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울주군 반구대 암각화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을 때 품었던 의문 하나가 떠오른다. 반구대 암각화는 하나의 암벽산을 이루고 있고, 그 거대한 암벽 곳곳에 사람이 새긴 듯한 그림들이 펼쳐져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사람의 팔이 절대로 닿을 수 없는 저기 저 높은 곳에까지 그림들이 그려져 있었다는 것인데, 그때 문득 그런 상상을 하게 되었다. 혹시 아주 아주 먼 옛날의 인류는 저기 저 높은 암벽까지 닿을 정도로 키가 큰 거인들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상상 말이다. 물론 벽을 타고 올라가서 그렸거나 기다란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새겼을 수도 있지만 나의 이러한 의문점은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접하고 나서 더욱 강해져버렸다. 아주 옛날의 생명체들은 지금보다 그 크기가 아주 컸다고 하는데, 잠자리의 날개가 무려 1m 달했었다는 그런 다큐멘터리 영상을 보면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을 그 옛날의 인류의 키가 15m에 달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그저 상상으로만 끝날 일도 아닐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는 내가 품었었던 그 의문과 상상들이 실제가 되어 살아 숨쉬는 그런 소설이었다. 이 지구상에는 반구대 암각화 뿐만 아니라 도저히 풀어지지 않는 미스테리의 잔재들이 많은데, 이집트의 피라미드도 그 중 하나다. 피라미드에 비하면 작디 작은 개미 크기에 불과한 인간들이 어떻게 저렇게 커다란 피라미드를 만들었단 말인가하는 경이로움이 절로 드는데,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그 비밀을 제3인류에서 이렇게 풀어냈다. 비밀은 바로 '거인'이었다. 그런데 그 거인이 존재했었다, 라는 것보다 더 인상적인 부분은 '지구'에 의식을 불어넣었다는 점이었다. 우리 인간들은 살아가면서 이 지구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은 과연 몇 시간이나, 아니 몇 분이나, 아니 몇 초나 될까? 우리에게 지구는 그저 당연히 거기에 있는 존재일 뿐이다. 인간은 말을 하지 않는 존재는 그게 무엇이든간에 고통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 짐짓 단정해버린다. 길거리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발로 찬다고 해서, 산의 나무들을 마구잡이로 베어낸다고 해서, 땅을 파서 석유를 끌어올린다고 해서 우리의 귀에는 돌맹이의, 나무의, 땅의 비명이 들려오지 않기 때문에 그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인간은 세상의 중심을 언제나 인간으로 두고 있다. 내가 지금 인터넷을 하는 행위도,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행위도 모두 지구를 병들게 하고있는 행위이지만, 그 죄책감의 무게는 너무도 가볍다. 우리에게는 지구의 비명소리가 들려오지 않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이렇듯 인간들의 이기적이고 위험한 발상을 경고하기 위해 지구의 '말'을 전달하고 있다. 지구는 느닷없는 소행성 충돌로 인해 크게 상처를 입은 바 있다. 그래서 지구는 다음 번에 또 소행성이 지구로 날아온다면 즉시 그 소행성을 폭파시킬 똑똑한 생명체를 찾아헤매다 거인족을 발견했고, 그들에게 피라미드를 짓게 한 후 그 피라미드를 통해 샤먼에게 자신의 명을 전달하며 인간들에게 우주선을 제조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이 소설 속 지구의 독백에서 전해진다.

 

 이 소설의 전개는 다비드와 오로르를 중심으로 하는 현재의 인간세계와, 프랑스 TV 뉴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내용, 그리고 지구의 독백이 번갈아가며 이어진다. 이 지구의 독백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발생했던 그 수많은 재앙들은 모두 지구 스스로가 자신의 면역체계를 발달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일으킨 것이 된다. 지나친 상상 일수도 있겠지만 나는 작가의 발상에 크게 동의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소설 전반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현 시점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인구증가였다. 인구가 많기 때문에 필요로 하는 자원도 많은 것이고, 버려지는 쓰레기도 늘어나는 것이라며 줄곧 인구를 줄여야 할 것을 주장한다. 사람들은 원망한다. 왜 이 세상을 만든 존재는 병(病)까지 만든 것일까. 왜 우리는 병이 들어 고통스러워하며 죽어가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반대로 질병이라는게 아예 없었다고 상상해보자. 만약 그러했다면 이 지구상에는 건강한 생명들로 가득 흘러넘쳐서 끊임없는 자원전쟁이 불가피했을 것이고 지구는 더더욱 피폐해져가다가 멸망했을지도 모른다. 결국 이 병이라는 것이 지구가 선택한 하나의 면역체계였다고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고통스러운 병이지만 이 지구에게는 하나의 면역체계! 재앙도 마찬가지다. 인구를 줄이는데 가장 특효약인 이 재앙은 지구가 가장 마지막으로 선택하게 되는 필살기가 아닐까 싶다. 인간에게 보내는 경고의 메시지이자 자신의 숨통을 트이게 하는 수단으로서의 선택.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구를 줄여야한다는 주장에서 더 나아가 인간이 더욱 소형화되어야 한다고까지 말하고 있다. 인간이 20cm이하로 더욱 작아진다면 필요로 하는 자원도 그만큼 줄어들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 꿈을 소설을 통해서 실현시켰다. 작아지는 것 뿐만 아니라 세균과 방사선에도 강한 면역체계를 지닌 제3인류를 창조해내기 위해 피그미족인 누시아와 아마존들인 펜테실레이아도 등장시킨다.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이 소설을 통해서 또 주장하는 것은 바로 '여성'을 늘려야한다는 것이다. 지구에 소행성이 충돌하여 공룡을 포함한 모든 생명체들이 멸망했을때, 암컷이 지배하며 암컷의 수가 대다수인 개미와 꿀벌들만은 살아남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여성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에 따라 소설 속 인물들은 키가 17cm에 불과한 '에마슈'라는 제3인류를 만들어냈고 90%는 여성으로 이루어지게 했다. 그런데 이들이 에마슈를 창조해낸 후가 재밌다. 다비드와 오로르는 우리의 부모세대가 저질러놓은 이 죄악을 답습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도 그들 역시 에마슈들에게 '똑같은'것들을 가르쳐주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게다가 인간의 심리를 극적으로 드러내어주는 장치가 있었는데 바로 '지구가 일으킨' 전염병이다. 이집트 독감이라 불리는 이 전염병으로 인해 수 십억명이 사망했고 세상은 그야말로 카오스에 휩싸인다. 다비드팀도 결국은 실험용 소형 동물들을 잡아먹기 시작했고 연구소를 약탈하러 온 사람들과 육탄전을 벌이기도 한다. 이 이집트독감 에피소드는 미드 워킹데드를 떠오르게 한다. 워킹데드 속 인물들은 모두 좀비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죽는 즉시 바로 좀비로 돌변하게 된다. 주인공 릭은 좀비들을 피할 수 있을 최적의 장소인 감옥을 발견했고 릭과 가족처럼 지내던 인물들을 감옥으로 불러들여 얼마간 안전한 삶을 살아간다. 그런데 이 감옥에 구원을 요청하는 인물들이 찾아오고 여기서 인물들 간에 갈등이 극대화되기 시작한다. 저 사람들을 감옥에 들여보내줘야 한다는 쪽과 저들을 들여보내주면 우리가 힘들어진다는 쪽으로 갈려 대립을 이루는 것이다. 그야말로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의 심리가 어떻게 발동하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미드인데 그러한 카오스 상황 속에서의 인간의 심리를 이 제3인류 소설 속에서도 목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설은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결말을 이끈다.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을 막아낸 것은 다비드팀이 창조해낸 제3인류 에마슈들이었고 결국 인류를 구원한 것은 이 소형인간들이었다. 그런데 소설의 마지막장은 소설의 끝이 아니었다. 내가 잘못 본 것인가 했는데 분명 <1부 끝>이라고 되어있었다. 살아남은 에마109의 '신'들을 향한 복수가 아무래도 제 2부의 시작인 듯하다. 아마 제 2부에서는 이 오만하고 이기적인 인류가 제3인류에 의해서 어떻게 파멸하는지를 보여주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는 정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읽을 수 있는 재밌는 소설이었다. 이렇게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데에는 번역가의 힘이 컸다고 생각한다. 해외문학을 접하다보면 어색한 번역때문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경우가 많은데, 제3인류는 이게 진짜 불어를 한글로 번역한게 맞나 싶을 정도로 굉장히 자연스러웠고, 그 덕분에 이 매력적인 소설 속으로 더욱 깊이 빠져들 수 있었던 것 같다. 제3인류가 작가의 상상이 만들어 낸 SF소설이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 소설은 분명 철학적인 면이 강하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는 소설이며 눈 앞에 닥친 현상만이 아닌 먼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장기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로도 제작되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 문자가 아닌 영상으로 이 소설을 들여다보면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말하고자 했던 바를 더욱 강렬하게 느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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