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칼 융의 ‘현대의 신화’라는 책이 출간되었다.(2013년 11월) 이 책은 UFO 현상을 분석심리학으로 고찰한 저서이다. 융은 UFO를, 구원을 상징하는 종교적 원형으로 설명했다. UFO에 대한 믿음이나 보고(報告)는 더 이상 새롭지 않다. 다만 UFO학 또는 UFO 신학, UFO 인류학 등의 학문이 UFO를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 정도는 말할 수 있겠다. 성시정의 ‘UFO학 인류학과의 조우’는 UFO 현상에 투사된 인간의 보편적 욕망 및 원형적 욕구를 헤아린 책이다.

UFO와 관련한 정보들이 방대하게 축적된 상황에서 눈에 띄는 것은 유리 겔러(Uri Geller: 1946 - )와 베티 앤드리슨 루카(Betty Andreasson Luca)의 사건이다. 유리 겔러는 UFO에서 나온 광선에 노출된 후 초능력을 얻었다고 주장한 마술사이다. 그가 자신의 초능력을 인지한 것은 여섯 살 때라고 한다. 반면 외계인들에게 납치된 사례 중 최면 전문가들에 의해 가장 신빙성 있는 것으로 판정된 사건의 주인공인 베티 앤드리슨 루카는 외계인들에게 납치되어 종교적 황홀경을 경험했음을 고백한 여자이다.

성시정은 ‘UFO학 인류학과의 조우’를 통해 주술과 과학의 이분법을 넘어 존재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와 갈망을 드러내고자 했음을 밝히고 있다. 그가 인용한 것처럼 ‘브로카의 뇌‘라는 글에서 영국에서의 여론조사 결과(1979년)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보다 외계인들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 많은 것으로 드러난 사실은 종교의 쇠퇴(衰退) 및 뉴 에이지 운동의 발흥(發興)을 이해하는 단서가 될 수 있으리라 보인다. 물론 중요한 것은 기성 종교와 뉴 에이지 운동이 공히 현세와 내세, 구원, 지금 여기가 아닌 저 먼 곳에 대한 믿음에 기초한 체계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런 점이 저자로 하여금 ‘UFO학 인류학과의 조우’ 같은 책을 쓰게 했을 것이다. 다만 저자의 초점은 과학과 UFO라는 종교의 유사성보다 과학의 외피를 쓴 UFO라는 종교의 위상에 맞추어졌다. 저자는 카고 컬트(cargo cult)를 언급한다. 카고 컬트는 19세기 말 남태평양 전역에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도 간헐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천년왕국운동이다. 이들은 백인들에 의해 오염(왜곡)된 세계를 종식시키기 위해, 잠들어 있던 조상들이 깨어나 생명의 하물(荷物)을 실은 배를 타고 이 세상에 귀환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조상들이 배에서 하물을 내리면 낙원의 시간, 신화의 시간, 태초의 시간, 영원의 시간 즉 엘처링가(Alcheringa)가 이 지구에 실현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축 믿음이었다. 1875년 남태평양의 피지 제도에는 엔둥구모이에 의해 주도된 투카라는 카고 컬트 운동이 있었다. 성경이 백인들에 의해 왜곡되었다고 주장하는 그들에 의하면 나티리카우몰리와 나카우삼바리아라는 쌍둥이 형제가 여호와와 예수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다.

뉴 에이지와 UFO의 관련성을 언급하며 저자는 뉴 에이지 신봉자들이 현재는 그리스도 시대와 동일시되는 물고기 자리의 시대이고 서기 2015년 이후의 시대를 물병자리로 규정한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뉴 에이지 시대는 불안과 혼란에 빠진 서유럽 현대인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그들의 강력한 무기는 정교한 과학적 언어로 무장한 UFO 운동이다. 15세기 말 지상 낙원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이라 믿었던 콜럼버스처럼 뉴 에이지 운동 참여자들은 UFO라는 우주선을 발견했다고 말하는 저자에 의하면 UFO 컬트는 유토피아에 대한 인간의 원초적 욕망과 갈급을 극적으로 충족시키는 천년왕국운동의 일종이고 빛을 가져오는 인간을 뜻하는 라엘리안파 역시 뉴 에이지 시대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라엘리안파들은 성경 창세기 1장 1절에 나오는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내셨다는 구절에서 하느님으로 잘못 번역된 엘로힘은 하늘에서 온 사람들 즉 우주인들로 번역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지내셨다는 뜻은 외계에서 발견한 지구가 자신들의 행성의 조건과 같지 않지만 인공적 생명을 창조하는 데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추었음을 확인했다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UFO가 새로운 시대 즉 뉴 에이지 시대와 관계된 것이라면 외계인의 도래는 종말론적이고 메시아적 의미를 지닐 수 밖에 없다.

라엘리안파의 교주인 클로드 보리롱(Claude Vorilhon: 1946 -) 라엘은 모세, 예수, 석가, 마호메트, 요셉 스미스를 지구에 파견된 외계 메시아이고 자신은 마지막 예언자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외계인 즉 신은 지구인들을 전쟁, 핵실험, 생태계 파괴 등 인류를 공멸에 빠트릴 위기에서 구해야 한다는 특별한 사명의식으로 대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보면 UFO 신봉자 또는 라엘리안파는 휴거파들이나 종말론을 믿는 민속종교의 신자들을 닮았음을 알 수 있다.

UFO 신봉자들은 외계인의 사명이나 지구 방문이 지구의 반그리스도 세력인 미국 정부에 의해 철저히 은폐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서유럽의 UFO 컬트와 남태평양의 카고 컬트는 천년왕국 운동의 일종이다. 관건은 사람들이 UFO에 대해 보이는 갈망과 염원일 것이다. ‘UFO학 인류학과의 조우’ 는 바로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춘 책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을, 설명할 수 없는 불가사의하고 기이한 현상을, 과학에 의해 아직 해명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신으로 치부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주장하는 책과 차원이 다르다. 마찬가지 의미에서 이 책은 UFO의 실재성을 증명하고 입증하기 위해 애쓴 책도 아니다.

저자의 중심 주장은 고대의 엑스터시 예술이 현대 첨단과학의 외피를 입게 되면 곧장 UFO 신앙으로 변신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UFO 접촉을 또 다른 형태의 임사체험으로 본다. 사실 임사체험은 신비 내지 기이함의 눈으로 볼 것이 아니라 고통의 관점으로 다루어져야 옳다. 저자의 책에서 이는 샤먼의 무병(巫病)과 차원이 같다. 본문에는 읠리엄 버틀러 예이츠(William Butler Yeats: 1856 -1939)의 시 한 편이 나온다. “죽음으로써 우리는 다시 일어나 환상의 낙원을 꿈꾸고 창조하노라.”란 시이다.

예이츠는 영매(靈媒)인 부인의 입을 통해 전해진 영적 존재로부터 계시를 받은 내용을 책으로 쓰기도 했다. ‘비전’(2013년 시공사 출간)이 그 책이다. 이 책에서 예이츠는 살아 있는 존재와 죽은 존재 사이의 영적 교섭을 긍정하는 자신은 스베덴보리(Emanuel Swedenborg: 1688 - 1772)가 천국의 상태와 죽음 사이에 있는 모든 존재를 형성력 있고 환상적이며 기만적인 우리 꿈의 등장인물이라고 묘사했던 사실을 기억한다는 말을 했다.

스베덴보리는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와의 인연으로 유명하다. 일설에 의하면 스베덴보리는 놀라운 투시능력으로 칸트의 신념을 뒤흔든 사람이다. 저자는 미지의 절대적 존재와의 만남에서 경험하는 두려움과 매혹이 섞인 감정을 누미노제라고 표현한다. 결론은 무엇일까? 샤머니즘은 결코 죽지 않고 이름만 바뀔 뿐이라는 것이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외계인을 몸주로 모시는 UFO 샤먼이 등장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이다.

‘UFO학 인류학과의 조우’가 나온 지 11년이 되었다.(2003년 출간) 그 이후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물론 저자의 말이 맞았는지 맞지 않았는지를 따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사실 따지기도 어렵다. 중요한 것은 저자의 상상력이다. 인과관계와 유사성, 차이에 착안하는 상상력인 것이다. (UFO가 사실이다 아니다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배경 지식을) 헤아리는 것이다. 염불(念佛)보다 젯밥에 더 큰 관심을 두는 현실에서 저자가 돋보이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