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가시노 게이고의 SF 미스터리 라는 기존의 작가의 행보와는 다소 다른 선로 상의 작품이라 일단 관심을 끌었던 작품이다. 개인적으로는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좋은 작품은 좋고 아닌 작품은 너무 아니었던 터라 갈릴레오 시리즈와 가가형사 시리즈 정도는 챙겨 보지만, 다른 작품들에게는 선뜻 손이 가지는 않는 편인데 장르적 차별성을 마케팅 문구로 내세운 이 [패러독스 13]과 최근 출간된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은 한번 읽어보고 싶었다.

 

먼저 읽은 [패러독스 13]은 사실 SF 라고 하기에는 어려운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블랙홀과 초끈 이론, 평행우주가 작품의 소재로 등장하긴 하지만, 이 작품의 초중반부는 전형적인 재난생존물의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

 

뭔가 일어났던 13초 이후, 도쿄는 폐허가 되고 남은 생존자 무리에게 닥치는 재앙은 그들의 가치관과 인생관을 뒤흔든다는 식의 전개에 하나씩 죽어나가는 전개인데, 스케일로 봐서는 재앙영화로 만들어지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며 잘 읽혀지는 책장의 적지 않은 분량을 넘겨왔다만...

 

막상 13초에 대한 추론이 전개되고, 등장인물들이 갈등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이야기는 갑자기 맥이 빠져버리는 느낌이다. 그 이전의 전개가 사건과 캐릭터라이징에 의존한 스토리텔링의 힘이 빛을 발했다면, 그 이후의 전개는 뭔가 채 정리되지 않은 인물들의 혼란과 자각의 사색이 다소 겉도는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분명 잘 읽히고 중반 넘어까지 재미를 놓치지 않는 작품이었고, 몇몇 단락들은 그럭저럭의 연상을 이끌어내기도 한 장점이 많은 작품이었다.

 

203 페이지의 야마니시의 목소리를 통한 고령화사회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사회에 비추어서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해 보게 만드는 구절이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도나 물질적인 보조와 편의성보다는 가족과 이웃이라는 인간의 굴레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