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내라는 이름을 떠올릴 때마다 이성복을 떠올리고, 구반포 통닭집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김현과 황동규가 떠오른다면 너무 오래된 정서일까? 이상하게 오랫동안 마음에 남아 있는 연결 이미지들이다. 

나는 박형준을 떠올리면 명지대 앞이 떠오른다. 자주 가는 곳은 아니지만 아주 우연찮게 지나칠 때면 명지대=박범신보다 명지대=박형준이 더 사실적으로 여겨져 한 번씩 더  떠올려본다. (들은 바에 의하면 그는 얼마 전부터 명지대가 아닌 동국대로 학교를 옮겼다고도 하지만) 

 

한 시인이 한 지역에 뿌리 깊은 인상을 심어 놓는 것은, 그가 의도하든 아니었든 그의 영역이 되어버린다.(물론 모두에게가 아닌 독자 혹은 몇몇 사사로운 기억을 가진 사람들에게만이겠지만)

박형준의 새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에도 명지대 앞 지하방과 낮은 아파트가 자주 배경으로 등장한다. 시인과 시와 공간과 지역이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사슬로 묶여버린 것이다.

해설을 쓴 강정의 표현에 의하면 박형준은 "다사다난한 감정의 일렁임조차 일상 사무들의 범상한 형상에 투과해 부드러운 물질로 정화시키는 마력을 그의 시는 지니고 있다"라고 한다.

 

이 시집을 읽으면서, 뭐라고 할까,,,  지금까지 서정시, 혹은 서정성을 품은 시를 쓴 한 세대의 마지막 자리쯤에 박형준이 있지 않을까 하는...그를 마지막으로 서정의 시는 세대구분을 하게되지 않았는지,, 그러니까, 고향이라든지 아픔, 아름다움, 작은 것들 등에 마음을 빼앗겨 온 순박하고 옛스런 감정과 정서를 지닌 마지막 세대 같다는,, 정확하지는 않을지 몰라도 아마 그러할 것이다. (얼마 전 연희문학창작촌에서 열린 젊은 작가와의 대화에서 그야말로 젊은 작가인 오은 시인과의 대담을 들으면서 더욱 더 확인된 바이지만)     

 

박형준 시인의 시를 리뷰하기는 주저스럽고 마음에 드는 시 한편 옮긴다.

박형준 시인의 시 낭독회가 오는 9월 29일 7:30, 연희문학창작촌의 연희목요낭독극장 9월 무대에서 진행된다. (무료^^)

 

 

가슴의 환한 고동 외에는

 

가슴의 환한 고동 외에는 들려줄 게 없는

봄 저녁

나는 바람 냄새 나는 머리칼

거리를 질주하는 짐승

짐승 속에 살아 있는 영혼

그늘 속에서 피우는

회양목의 작은 노란 꽃망울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눈꺼풀에 올려논 지구가 물방울 속에서

내 발밑으로 꺼져가는데

하루만 지나도 눈물 냄새는 얼마나 지독한지

우리는 무사했고 꿈속에서도 무사한 거리

질주하는

내 발밑으로 초록의 은밀한 추억들이

자꾸 꺼져가는데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박형준/ 문학과 지성사 시인선 394/ 2011.7.7 펴냄/ 2011.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