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글만리』는 소설의 형식만 취했을 뿐 소설이 아니었다. 나는 조정래 작가의 전작들과는 다른 느낌을 이번에 받았다. 이번 정글만리는 뭐랄까, 작가가 그동안 독자들에게, 국민들에게, 세상을 향해 외치고 싶었던 그 말들, 그 욕구를 마음껏 발산해 낸 작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 등장시킨 가상인물들의 입을 빌려서 말이다. 여느 소설들과는 다르게, 작가가 꾸며내고 만들어낸 대사들이 아니었다. 그것은 분명 작가 본인의 말이었다. 그렇기에 이번 정글만리에서는 인물들의 대화에 비중을 실었고 그들의 대화가 곧 핵심이었다.

 

 특히나 절실히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일본정치인들을 향한 분노였다. 한국과 일본이 얽혀있는 종군위안부 문제, 독도 영유권문제는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이 대치하고 있는 댜오위다오 분쟁과 난징대학살을 다루면서 일본에 대한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특히 난징대학살 같은 경우, 경영학과에서 사학과로 전과한 한국유학생 송재형이 난징대학살기념관을 탐방하면서 보게 되는 장면들을 아주 세세하고 생생하게 묘사하여 마치 내 눈으로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들었고, 그렇듯 치밀한 묘사에 비중을 실음으로써 독자의 분노를 이끌어내는데에도 당연히 성공할 수 밖에 없었다. 중국의 힘 없고 죄 없던 사람들을 대상으로 저지른 일본인들의 잔인하고 파렴치하기 그지 없는 그 만행들 자체만으로도 심장이 마구 요동쳤는데, 그러한 작태들을 지난 날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저질렀을 것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었다. 역사의 산증인들이 주장해도, 난징대학살기념관의 사진들과 같이 확실한 증거물들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일본의 정치인들은 하나 같이 망발을 일삼고 사과 한 번을 하지 않고 있다. 작가는 대체 왜! 일본인들은 이토록 그들의 역사를 부정하고 오히려 더 떳떳한 자세로 요지부동인가 그 이유까지 말해준다. 송재형이 속해 있는 베이징대학교와 난징대학교 학생들이 난징대학살 기념관 탐방 직후, 1945년 일본 천황의 항복문서를 낭독하는 세미나장에서였다. 그 항복문서에서는 도무지 '사과'하는 대목을 찾아볼 수 없고, 주권과 영유권 침해에 대한 생각은 없었다는 망발하며, 오히려 아시아국가들에게 실망했다는 어이없는 주장만 담겨있었다. 한 나라의 천황이 그 모양이니 당연히 그 나라의 정치인들과 국민들의 사상도 비틀릴대로 비틀렸을 것이고 그 DNA가 그대로 전해내려 왔을 것이니, 지금 일본의 정치인들 역시도 누가 더 망발을 잘하나 신명나게 내기를 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이 소설에는 중국에 진출한 일본기업에 몸 담고 있는 일본인 인물들도 나오는데 그들의 이름이 도요토미와 이토다. 순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이토 히로부미가 번쩍 떠올랐는데, 혹시 작가도 그것을 노리고 작명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면서 살짝 웃음이 났다.

 

 작가는 물론 중국과의 문제, 동북공정도 빠뜨리지 않았다. 중국인 여자 리엔링의 입을 통해서는 우리가 원하는 바른 대답이 흘러나왔으나, 이 리엔링의 대사만큼은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중국인들도 리엔링과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함이 옳지만, 과연 리엔링같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중국의 끝없는 영토확장욕심, 당이 하는 대로 별 저항 없이 따르는 중국인들의 특성을 볼 때, 우리 한국사람들이 강력하게 지켜내지 않는다면 꾸고 싶지 않은 그 '악몽'이 실제가 되어 우리 앞에 펼쳐질 지도 모를 일이다. 작가는 또한 한국은 중국의 속국이다, 라는 중국인들의 그릇된 인식도 지적했는데, 앞서 말했듯이 조정래는 독자들의 역사의식을 깨우치기 위해 작정한 듯이 열띤 역사토론의 장을 마련한 듯 보였다. 정글만리를 읽고 나니 새삼 국사과목을 필수로 지정해야하네 말아야하네로 대립했던 정치권이 참으로 아이러니하고 실소가 터져나온다. 물론 국사를 등한시하는 학생들과 부모들도 문제이지만 그 이전에 국가의 정책들이 빚어낸 사회 현실이라는 요인이 있었기에 이는 반드시 국가의 잘못일 것이다. 국사과목이 필수과목으로 선정되어 참으로 다행인데, 이게 왜 참으로 다행인 일이여야 하는지... 필수과목으로 선정된 국사를 원망하는 학생들과 부모들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래도 무조건 국사는 공부시켜야한다. 어렵고 지루하기 그지 없는 참고서를 이용한 수업이 아닌, 탐방과 토론이 주를 이루는 수업방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험문제 또한 일이 일어난 순서 따위를 맞추기 위해 발생년도를 외우는 그런 기계적인것이 아닌, 자신의 생각을 서술하는 논술형으로 출제해야 할 것이다.

 

 이렇듯 써놓고 보니 마치 정글만리가 역사소설인 마냥 느껴지는데, 사실 정글만리는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는 중국의 사회주의 자본경제가 주 소재이며, 중국을 무대로 하는 비즈니스의 현실세계를 다룬 소설이다. 이 소설을 읽고 나면 작가가 중국에 대해 얼마나 많은 관심을 가졌고, 또 얼마나 다양한 연구를 했는지를 느낄 수 있게 된다. '만만디'와 '콰이콰이'를 오가는 중국인들의 야비한 특성과, '꽌시'를 중요시하고 강자가 약자를 집어 삼키는 것이 아주 당연한 정글과도 같은 중국의 비즈니스 세계, 그리고 '얼나이'라는 첩을 수 십명도 더 거느리며 살고, 몐쯔, 즉 허세와 잘난척으로 허황된 곳에 돈을 낭비하는 거부들의 삶과, 쥐꼬리만한 돈을 벌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하층민들의 삶까지 고스란히 녹아있다. 또한 목숨보다는 돈이 더 중요하다는 중국인들의 의식, 미신을 아주 중요시하는 태도, 또 그러한 의식과 태도를 이용하여 떼돈을 벌어먹으려는 수작을 부리는 경영인들까지 아마 중국의 현재를 이토록 잘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하다. 아니, 작가의 말대로 이 정도로는 중국을 알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을 다 알았다고 하는 자도 어리석고, 중국을 다 알려고 하는 자도 어리석다는 말은 괜히 나온게 아닐 것이다. 그래서 중국은 더욱 알 수 없는 국가고 더욱 무서운 나라다. 중국은 우리와 너무나도 가까운 나라이기에 중국의 성장은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몰고 올 것이다. 정말로, 많은 전문가들의 예측대로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G1이 되는 날이 올까? 중국이 G1이 된다면 우리나라에는 어떤 변화가 닥쳐올까. 아직도 중국이라 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곧잘 얘기한다. 시끄럽고, 더럽고, 짝퉁이나 만들고, 온갖 피싱수법으로 사기나 쳐먹는 '못 사는' 나라라고. 못 사는 나라..그렇다. 중국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난하다. 하지만 그 가난한 사람들이 지금의 중국을 만들어냈고 중국의 미래도 만들어 갈 것이다.

 

 정글만리는 소설같지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재미가 반감되는 것도 아니다. 조정래 작가의 전작들에 비해 소설적인 재미는 부족할지라도 조정래 작가의 사견과 감정을 들여다보는 재미가 쏠쏠한 작품이었다. 마지 조정래 작가의 칼럼 한 편 읽은 듯한 느낌, 조정래 작가가 출연한 열띤 토론 방송 한 편 본듯한 느낌이다.두껍다면 두껍다고도 할 수 있을 이 세 권의 책을 단숨에 읽어냈다. 역시나 조정래 작가의 작품들은 흡입력이 대단하며, 문학적 기법을 사용한 고급스러운 문체가 아니더라도 강한 내공이 느껴지는 것 같다. 벌써부터 조정래 작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된다. 과연 다음에는 어떤 '소재'를 들고 독자들을 찾아와주실까.

조정래, 정글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