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종교가 없다. 아니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해야할까? 내가 다섯 살이었을 때, 내가 살던 곳의 또래 친구들 모두가 선교원을 다녔던 관계로 아마 어쩔 수 없이 나 또한 선교원에 보내진 듯 했다. 평일에는 선교원을 다니며 찬송가와 율동을 배웠고, 일요일이면 옆에 위치한 교회에서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를 드렸다. 그때만해도 나는 정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다른 누구보다도 성경책을 많이 읽었고, 지금도 내 방 한 켠에는 주기도문 암송대회에서 수상한 금빛 트로피가 자리잡고 있다. 당연히 일요일마다 착실하게 헌금도 냈다. 그 나이때에는 100원도 큰 액수였는데 2000원이라는 거금을 서슴없이 내곤 했다. 그 돈이 좋은 곳에 쓰여지길 바랐고, 또 좋은 곳에 쓰인다는 확신을 가지면서 말이다.

 

 그렇게 착실했던 내가 갑자기 교회로부터 등을 돌린 이유는 바로 그 헌금의 '용도'를 우연찮게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다른 교회들이 모두 그렇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너무도 믿었고, 의지했고, 사랑했던 나의 교회가 우리들이 내는 헌금을 개인적 유흥비로 지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다른 교회 사람들에게 떠벌리지 않았고, 선생님들에게 따지지도 않은 채 그냥 조용히 나의 교회로의 발길을 끊었다. 그리고 교회에 나가지 않자 한없이 따뜻했던 선생님들이 냉랭해지고 무관심해지는 모습을 보고는 남아있던 미련까지 고맙게도 말끔히 없앨 수 있었다. 그 후로 지금까지 교회는 단 한번도 나가지 않았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전도하는 사람들을 마주치거나 울고 소리를 질러가며 기도하는 사람들을 볼때면 심하게 거부감이 들었다.

 

 내가 '8년의 동행'에 등장하는 렙과 헨리와 같은 사람을 일찍이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종교로부터 등을 돌려버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 이  두 사람에게 처음부터 좋은 감정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미치 앨봄의 지난 작품들을 너무도 좋아했기에 '8년의 동행'은 또 어떤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첫 장을 펼쳤는데, 이게 웬일! 내가 심하게 거부감을 느끼는 분야인 종교에 대한 내용인 것이었다. 아..하는 한숨과 함께 그냥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고, 심지어는 미치 앨봄에 살짝 실망감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언제나 나의 구석진 마음 한 곳을 살살 건드리며 내 안에 숨어있던 아련한 감정을 깨워주던 미치앨봄이 아니던가! 나는 미치 앨봄이라는 사람을 믿고 책을 끝까지 읽어보기로 결심했다.

 

결론은.. 끝까지 다 읽었다. 중간중간 거부감이 드는 부분(설교 도중 신도들의 감정이 격해지는..뭐..말하자면.. 믿습니까?!! 믿습니다!!!와 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정말 렙과 헨리가 하는 모든 말들은 하나같이 내 머리속 어딘가에 있을 '저장하기'버튼을 클릭해대고 싶게 만들었다. 할 말을 잃게 하는, 그리고 다음 장으로 넘겨야 하는 것을 잃고 멍때리게 만드는 그들의 말들. 그 수많은 말들 중에 내 수첩에 유일하게 기록된 구절이 있다. 책을 읽으면서 책 내용을 수첩에 옮겨 적는 일은 생전 처음 있는 일이다.

 

  '주여, 오늘도 제 영혼을 다시 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면 그 날 하루는 특별한 보너스가 된다.

 

우리는 잠들기 전 너무나 당연하게도 '나의 내일'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는다. 요 며칠 나의 일상은 새벽 3시쯤 잠들고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 쯤 잠에서 깨어 하는 일 없이 방황하다가 또다시 밤을 맞이하는 패턴의 반복이었다. 오늘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도 내일이 있으니까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 밤이 내 삶의 마지막이라고 가정해보면, 그 다음날 맞이하게 되는 기적의 아침은 그야말로 "특별한 보너스"가 되는 것이다. 그 특별한 보너스를 허무하게 보낼 사람이 있을까?

 

이처럼 8년의동행은 미치 앨봄이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에서 스승 모리를 찾아 대화를 나누면서 삶의 의미를 알아갔던 것처럼, 렙과 헨리를 찾아가 대화를 나누는 미치 앨봄을 통해서 독자들 역시 많은 것들을 깨우치고 뉘우치리라 생각된다. 이 책은 종교 간의 장벽을 허무는 것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다. 그것을 무엇이라 말해야할 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미치앨봄의 책들을 읽어본 독자들에게는, 그의 책들을 읽고 난 후의 그 특유의 느낌과 깨우침이 그것이라 말해주고 싶다. 종교적 색채가 묻어나는 책이 거부감이 든다 할지라도 이 책은 그냥 지나쳐버리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가르침들이 많이 있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냥 책을 덮어버리고 싶었다고 했고 나와 같은 사람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치앨봄과 그들의 8년간의 동행을 함께 하다보면 더이상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다는 것에 안타까워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수첩을 꺼내들고 그들의 말을 옮겨 적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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