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 이덕일의 신간 『왕과 나』가 역사의 아침 출판사를 통해 세상으로 나왔다. 그가 이번에 택한 테마는 왕을 만든 사람들, 즉 '킹메이커'다. 지금까지 킹메이커를 주제로 한 도서들이 꽤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이덕일 저자는 이번 신간 『왕과 나』를 통해 한국사의 킹메이커들을 다룸에 있어서 어떠한 차별화를 두었을까.

 

 사실 이덕일 저자의 역사서들은 늘 관심의 대상이자 독자들에게 큰 신뢰를 받아왔기 때문에 책의 주제나 내용과는 상관없이 아마 '이덕일'이라는 이름만 보고 바로 구매결정을 하는 사람들도 꽤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왕과 나』도 작가의 이름이 발휘할 힘이 꽤 크지 않을까? 나 역시 그의 저서를 몇 권 읽어봤는데 어떤 책은 상당히 만족스러웠고, 또 어떤 책은 내용을 너무 어렵게 풀어나가서 나같은 역사초보자로서는 금방 책을 덮을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있었다. 분명 이덕일은 한국사를 아주 쉽게 설명한다거나, 아주 재밌게 풀어나가는 작가는 아니다. 하지만 분명 그는 다른 어떤 역사학자들보다도 한국사에 대한 애정이 깊고 더욱 방대한 역사지식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비록 다소 어려운 부분도 있지만, 그의 글을 계속 읽다보면 국사에 대한 지식의 폭이 한층 더 넓어짐을 확실하게 느끼게 된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는 전혀 다뤄지지 않았던 내용들을 접할때면 한국사에 대한 흥미는 물론 독서의 즐거움도 배가 될 때가 많았다. 이덕일이라는 이름만 듣고도 그 책에 신뢰감이 생기는 데는 분명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왕과 나』는 총 11개의 핵심 키워드를 가지고 킹메이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즉 어젠다, 헌신, 시야, 사상, 시운, 정책, 기상, 악역, 실력, 맹목, 역린이 바로 그 키워드인데 이 키워드는 각 장에서 다뤄지는 책사들의 정치생애를 한 단어로 나타낸 것이자 각 장의 주제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키워드들은 현재의 정치가들에게 작가가 건네는 교훈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실제로 각 장의 말미에 현실 정치에 대한 작가의 사견이 담겨 있다.

 

  나는 이덕일 작가의 이 왕과 나를 통해서 '새로운' 사실들을 참으로 많이 알게되었다. 특히 마지막 장에서 다룬 정조의 책사 홍국영편을 읽으면서 느낀것은, 아, 사극으로 역사를 공부하겠다는 생각은 버려야겠구나, 라는 것이었다. 참고로 나는 한국사를 향한 관심은 아주 높지만 부끄럽게도 역사지식은 매우 얕다. 드라마 중에서도 특히 사극을 좋아하는지라 사극 내용은 꿰뚫고 있는 편인데, 이런 상태의 내가 알고 있던 홍국영의 모습은 반듯하고 의리 있고 충성심 강한 인물이었다. 여러 사극드라마를 통해 나에게 보여지던 홍국영은 언제나 그런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 책에서의 홍국영은 정조를 이용하여 자기 욕심만 채우려 했던 전형적인 야욕가에 불과했다. 또한 김춘추가 삼국통일에 나서게 된 계기가 딸 고태소의 복수를 위함이라는 사적인 어젠다가 있었다는 점도 이번에 새롭게 알게된 사실이었다. 그리고 태조 이성계를 왕으로 만들어 조선을 세웠던 개국공신에는 정도전이 있다는 건 아주 잘 알고 있었지만 태조 왕건을 왕으로 만들어 고려 초기를 이끌어갔던 개국공신에 신숭겸, 배현경, 복지겸, 홍유가 있었다는 점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특히 이 고려의 개국공신들은 권력욕심이 전혀 없었고, 왕건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까지 바쳤던 인물들이었다는 점에서 크게 감동했다. 요즘 세상에서는 쉽게, 아니 절대 볼 수 없을 충신들의 모습인 것 같아 더욱 인상적인 대목이었다. 이 '헌신'이라는 키워드가 딱 어울리는 킹메이커들이었다.

 

 『왕과 나』를 읽으면서 새로운 사실들에 깜짝 놀라기도 했지만, 반면에 씁쓸하게 웃을 수 밖에 없었던 대목들도 많았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층들은 어찌나 그렇게 하는 행태들이 똑같은지! '김육'편에서는 농민들은 대거 환영하는 대동법 정책을 말도 안되는 논리를 들먹여가며 반대하기만 바빴던 땅부자님들이, '박자청'편에서는 실력은 인정하지도 않고 오로지 미천한 신분만 들이대며 박자청을 끌어내리기 바빴던 태생부터 잘나신 님들이 날 웃게 만들었다. 나는 이해한다. 태어나자마자 부잣집 도령님으로 자라오신 분들은 서민의 삶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은 서민들이 아무리 힘들다 힘들다 외쳐도 그들의 삶을 단 1%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가난하게, 힘들게 살아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그 평민의 삶을 이해하고 평민들을 위한 정책에 앞장설 수 있겠는가. 정도전도 마찬가지였다. 정도전 역시 유배를 당하기 전까지는 서민들의 삶에 관심이 없었을 것이지만 유배를 당함으로써 서민들과 함께 생활을 하게되자 비로소 그들의 고난과 역경을 몸소 목격하고 체험할 수 있었다. 그래서 정도전은 농민들을 위한 토지개혁법을 그렇게 강력하게 주창하게 된 것이다. 현대 정치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거의 모두가 고학벌에 집안도 어마어마한 분들일 것이다. 요즘은 서민 서민 운운하면서 서민들을 위한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는 하지만 대체 무슨 정책이 서민을 위하는 정책이라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솔직히 그들은 자신들을 위한 정치를 하기에만 바쁘다. 소수의 부유층이 손해를 보고, 다수의 국민들이 혜택을 입는 정책을 누군가가 내기만하면 '포퓰리즘'이다 뭐다 하면서 깎아내리기 바빴지 않았나. 대다수 국민들의 환영보다는 소수의 권력층의 반대가 더 무섭고 강력한 우리나라의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게 전혀 없어보인다.

 

 이덕일 저자의 이번 신간 왕과 나는 별 어려움 없이 술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흥미로운 사실들도 많아서 재미도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권력층들의 횡포에 분노도 느끼면서, 왕을 향한 충심과 민초들을 위한 정책을 위해 생애를 바친 인물들을 통해 감동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아마 이덕일의 이번 신간도 독자들의 많은 호응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뭐, 이 책을 읽고 커다란 깨달음이나 뉘우침같은 것을 느낄 정치가는 별로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현재 정치가들이 반드시 읽고 넘어가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키워드 헌신편과 사상, 그리고 정책편은 정치인들은 물론 많은 이들에게 의미 있는 교훈을 선사할 것이기에 꼭 읽어볼 것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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