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리 밝혀두자면, 필자는 '핫기믹' 작품에는 애정이 없다. 1권을 볼 때부터 작품 전반에 '당신이 날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라는 오로라를 물씬 풍겨대는 것이 결국 냅다 책을 덮어버린 전적이 있을 정도다. 그 연유가 무엇인고 하면, 노예제도라는 비현실적인 설정은 둘째치고, 왕방울 눈동자에 백치미보다 정도가 더 심한 무치미ㅡ주관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으려야 찾을 수가 없는ㅡ가 좔좔 흐르는 하츠미 양과 싸가지 만땅의 료오키 군이 필자의 거부 레이더에 딱 걸렸음이다. 천지가 개벽한다 한들 다시 보지 않을 것이라 여겼음이 엊그제 같건만, 역시나 천지는 때때로 개벽하는 모양이로다. 그것은 바로 필자의 사랑을 한몸에 받은 시노구 때문이다. (까아악~ 말했다, 말했어!!!)

첫 등장부터 단정한 외모에 다감한 성격으로 시선을 잡았던 시노구는 어찌 그리도 필자의 취향을 꿰뚫는 것인지, 일편단심 민들레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순정계의 진부한 설정이라고는 하나 사랑 자체가 이미 세상에 널린 진부한 감정인 마당에 흔해빠진 설정이 무슨 대수겠으며, 원래 진부한 설정은 태고적부터 내려오는 인류 공통의 진리지 않는가.

하지만, 마이너 취향으로 널린 알려진(...) 필자가 여기서 만족한다면, 어둠의 동족들이 대성통곡할 일임이 분명하다. '일편단심 민들레 사랑' 앞에는 붙어야 할 단어가 필히 있음이다. 바로 여.동.생.!!!! 감이 바로 잡히는가. 그렇다. 필자의 마이너 인생에서 가장 찬란히 빛나는, 어둠의 종족 최상위 등급인 근친인 것이다. 의붓간이라 김새는 감도 있지만, 의붓이든 이복이든 남매는 남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태풍이 몰아치나 지진이 일어나나, 오로지 하츠미 러브모드로 일관하는 시노구를 볼 때마다 필자의 가슴엔, 찬란히 빛나는 태양 아래 푸른 물결 넘실거리는, 하늘 높이 하늘 높이 뭉게구름 피어난다는 미래소년 코난이 아니라 오대양이 열두 번도 더 자리잡았음이다. 그러나 하츠미 양은 어찌하여 이런 시노구를 내버려두고 료오키 군에게 홀라당 넘어간 것인가. 사쿠라 양에 이은 또 한 명의 시력 이상자란 말인가. 정말이지 실력 뛰어난 안과의사를 소개해주고 싶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으니. 그렇게 넘어갔으면 죽을 쑤든 밥을 태우든 알아서 할 것이지 왜 시노구를 물귀신 작정처럼 끌고 들어가는 것인가. 아니, 물귀신 작정을 쓴 것까지는 괜찮다. 필자의 오매불망 사랑, 시노구를 이리저리 휘두르고 괴롭혔으면 책임을 져야지, 료오키 군의 품에 얼싸 안기면서 오빠, 미안해요? 일찍이 선조는 하츠미 양의 행동을 가리켜 '가렴주구 (가혹하게 착취한다)', '토사구팽 (편리에 따라 이용,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다 = 감탄고토)'라 하니, 아, 역시 옛말은 진리 중의 진리임이 분명하다.

여기까지만 해도 달걀 하나는 거뜬히 구워낼 정도로 혈압이 급상승하건마는, 완결편에선 한술을 더 뜨고 마니. 시노구가 중이 된다니!!!! 이게 무슨 알아들을 수도 없는 외국어를 면전에 대고 솰라솰라 읊어대거나 사칙연산만으로 충분한 뇌에 미분, 적분을 던지는, 염병할 시추에이션이란 말인가.

생 각 같아서는 "너희들 연애 행각에 애꿎은 시노구와 나를 끌어들이지 마. 보고 싶지도 않고 보고 싶은 생각도 없어, 이 민폐커플, 절대 금지 인종아!!!" 라고 냅다 쏘아붙이고 싶은 마음 굴뚝이요, 저주인형 만들어서 "니들이 잘 사나 어디 두고보자." 라며 두고두고 괴롭히고 싶은 생각이 골백번도 더 드나, 문고판 소설 '핫기믹 S'가 발매된 탓에 참은 인자를 무한대로 그리며 시노구의 행복을 빌 따름이다.

하츠미 양과 작가님, 십년감수 한 줄 아시길. 하지만, 반드시 '사필귀정', '과유불급'을 가슴에 새겨두길 권유(라 쓰고 협박이라 읽는) 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