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한지를 다 사서 탐독한 이래 아주 오랜만에 주문하여 읽은 이 시대의 벽화를 그리는 사람 중 한 명인 이문열 그의 장편소설 리투아니아 여인을 읽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그가 거대한 문화권력의 교체와 변동 속에서 부당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고 본다. 한 세대가 다시 지나면 그에 대한 평가가 다시 달라질 것이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감동이다.... 고교시절 레테의 연가나 사람의 아들 같은 소설을 읽었을 때 그 잔잔한 여운이 느껴진다. 역시 그는 천부적인 소설가이자 세계가 인정하는 이 시대의 작가 중 한 분이다. 전편을 휘감는 이국적 색채와 우여곡절이 가져다 주는 감동, 소비에트노농적위대가 몰려오는 상황에서 소국 리투아니아에 남아 있는 혜련의 외할머니가 그 死地에서 선택을 해야만 했던 어머니의 마음과 그것을 추궁하기 위하여 답을 듣기 위하여 몇십년을 돌아 찾아온 리투아니아 딸들, 영혼 없는 결혼생활이 가져다주는 파탄의 모습들. 끊임없이 이어지는 나와 혜련(헬렌 킴)의 만남과 이별-물론 이별이라 하기 어려운 것이지만, 그들은 연극연출, 음악에서 뮤지컬로 시선을 옮기게 된다. 임화의 딸 혜란의 이야기도 빠뜨릴 수 없는 흥미와 애절함을 독자에게 준다. 비록 6.25 동란 당시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군의 선전대와 전라도로 남진하는 인민군부대에 각 소속된 임화와 그의 딸이 대전에서 이별하여 각 남진하지만 이후 처참하게 부서지는 그들의 운명과 함께 임화의 아름답고 슬픈 시 '너 어느 곳에 있느냐' 가 배영기라는 연출 겸 극작가의 입을 통하여 뉴욕에 있는 어느 퍼브에서 언급된다. 대학 1학년 시절 문학의 이해 시간에 백석과 임화에 대하여 강의하시던 국문과 교수님의 목소리가 귀에 선하다. 그들의 선택이었지만 결국 해방공간의 피해자로서 불운한 일생을 보내거나 박헌영 일파와 함께 처형을 당하는 그들... 공산주의자들을 혐오하지만 임화의 시는 가슴을 시큰거리게 하는 구석이 있다. 너 어느곳에 있느냐... (사랑하는 딸 혜란에게) 임화(林華) 아직도 이마를 가려 귀밑머리를 땋기 수집어 얼굴을 붉히던 너는 지금 이 바람 찬 눈보라 속에 무엇을 생각하며 어느 곳에 있느냐 머리가 절반 흰 아버지를 생각하여 바람 부는 산정에 있느냐 가슴이 종이처럼 얇아 항상 마음 아프던 엄마를 생각하여 해 저므는 들길에 섰느냐 그렇지 않으면 아침마다 손길 잡고 문을 나서던 너의 어린 동생과 모란꽃 향그럽던 우리 고향집과 이야기 소리 귀에 쟁쟁한 그리운 동무들을 생각하여 어느 먼 곳 하늘을 바라보고 있느냐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벌써 무성하던 나뭇잎은 떨어져 매운 바람은 마른 가지에 울고 낯익은 길들은 모두 다 눈 속에 뭍혀 귀 기우리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얼음장 터지는 소리 아버지는 지금 물소리 맑던 락동강에서 악독한 원쑤들의 손으로 불타고 허물어진 숱한 마을과 도시를 지나 우리들의 사랑하던 서울과 평양을 거쳐 절벽으로 첩첩한 한과 천리 장강이 여울마다 우는 자강도 깊은 산골에 와서 어데메에 있는가 모를 너를 생각하며 이 노래를 부른다 사랑하는 나의 아이야 <...> 전선으로 가는 길 역에서 우리는 간단 말조차 나눌 사이도 없이 너는 전라도로 나는 경상도로 떠나갔다. 좌우가 분열되어가는 작금의 현실에서 어쩌면 또 한 번의 전쟁을 치루어야 할 지 모르는 이 상황이 그때처럼 되지 않기만을 하나님께 기도드릴 뿐이다. 그리고 내 가슴 속에 작게 요동친다. 나도 무언가 쓸 수 있지 않을까, 출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작은 착각. 초보작가적 상상력이 나래를 편다. 아래 사진은 소설표지, 더 밑의 사진은 임화의 젊은 시절 모습이다. 당대의 배우이자, 시인이자, 극작가로서 다재다능한 화려한 미남이었다. 그가 공산주의자였다는 것이 너무나 아쉬운 일이라 생각된다. 임화의 처형 후 그의 미모의 아내 지하련은 막내아들 손을 잡고 평양거리를 실성하여 배회하다가 불행히 죽었다고 전해진다. 인민군으로서 전라도로 내려간 임화의 딸 혜련은 빨치산이 되었다가 그 후의 행방을 알 수 없다. 소설에서 배영기는 가능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위의 임화의 시를 아리아로 하여 뮤지컬을 만들고자 시도한다. 일독을 권하는 소설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하는 소설, 리투아니아 여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