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짓느라 도서 구입비가 없고 학교 인프라 늘리느라 정작 학생들 급식 보조할 돈이 없고 오디오 콤포넌트 사느라 앨범 살 돈이 없다. 전부 토건 시대의 '뽀다구' 문화의 잔재인 셈이다. 21세기 들어 우리는 하드웨어 시대를 극복하고 소프트웨어 시대를 맞는다고 했는데 죄다 말장난이었던 셈이다. (p. 293)"
2000년대 초반부터 문화예술계에도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고, 보조금 없이는 존립 자체가 불투명한 이 분야는 4대강 사업을 비롯한 토건사업으로 말미암아 철저히 소외됐다. 정부의 지원은 줄고, 해고와 비정규직화로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신분은 불안해졌고, 경기 침체로 가계의 문화비 지출은 줄어들었다.
이 책은 신자유주의와 토건 산업에 밀린 우리 문화산업 전반을 방송, 출판, 영화, 음악, 스포츠 총 5개 분야로 나눠 문제점을 짚고 대안을 제시한다. 어느새 국가 패권주의와 결합해 수출역군으로 치부된 '한류 열풍'과 그 의미를 재조명하는 이 책은 고용을 전면에 내세우고 문화와 노동경제학을 연관 지어 더 많은 20대 젊은이들이 제 목소리를 내게 하고, 바로 이들이 '문화로 먹고살 수 있는' 문화생태계를 만들(어주)자는 주장을 담고 있다.
산업화 시대 이후에는 더 많은 청년들이 문화경제 부문에서 활동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합의할 수 있는 기본 원칙이고, 실제로 문화 서비스 분야의 고용유발 효과가 자동화된 산업체 공장에 비해 몇 배나 높다. (P. 96)
향유의 대상이자 수단으로서의 문화는 그 특유의 매혹적인 향과 아름다움이란 측면에서는 장미에 비유할 수 있겠지만, 밥벌이 수단으로서의 문화는 장미 그 자체가 아니라 장미에 난 가시에 불과하다. 문화산업 종사자는 창의성과 오리지널리티, 그리고 계속하여 그것을 추구해나갈 수 있는 집념과 끈기가 필요하다는 면에서 다른 산업과 차별화되는 면이 있는데,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경제성장을 이루는 탓에 문화 자체가 오랫동안 홀대된 우리 사회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그 '고됨'은 더욱 크다.
방송, 출판, 영화, 음악 등 현재 우리나라의 전반적인 문화산업이 어느 지경에 이르러 있는지는 새로울 것도 없지만, 이렇게 온갖 수치를 통해 재확인 하다 보니 새삼 울적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 땅에서 '문화'로 먹고 살기란 상당히 어려우며, 경우에 따라서는 오직 '밥'만 먹고 살수 있다거나 아니면 아예 '밥'조차도 먹기 어려워 죽어가는 이들이 생기고, 아니면 책에도 나오는 것처럼 먹고 살기 위해 낮에는 다른 업에 종사하고, 밤이 되어서야 본업인 자신의 꿈을 좇는 이들도 많다.
다른 제조업에 비해 에너지와 자원이 적게 투입된다는 장점에도, 이리 치이고 저리 치여온 문화산업에 좀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기울여 재능 있는 20대 젊은이들이 부귀영화를 꿈꾸는 것도 아니니 최소한 굶주림에 대한 공포나 걱정 없이 자신의 꿈을 좇을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만 하는데 우리는 아직도 문화산업에 대한 지원이나 관심이 형편없을 정도로 저조할 뿐 아니라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방법과 과정 또한 더없이 미숙하다.
우리가 신경 쓸 것은, 우리 문화를 성공적으로 산업화하여 얼마나 수출할 것이냐가 아니라, 생산자든 기획자든 문화를 업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세끼 밥을 제대로 챙겨먹는가, 그리고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빚더미에 올라 앉아 자살을 고민하지는 않는가······ 그런 것들이 아닐까? 맨 앞줄의 선수들도 세끼 밥을 보장할 수 없다면 번영은커녕 대를 잇기도 어렵다. 우리는 문화를 팽창의 논리로만 보았지, 재생산의 눈으로는 보지 않은 것 같다. 누군가 일일이 조정하거나 기획할 필요는 없다. 다만 더 많은 젊은이들이, 더 많은 여성들이 문화 영역으로 들어오고, 그들이 좌절하지 않고 정상적인 생활인의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면 된다. (p. 34)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문화산업과 그 종사자들에 대한 기본적인 사고 혹은 선입견도 과거에서 크게 벗어나 있지 못하다. 나 또한 문화산업 종사자 중 하나로, 이 책을 읽으면서 씁쓸하다 못해 괴롭기까지 했다. 왜 많고 많은 직업 중에서 하필이면 '배고픈 직업'을 택했느냐고 근심 어린 눈길로 물어보는 이들이 그러한 일차원적인 걱정은 할 필요가 없는 시대와 사회가 되어야 한다. 형편없이 적은 월급과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한 고용체제에서 양질의 문화(또는 콘텐츠)를 생산해내고 외국으로 수출해 돈을 벌어오라고 부추기고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에 불과하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젊은이들이 기꺼이 이 모든 고생을 감내하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실질적으로 그들에 대한 수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큐 『개청춘』에서 막내 방송작가와 친구가 기성 PD 중에서 누군가가 죽어야만 겨우 한 자리 난다는 이야기를 지나친 과장이라고만 볼 수 없는 것이 우리가 사는 이 시대이고 현실이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그들에 대한 수요는 많지만 그들의 노동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지만.
책은 다른 문화와 경쟁 관계라기보다는 보완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특수하다. 실제로 책을 읽다가 어떤 음악이나 음악인이 언급되어 있으면 그것을 직접 찾아 들어본다거나, 미술 작품이 언급되어 있다면 그 미술품을 직간접적으로 찾아보는 노력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러한 측면에서 책은 문화 부문의 전방산업이자 후방산업이다. 하지만 그 생태계 내부를 들여다 보면, 나이 마흔을 넘기지 못하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회사를 나와 외주작업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특수 집단이 있다. 다른 문화 산업도 크게 다르지는 않겠지만, 경력이 쌓여 좀더 나은 후생복지를 받기보다는 일정 시간과 경력이 쌓인 후에는 전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는 말이 되는데, 다른 산업영역도 그러하지만 특히 문화산업에서는 이 비정규직 문제가 진짜 심각하다. 책에는 '다른 분야에 비하면 기획, 편집 등 주요 업무의 경우 비정규직 전환이 쉽지 않다'고 쓰여 있지만 실제로 기획이나 편집 업무에 있어서도 비정규직 근로자를 통하는 경우가 결코 적지 않다.
이 책은 문화산업에 종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국내 문화계의 현실과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꼬집고 이에 대한 저자 나름의 해법을 제시한다.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한 현대 사회에서는 문화산업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관심과 전략적 지원 없이
이 시대와 상황을 버텨낼 수도 없다. 무조건 수출만이 살 길이라고 주장하며 신자유주의를 외치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유럽과의 FTA는 이미 발효됐고 미국과의 FTA도 발효된다면 문화산업 역시 이에 대한 생존전략과 적응이 반드시 필요할 텐데 과연 어떻게 될지… 일단 그저께(10월 28일)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만화와 애니메이션, 캐릭터 산업에 대한 내년도 예산을 대폭 늘리고 약 3천 개에 달하는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는데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겠다. 그들의 말대로, 3천 개의 일자리가 늘어난다고 해도, 낮에는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전전긍긍하고, 일반인들이 모두 자는 새벽에 꼬박 밤을 새우며 자신의 '본업'에 충실해야 하는 젊은이들이 어딘가에서 허기와 자괴감으로 고통받지는 않을지 또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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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먹고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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