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에 타이밍이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냐 마는 내게는 책도 그러하다. 한 권의 책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평가를 받았느냐보다는 오히려 내가 어떠한 시기에 어떠한 마음으로 그 책을 접하게 되었는지가 내게는 더 소중하다.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 해를 시작하는 시점에 만나게 된 이 책은 좋은 시간과 기억으로 남았다. 화려한 색감 속으로 메시지를 숨겨 놓기라도 한 것처럼 보이는 사진들은 물론이고, 행간의 여백과 절제가 주는 여운은 반갑게도 근래 일상에서 좀처럼 누려보지 못한 마음의 여유로 찾아와 준다.

   이 에세이집은 우리에게는《화(Anger)》로 친숙한 베트남 출신의 틱낫한(Thich Nhat Hanh) 스님의 신작으로 1년을 53주로 나눠 한 주마다 자기성찰에 도움이 되는 글귀와 사진을 담고 있다. 53개의 글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며, 여기서 말하는 '있는 그대로'는 '지금 이 순간'에 가 닿는다.

   너무 과거에 얽매어 있거나, 이와는 반대로 오로지 미래에만 집중하다 보면 지금 이 순간을 놓칠 수밖에 없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월의 흐름은 빠르기만 한데, 그 속에서 중심을 잡지 못하면 현재를 제대로 응시하지 못해 그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또 현재를 보다 온전하게 즐길 방안을 찾기도 어려워진다. 그럴 때일수록 잠시 한 발 물러서 한 박자 천천히 가는 것도 분명히 하나의 방법일 텐데 우리는 그것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매일매일 죽도록 안간힘을 쓰며 아등바등 거리며 살아갈 필요는 절대 없다는 것을 잘 아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는 그 경이로운 사실을 바쁘고 고된 일상에서 곧잘 잊어버리기도 하고, 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애써 무시하며 살기도 하지만,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숨 쉬며 살아가는 매 순간순간이 반짝이는 보석'과 같고 우리 각자의 삶은 지금 그대로도 지극히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스님께서는 '행복의 감정을 깨닫고 누리다 보면 어느새 일상에 파묻혀 속절없이 지나는 순간들이 기쁨의 순간으로 바뀌어 갑니다.'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나는 일상의 고단함에 가려지고 또 지워져 버렸을지 모를 내 몫의 기쁨의 조각조각을 이제부터라도 꼭 붙들어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