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금융사기에서 유괴 사업까지...

<립맨>에는 놀라운 사기꾼이 등장합니다.

평범한 대학생이던 도모키는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유일한 가족인 남동생 다케하루와 살게 됩니다.

부모님과 살던 집에서 남은 재산으로 학업을 마친 도모키는 순탄하게 취업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다행히 '미나토당'이라는 회사에 입사가 내정된 상태였는데, 갑작스럽게 인사부장이 부르더니 회사의 경영 상태 악화로 입사해도 배속할 곳이 없다는 것.

결론은 스스로 입사를 포기해달라는 내용.

어쩔 수 없이 취업 못한 도모키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게 됩니다.

동생 다케하루는 학창시절부터 불량학생으로 문제를 일으키던 터라 가까운 형제 사이는 아니었는데, 오히려 사회 생활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형제 간에 우애가 생겼다고 해야 하나. 암튼 그즈음 도모코는 동생 다케하루를 통해서 보이스피싱 금융사기 영업을 하는 샤모토와 연결되어 함께 일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샤모토의 영업소가 적발되면서 도모키 형제를 제외한 사기단이 체포됩니다. 그때 사기단의 밀고자로 짐작되는 남성이 교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피해자의 셔츠에 펜으로 'RIP'라고 적어 놨는데, 그걸 수사본부의 누군가가 그대로 '립'이나 '립맨'으로 범인을 부르게 됩니다. 원래 영어로 'R.I.P'는 Rest in peace 로  '편히 잠들라.'라느 애도의 말입니다. 살인자가 남긴 메시지라는 게 아이러니합니다. 악어의 눈물처럼.

처음에는 속고 속이는 사기꾼과 경찰 간의 대결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평범했던 도모코가 돈을 벌기 위해 사기단에 가담한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이었는지 너무 뒤늦게 깨닫는 장면을 보면서 느꼈습니다.

개인의 불행을 개인의 탓으로만 돌려서는 안 되는 거라고.

도모코는 샤모토 사기단이 적발될 때 동생과 함께 무사히 빠져나간 것이 행운인 줄 알았겠지만,

샤모토보다 더 사악한 사기꾼 아와노를 만나 유괴 사건의 범죄자가 되었으니...

인생의 바닥, 거기가 끝인 줄 알았는데 바닥 아래 낭떠러지로 떨어진 상황이랄까.

아와노는 매우 지능적으로 도모코를 자극하여 유괴 사건을 계획했고, 철저하게 이용했습니다. 뻔히 사기꾼이란 걸 알면서도 끝까지 아와노를 믿었던 도모코를 순진하다고 해야할까요, 아니면 어리석다고 해야할까요. 도모코에게서 삭막한 현실을 살아가는 불안한 청춘을 봤습니다. 오로지 돈 때문에 타인을 속이다보면 결국 자신의 양심마저 속이게 된다는 것. 아주 작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으려면 역설적으로 믿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자신의 양심을, 그리고 희망을 말이죠.

아와노는 속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감정을 교묘하게 조절할 줄 안다는 것, 반면 아와노 자신의 감정에는 티끌만큼의 잔물결도 일지 않는다는 게 소름끼칩니다. 단순히 지능형 범죄자, 천재 사기꾼이라고 부를 게 아니라 '악마'가 아닌가 싶습니다. 절대 탐욕을 드러내지 않고, 딱 정해진 만큼만 챙기면서 상대방이 끝까지 자신을 믿게 만드는 능력.

만약 그가 "Rest in peace" (레스틴피스)"라는 말을 남기지 않았다면, 모두가 깜박 속았을지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립맨이 이겼습니다. 후속작이 나온다면 립맨을 능가할 수 있는 능력자가 제발 나오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