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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의 노래는 자신들의 믿음이 하늘에 닿고자 했던 헤브론 성의 수도자들의 노래였을까 지상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한이 서린 노래였을까.

지상의 노래를 읽고 나서 지독한 사랑의 노래라 말하는 사람도 있고 종교적인 내용 혹은 정치와 권력에 관한 내용이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의견이 나오게 된 것이 아닌 것은 '지상의 노래'가 강상호, 차동연, 후, 장, 한정효 다섯 인물의 이야기가 절묘하게 맞물려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책의 첫 장의 첫 문단부터 이 책이 쉽고 가볍게 읽을 책은 아닐 것임을 알았다. 하지만 쉽게 읽지 않는다는 것이 어렵게 읽을 책이라는 걸 말하지는 않는다. 내용도 흥미롭고 특히, 내가 그 인물이 되지 않으면 알 수 없을 감정표현들이 굉장히 섬세하게 서술돼서 꽤 두꺼운 책임에도 불구하고 책이 나를 부르듯이 한 장씩 넘길수록 깊숙이 빠져들게 되는 책이었다.

상황이나 인물들의 특징이 공통된 부분을 찾기 어려울 다섯 사람들에게 유일한 공통점은 '천산수도원'이였다. 형 '강영호'의 죽음으로 동생 '강상호'가 형의 마지막 작품을 완성하려 했기에 천산수도원은 세상에 알려졌고 책의 이야기도 시작하게 된다. 유일한 접점이 천산수도원이 된 것을 말하자면 '한정효'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먼저 말해야 할 텐데, 1970년대 '장군'이라고 불리던 최고 권력자의 오른팔이던 한정효가 나온다. 그동안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행해왔던 한정효가 아내의 외로운 죽음으로 인한 충격에 자신의 지위에서 사임하기로 하자 그가 자신과 관련된 불리한 내용을 털어놓게 될까 봐 불안해진 장군은 그를 세상과 단절시키기 위해 천산수도원에 고립시켰다. 한정효를 가두기 위해 장군은 천산공동체 사람들의 절반을 산 아래, 즉 세상으로 내보내고 초소를 설치하여 천산수도원과 세상을 단절시켰다. 천산수도원에 이러한 일일이 한 번 더 일어나게 됐는데 1980년대 새로운 권력자가 나타났다. 이 권력자는 자신에게 반하는 사람들은 잡아 가두거나 처단하는 방법을 선택하였다. 새로운 통치자는 천산수도원이 봉쇄됐을 때의 이야기를 당시 책임자였던 '장'을 통해 정보를 얻은 뒤 군인들로 하여금 천산수도원의 사람들을 끌어내려고 하다 결국 지하의 좁은 방에 모두를 가두고 시멘트로 출입구를 막아버리는 집단학살을 하였다. 사촌 누나 '연희'를 겁탈하고 버린 박 중위에게 알 수 없는 분노로 상처를 입혀 죽인 줄 알고 천산수도원으로 피신했던 '후'는 천산수도원의 생활에 적응하며 지내다 첫 번째 천산수도원에 들이닥쳤던 군인들로 인해 쫓겨났다. 그 이후 마을로 내려와 연희가 미용기술을 배우고 다른 지역으로 갔다는 소식을 듣고 연희를 찾기 위해 정처 없이 길을 헤매는 생활을 시작한다. 후에게 자신과 연희의 관계는 압살롬과 다말이었다. 그녀에 대한 사랑과 욕정이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둬서 드러낼 수는 없었으나 차마 모든 것을 숨길 수는 없었던 그의 마음의 물음에 대한 답을 후는 성경 속의 압살롬과 다말의 관계에서 찾았다. 그런 후의 마음을 연희도 무의식중에 어렴풋하게는 알고 있었을지도 몰랐음을, 그의 마음을 연희에게도 들켰을 수도 있었음을 그리고 자신이 압살롬보다는 암논에 가깝다는 걸 알게 되자 후는 연희를 떠나게 된다. 길 위에서 서서 이제 더는 어느 목적도 없이 걷게 되는 상황에 놓이자 세상 속에 자신이 편히 쉴 곳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고 다시 천산수도원을 찾게 된다. 하지만 다시 찾아가게 된 천산수도원은 모든 형제가 생매장된 이후였다. 그곳에서 후는 생매장당한 형제들의 시신을 묻어주던 탈진한 한정효를 만나게 된다. 예전에 형제들이 그랬던 것처럼 후 또한 탈진한 그를 간호하고 살려내려 했으나 그 모든 것들을 완강히 거부하는 한정효가 바라는 것은 다른 형제들과 같이 지하실에 묻히길 원하였다. 그리하여 죽어가는 한정효를 지하실에 묻고 후 또한 자신이 마지막으로 존재해야 할 곳이 이곳임을 인정하고 자신을 스스로 지하실 속에 매장하여 세상과 이별하는 것을 선택하였다. 그 이후 여행 작가 강영호가 천산수도원에 대해 그의 책에서 간단하게 언급했으며 그 글을 읽고 차동연은 천산수도원을 방문하게 된다. 차동연은 천산수도원에서 느낀 그의 소감을 신문에 썼고 그 글을 읽은 장을 만나 천산수도원에 대한 비극적인 과거 또한 알게 되며 이 다섯 인물의 관계가 완성된다.

이 책을 2012년부터 2013년까지 마음이 끌릴 때마다 읽었는데 책에도 읽을 때가 있듯이 작년의 나보다는 올해의 나에게 더 크게 다가왔던 책이었다. 연희가 박 중위에게 느꼈던 수치심과 알 수 없는 부끄러운 감정들에 대한 묘사가 크게 다가왔으며 공감할 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연민과 그녀가 술에 취한 뒤에 후에게 뱉은 모진 진실과 떠난 후를 찾을 때 느낀 그녀의 복잡한 감정들은 요즘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들과 매우 흡사하여서 그녀에게 더욱더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결국 지상의 노래 중심에는 '후'가 있었다. 다섯 인물의 이야기가 나오지만 후 그리고 천산수도원이 중심이다. 그가 천산수도원에 들어가게 된 계기에 연희가 관련되고 그곳에서 다시 나오게 되는 이유에 장과 한정효가 관련된다. 그리고 결국 후 스스로 세상이 아닌 천산수도원으로 돌아가게 되는 과정을 그린 내용이다. 그리고 그 이후 천산수도원을 찾게 되는 사람들이 강상호와 강영호 그리고 차동연이다.

'후'의 인생이 불쌍하고 기구한 건 알지만 후에게 어떠한 연민도 들지 않는다. 후의 인생은 불행했으나 살인 미수의 원인도 그가 가진 욕망이었으며 미용 일을 하며 세상을 떠도는 기간에 겪은 일들도 결국 본능적인 욕망에 관련된다고 보였다. 그가 가진 감정이 어떠한 종류였는지도 모르고 순간의 본능에 충실하게 행동했던 후를 비난할 수는 없지만 모든 선택이 그의 무의식이었으므로 그 선택에 대한 책임 또한 그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기구한 인생 또한 인생의 한 종류고 개개인의 인생일 뿐이다. 후는 그러한 경험들로 인해 깊은 사고가 가능하게 된 게 아닐까.

이 책을 읽게 된 이후에 작가에게 필력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됐다. 이처럼 낯선 주제와 경계심을 일으킬 수 있는 종교라는 주제를 책 속에 짙게 담으면서도 거부감을 못 느끼게 하는 건 작가의 뛰어난 능력 덕분인 것 같다. 이 책을 읽는 순간에 페이지가 넘어갈수록 빠져들게 되고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서는 가장 큰 두근거림과 함께 깔끔한 마무리로 여운을 남길 수 있었다.

작품의 전개가 작가의 계속된 질문에 담겨있는 것 같다. 한 가지를 제시하더라도 곱씹어 생각해보게 되는 질문들 덕에 인생에 대한 생각, 이 책에서 언급하는 '길'에 대해서도 나는 지금 목적이 있어서 걷는 것인지 목적이 없어도 걸어야 하기에 지금 걷고 있는 것인지 생각하게 됐고 나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만약 내가 종교를 가지고 있었다면 신앙생활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보게 될 계기가 되지 않을까. 이 책 한 권에는 인생, 종교, 사랑, 정치와 권력에 대하여 어느 것도 부족하지 않게 담겨있다. 지금 이 순간 이 책을 읽게 된 건 행운인 것 같다. 많은 생각을 하고 싶은 순간이 이 책을 읽어야 할 적합한 때라고 생각한다.

지상의노래, 이승우, 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