췄노라고 고백하게 한다.

책 속에 녹아난 안도 다다오의 모습은 완벽한 예술가 그 자체다. 그는 누구보다도 스스로에게 엄격하였고, 그러한 극한의 체험을 통해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그만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것 같다.

 

“일견 단순히 보이는 구성 속에 복잡한 공간을 내포한 건축을 추구해온 나에게 그러한 형태들은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쳤으리라. 동시에 그런 극한의 형태로부터 무릇 창조자이고자 하는 자는 자신을 항상 극한의 상태로 내몰아야 한다는 사실을 배운 것 같다. 그 사실은, 일도 없이 항상 뭔가에 쫓겨 지내던 스무 살 무렵의 나와 지금까지도 결별하지 않고 유지할 수 있는 끈이기도 하다. 적어도 내 몸무게는 열여덟 이후로 변하지 않았다. 복싱을 할 무렵에는 시합 때문에 한 달만에 6킬로그램 가량 감량한 적도 있지만, 그때를 제외하고는 내내 63킬로그램이다. 불안과 긴장 속에서 창조성을 모색하기 시작한 시절의 육체와 정신을 그대로 간직하기 위해서도 나는 이 63킬로그램이라는 체중을 죽을 때까지 유지할 작정이다. 그게 불가능해졌을 때 나는 단연코 내가 아니리라.”(48-49면, 4. 밀라노, 보스턴, 형태의 극한)

책을 읽다 보면 건축이란 단순히 집이나 건축물을 짓는 행위 그 자체가 아니라, 안으로는 한 인간 내면의 깊은 고뇌와 사색, 철학과 감성, 치열과 투쟁 등의 결과물이고, 밖으로는 한 도시의 개성을 책임지는 예술가이자 조물주의 세계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좀 더 빨리 달려! 뒤돌아볼 필요 없어! 전속력으로 달리다보면 안 보이던 게 보이게 돼 있어. 나 간다!” (소설가 가이코 다케시가 안도 다다오에게, 1980)

지금의 위치에 선 안도 다다오는 안 보이던 그 무엇을 이제는 찾았다고 생각할까? 이 책에 의지해 볼 때 그는 단연 ‘no’ 혹은 ‘not yet’이라고 대답하지 않을까? 그리 길지 않은 문장 안에 정신과 철학을 온전히 녹여 넣은 안도 다다오의 이 에세이는 그의 건축과도 참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