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면전차가 다니는 마을... 직장을 그만두고 이사 온 청년의 집 창 밖으로는 하얀 십자가가 보인다.

역 앞 상점가에는 트로와라는 샌드위치 가게가 있는데 주인인 안도씨의 묵직함이 그대로 담긴 맛은 일품이다. 청년은 한 여자배우가 출연한 옛날 영화를 찾아 극장 쓰키부네 시네마를 찾는다. 청년이 좋아하는 배우는 주연도 조연도 아닌 한 작품에서 길면 몇 분, 짧으면 몇 초 출연한 단역배우인데, 그녀가 출연하는 그 짧은 장면을 다시 보기 위해 청년은 극장을 찾는다.

한동안 연쇄살인범, 싸이코패스, 우발적 범죄자들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만 연상해내다가 만난 이 담백한 느림의 공간은 그래서인지 더 매력적이었다. 요시다 슈이치의 좋았던 작품, 오기가미 나오코([요시노 이발관],[카모메 식당],[안경],[토일렛])의 영화 속 좋았던 장면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느리지만 마음을 포근하게 하고, 자극적이지 않지만 미각을 즐겁게 하는 연상을 끌어낸다.

청년은 트로와에서 일하게 되면서 주변의 인물들도 입체감을 가지게 되고... 청년이 찾아보던 옛날 영화 속 단역 배우와 현실의 극장 속 초록모자의 노부인이 겹치면서... 수프만 생각하고, 그 수프는 무조건 맛있게 만들어진다. 굳이 상처를 자극적으로 헤집지 않아도 치유가 가능한, 행복하고 편안한 대안병원이랄까.

의외의 수작이었다. 이 작품을 보고 나면, 아마도 맛있는 수프 한 그릇, 정성이 깃든 샌드위치 한 조각, 그리고 옛날영화 한 편은 꼭 생각날 것 같다.

작가의 [회오리바람 식당의 밤]은 2011년 11월 21세기북스에서 출간되어 있다.

한때 즐겨 찾았던 일본 소식통 커뮤니티를 운영했던 역자(민경욱)의 후기는 작품의 맛을 너무 잘 정리해놓아서 본문을 읽기 전에는 읽지 마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