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백야행』은 무서운 작품이다. 첫 장을 펼친 순간부터 사람을 홀리기 시작하더니 마지막 下권의 끝 장을 덮고 나서도 굉장한 여운을 남기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백야행의 소재는 그다지 독특한 것은 아니다. 사랑하는 여자를 위해 희생을 감내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자주 접할 수 있을 정도로 흔하기도 하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또 다른 작품인 『용의자 x의 헌신』도 그런 비슷한 내용이었다. 하지만 백야행은 뭔가 다른 작품에서는 느껴지지 않는 '특별함'이 있다. 그 특별함이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다. 독서는 오래 전에 이미 끝냈지만 뭔가 내 영혼은 그 작품 속에 여전히 머무르면서 헤매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그 알 수 없는 특별함의 마력에 완전히 압도당한 기분.. 나는 일드, 즉 일본 드라마를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별 흥미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백야행을 읽고 나서 한국판으로 제작된 영화 백야행을 챙겨봤고 이제는 일드 백야행까지 보려고 계획 중이다. 소설 원작과 한국판 백야행, 그리고 일드 백야행 중에서 가장 중독성 강한 것이 바로 이 일드 백야행이라고 하는데, 보기 전부터 겁이 난다. 소설을 읽고 나서도 이렇게 작품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드라마를 보고 나서의 그 후폭풍은 어찌 감당해야 할 지 모르겠다. 백야행이라.. 그 제목에서부터 묘한 이끌림이 존재하고 있다. 하얀 어둠 속을 거닐다라는 제목에서는 아련함, 슬픔, 비극의 감정이 녹아있는 듯하다. 대체 이 엄청나고 무서운 마력을 가진 백야행의 그 특별함이란 무엇일까.

 

 소설은 추리소설답게 하나의 살인으로 시작된다. 이 소설의 발단이 된 그 살인사건은 비극을 일단락짓는 것이 아닌 더욱 엄청난 비극의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독특하게도 이 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다음으로 계속 이어지는 '악행들'의 주범자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독자들이 초반부터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느 추리소설과는 다르게 작가는 범인의 정체를 일찌감치 드러내었고(드러내었다기 보다는 독자가 금방 추리해낼 수 있도록 실마리를 많이 풀어냈다고 할까?) 여느 추리소설처럼 마지막부분에 그 살인사건의 전모를 설명해주고 있다. 백야행을 읽어나가다보면 딱 한 줄 정도의 양으로 핵심실마리를 조용히 흘려내는 작가를 마주칠 수 있다. 그 실마리를 캐치해내느냐 그냥 지나치느냐 하는 것은 독자의 능력에 달렸을 것이다. 아마 추리소설을 밥 먹듯이 읽어대는 독자들이라면 별 어려움 없이 그 실마리들을 냉큼 주워담을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작가는 독자들을 괴롭히기 위한 이런저런 함정들도 심어놓지 않은 것 같다. 별다른 반전도 없이 그냥 독자들이 생각했던 그 인물이 범인이 되도록 가만히 놓아두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더욱 아련하고 안타깝고 슬프고 비극적이다. 백야행은 추리소설이라기보다 무능하고 추악한 사회를 향한 분노를 표출한 작품에 더 가깝지 않을까 싶다. 작가는 독자들에게 그들이 얼마나 더 악랄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지 지켜보라, 인간이 얼마만큼 악마가 될 수 있는지 직접 목격하라, 라고 고문을 주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 고문을 당해야만 했다. 한 남자가 한 여자를 위하여 저지르는 그 악행들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 여자도 그 남자를 사랑했던 것일까 아니면 그 남자도 그저 이용대상에 불과했던 것일까, 이런저런 질문들은 마구마구 생겨나는데 정확한 해답은 작가도 말해주지 않았기에 더욱 깊은 여운이 남는 작품인 것이다. 

 

 19년 전 그 사건을 경찰의 '편의상' 미제사건으로 남겨두지 않고 진범을 찾아냈었더라면 그들을 그렇게까지 악마로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사가키 형사는 그래서 더욱 죄책감에 시달리며 19년이라는 세월동안 진범을 찾아 헤맸을 것이다. 아니, 그들이 그렇게 '가난'이라는 것에 시달리지만 않았어도, 어른들이 더럽고 불경한 짓거리만 하지 않았어도 이 무시무시한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국 이 백야행 작품 속에는 '자본'만을 좇는 사회세태를 비판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가 숨어있다고 생각해볼 수 있겠다.

 

 언제나 한 여자의 그림자가 되어 늘 어둠 속을 거닐었던 한 남자, 어둠 뿐이었던 그 여자의 인생에 유일한 빛이 되어주었던 남자. 그 남자는 정말로 그 여자를 사랑했던 것일까. 나는 여자를 사랑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악행을 저질렀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 남자는 그 여자에게 '죄책감'을 안고 있었기 때문에 그 여자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그 '죄책감'이라는 감정을 이 남자도 악행에 이용했기 때문이다. 도모히코라는 인물은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자신의 죄를 직접 나서서 덮어준 그 남자에게 '은혜'의 감정을 느끼고 충성을 다해 그의 손발이 되어주었다. 그 모든 것들이 그 남자가 꾸며 놓은 덫인줄도 모르고.. 아마 그 남자는 누구보다도 그 '감정'의 위력을 잘 알기에 그것을 자신도 이용하여 도모히코를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라 해석해본다. 도모히코 뿐 아니라 그 남자는 이 감정을 이용한 방식으로 여러명을 자기 편에 서게 했다. 물론 그 여자도 이 방식을 애용하여 자기의 인생에 방해물로 존재했던 인물들은 그녀의 편으로 만들어버렸다.

 

 물론 그 여자를 사랑하는 감정이 더 컸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여자도 그 남자를 아주 많이 사랑했을지도 모른다. 가난이라는 그 지독함때문에 두 인물은 모두 상처를 입었다. 그래서 그 둘은 정말 사랑했지만 남자의 입장에서는 그 여자가 부잣집 남자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악행을 저질렀을 수도 있다. 그 여자의 인생에 방해물이 등장하면 언제나 해결사는 그 남자였다. 만약 그 둘이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이였다면 그들은 사랑하는 방법을 몰랐고 사랑에 서툴렀던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두 사람이 함께 있는 모습, 두 사람이 하는 직접적인 대화를 독자들에게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것이 사랑이었을지 아니었을지는 확답을 내릴 수 없을 것이다. 그게 참 이상하다. 왜 작가는 그 두 사람이 함께 있는 장면, 함께 대화하는 장면은 쓰지 않았던 것일까. 나는 그 두 사람이 함께 있는 그림이 너무나도 궁금했다. 그들이 함께 무언가를 하는 것, 그들이 함께 무언가를 얘기하는 것이 바로 '핵심'이라고 생각했는데 단 한 번도 작가는 이 두 사람을 함께 등장시키지 않았다. 물론 마지막을 제외하고...그래서 흥미도 없었던 일드까지 보려고 하는 것이다. 드라마에서는 그 두 사람의 관계를 이토록 숨길 수는 없었을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백야행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에서 단연 으뜸이라 말하고 싶다. 이토록 깊은 여운을 남기는 작품은 흔치 않다. 무조건 읽어보라 추천하고 싶다. 물론 그 강한 여운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만.. 백야행은 상,중,하 이렇게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방대하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순식간에 읽어버렸다. 아주 순식간에. 도저히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그 정도의 마력이 있는 소설이다. 나도 이 소설의 무슨 특별함이 나를 이렇게까지 끌어당기고 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정말 오랜 시간동안 이 묘한 여운이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만 확신할 뿐이다.

 

 

 

 "내 위에는 태양 같은 건 없었어. 언제나 밤. 하지만 어둡진 않았어. 태양을 대신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태양만큼 밝지는 않지만 내게는 충분했지. 나는 그 빛으로 인해 밤을 낮이라 생각하고 살 수 있었어. 알겠어? 내게는 처음부터 태양 같은 건 없었어. 그러니까 잃을 공포도없지."

- 251쪽- 

 

백야행, 히가시노노게이고, 일본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