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 소설 등을 읽을 때 관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보편타당한 해석(解釋)과 읽는 이의 고유한 해석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일 것이다. 전통적 해석학은 보편타당한 해석이 가능함을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저자의 정신을 재건함으로써 보편타당한 해석을 담보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초한 해석학의 기저에 신학적 해석학이 놓여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휴머니즘의 도래로 인해 신의 의도는 인간의 의도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다른 많은 텍스트들에서처럼 시 해설서들 역시 시인의 의도를 분석하고 그 사상적 배경을 뒷받침(승인)하는 해설서들이 있는가 하면 해석자가 비평적 자의식을 작동시켜 시의 잘된 점과 그렇지 않은 점을 균형 있게 배분해 해설하는 책들이 있기 때문이다. 전자는 비판이 배제된 무난한 해석이 되기 쉽고 후자는 비판에 치우치는 해석이 되기 쉽다.

중요한 것은 시인이 시를 쓰는 것 역시 해석의 일종이라는 점이다. 해석이라는 말을 했지만 해석을 도용(盜用)이라 표현한 정신분석학자 줄리아 크리스테바에 이르면 해석의 위상은 단순하지 않아 보인다. 크리스테바에 의하면 해석하려는 동기는 언제나 욕망과 공격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때 욕망이란 소유욕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학평론가인 임동확 시인은 일반적으로 모든 시작(詩作)은 마주치는 낯선 풍경이나 사물들을 장악하고 소유하려는 개념적 동일화를 포기하면서 시작(始作)된다고 말한다.(‘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 5 페이지) 그런데 시인들은 일의적(一義的)이지 않은, 자신만의 고유한 해석을 지향한다. 그렇기에 시인을 굳이 무욕한 존재라 할 수 없다. 개념적 동일화의 욕망 대신 자신만의 고유한 해석을 하(려)는 욕망이 있는 것이다.

욕망이 굳이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기에 하는 말이지만 시인들은 자신만의 언어를 갈고 다듬어 유통시키려는 욕망을 지닌 존재들이다. “애초부터 한 편의 시는 하나의 주제나 의미로 고정되거나 해석되기를 거부”하기에 미학적 긴장이 발생한다. 이 긴장은 창조적 긴장이자 긍정적 긴장이다. 개념적 동일화를 거부하는 시인의 내밀한 언어 사용은 다른 해석을 부른다. 그러나 그 다른 해석에는 수긍할 만한 점이 있다. 그렇기에 타인의 해석에 대한 공감이 발생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작품에는 작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런 점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한 작품에 대해 내린 해석이 역으로 작가 자신으로 하여금 새 세계를 보게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를 읽으며 이런 생각들을 하는 것은 문학평론가 저자인 임동확 시인의 해석이 참으로 정교하고 촘촘하기 때문이다. 과연 텍스트 분석의 대상이 된 시인들은 임동확 시인의 해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궁금하다.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는 문학평론가인 임동확 시인의 시 다르게 읽기의 결정체이다. 이 책은 모든 인간들은 본래 시인으로 태어났다고 말하는 저자의 의도가 생(生), 길, 시간, 공간, 고독, 아니마, 아니무스 등의 주제어로 한 편의 시를 분석하는 것으로 나타난 책이다.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는 말은 중생은 모두 불타(佛陀)가 될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는 불교적 진술을 떠올리게 한다. 저자는 말한다. 타자와의 고립 속에서 자신을 조직하고 구성하는 것이 아닌, 이 무한한 흔들림의 연속성에 참여함으로써 비로소 자신만의 고유성과 정체성을 갖는다고. 이는 수많은 몰개성적 해석과의 만남과 대결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시인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형상화할 수 있다는 뜻의 말로 들린다.

저자는 기형도 시인의 ‘정거장에서의 충고‘를 해석한 장(章)에서 그가 말한 정거장은 살아 있는 한 길 위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운명을 자각하고 오히려 그 절망의 길을 희망의 거점으로 삼고자 하는 자의 존재론적 전향에 대한 예감이 더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렇듯 저자로 하여금 어둡고 절망적인 분위기의 시를 긍정과 굳은 다짐의 시로 읽게 한 것은 하이데거의 “모든 인간은 태어나자마자 이미 죽기에는 충분히 늙어 있다.”는 말이다. 말하자면 죽음으로 향하는 존재인 ’나‘는 오히려 그것을 통해 자신의 본래적 가능성을 타진한다는 것이다. 시간을 키워드로 설정한 최하림 시인의 ’공중을 빙빙 돌며‘ 해설에서 저자는 기형도 시인에서와 같은 차원의 문제의식으로 존재 자체는 고정불변이 아니라 바로 그 헛되다는 시간 속에서 역동적으로 변해간다고 설명한다.

저자는 누구에게나 각각의 모든 순간들은 다시는 반복될 수 없는 절대적 순간이며 각자의 삶이 중심이 된 시간이라 말한다.(44 페이지) 물론 모든 순간들은 다시는 반복될 수 없다는 점은 옳다. 하지만 무수한 반복으로 구성되는 일상은 다른 눈을 필요로 한다. 가령 걷기를 예로 들어보자. 이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특정 공간에서 미세하게 차이나는 모습으로 매번 다르게 펼쳐지는 재현 불가능한 하나 하나의 동작이 아니라 그런 개별적 차이를 뛰어넘어 반복되는 걷기라는 동작 자체이다. 매순간 다르게 펼쳐지는 걷기라는 하나 하나의 동작에 의미를 두는 것은 파편적일 뿐 아니라 무의미하다. 그 개별적인 동작들 하나 하나로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삶은 중요한 순간들, 유일회적인 순간들,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들, 사소한 순간들 등 위계서열화된 다양한 순간들로 이루어진다.

정지용 시인의 ’장수산(長壽山)’이라는 시를 공간을 키워드로 설명한 장에서 저자는 원근법이 공간의 공허함과 불안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된 것임을 지적한다.(47 페이지) 들어가는 글에서 시인을 고대의 샤먼에 비유했던 저자는 김현승 시인의 절대 고독을 설명하는 장에서 시인을 ‘곡비(哭婢: 양반의 장례 때 주인을 대신하여 곡하던 계집종)’ 또는 ‘곡비(曲庇: 힘을 다하여 비호함)를 자처하는 존재’로 설명한다.(68 페이지) (庇: 덮을 비, 허물 자) 조은 시인의 ‘무덤을 맴도는 이유’는 죽음에 관한 시이다. 이 시를 해설하는 장에서도 저자는 죽음을 부정적인 것만으로 보는 시각을 경계한다. 죽음을 의식하는 것은 나를 살게 하는 힘이자 삶에 구체적 형체를 부여하는 계기라는 것이다. 시인이 무덤을 맴도는 것은 죽음에 적응하고 그 의미를 진지하게 성찰하려는 의지의 결과이다.

이병률 시인은 ‘찬란’이란 시에서 “지금껏으로도 많이 살았다 싶은 것은 찬란을 배웠기 때문/ 그러고도 겨우 일년을 조금 넘게 살았다는 기분이 드는 것도/ 다 찬란이다”라 말한다. 저자는 이병률 시인이 지극히 평범한 사태조차 찬란하다고 노래하게 만든 힘은 온갖 생명 현상에 대한 한없는 공감과 긍정의 태도에서 온다고 말한다.(90 페이지) 본문 전체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허수경 시인의 ‘나무 흔들리는 소리’를 신성(神性)이란 키워드로 분석한 장을 읽으며 나는 시적 감수성을 유지하는 데에 과학의 언어나 가치관, 유물론적 세계관은 방해가 된다는 점을 실감했다. 저자는 모든 생명체를 폐쇄적이고 독립적 개체가 아니라 상호작용하는 열린 개체로서 이해할 때 인간은 나무 흔들리는 소리를 단지 하나의 물성의 진동이 아닌 새로운 존재의 목소리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한다.(121 페이지) 허수경 시인은 나무 흔들리는 소리를 일월성신이 인간이라는 종의 몸 속으로 들어오는 소리라 표현한다.

‘야생의 꽃’이란 시를 통해 허만하 시인은 “지구가 사라진 뒤의 낯선 천체 위에서 꽃들은 바람도 없이 온몸/ 을 흔들고 있을 것이다 불멸의 언어처럼 여린 몸짓으로 인류를 추억할/ 것”이라 노래한다. 저자는 이 장을 침묵이란 키워드로 설명한다. 침묵이란, 세계가 고정되고 단일한 의미만을 주지 않는 것, 스스로를 노출하지 않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일 것이다. 저자는 말할 수 없는 것들에 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이 불가지론의 함정에 빠지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130, 131 페이지) 이는 쉽사리 드러나지 않는 의미를 길어내느라 고심하는 시인의 정체성을 고려하면 충분히 수용할 수 있는 말이다. 시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 관해 말하려는 사람이다. 가령 흰 색 가운데서 흰 꽃잎은 희지 않는 것 가운데서 흰 것보다 본질적으로 더 희다는 허만하 시인의 언어를 보라. 이 장에서 침묵이 키워드로 설정된 것은 소리 없이 피고 지는 꽃잎에서 비롯된 것이다.

앞에서 작품에는 작가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말을 했는데 저자는 김정환 시인의 ‘독수리’를 예로 들며 그 시가 “자신도 모르게 보다 낮은 세계에서 보다 높은 세계로의 초월과 비상의 욕구를 드러”낸다고 말한다.(172 페이지) 김수영 시인의 ‘여자’라는 시에서 여자는 아니마라는 융 심리학의 용어로 설명된다. 저자는 부정적으로 거론된 김수영 시의 여성들이 김수영의 페르소나에 대응하는 무의식적 내적 인격인 아니마를 나타낸다고 말한다.(213 페이지) 반면 아니무스를 형상화한 것으로 설명된 시는 김승희 시인의 ‘배꼽을 위한 연가 5’이다. 저자는 이 시에 나오는 인당수를 막막한 바다와도 같은 무의식의 세계로 표현한다.(223 페이지)

‘우린 모두 시인으로 태어났다’는 시를 쓰는 저자의 정교한 시 읽기가 빛을 발하는 책이다. 특히 김정환 시인의 ‘독수리’를 변신(變身)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한 장은 인상적이다. 물론 시가 명쾌하기 때문이겠지만 김승희 시인의 ‘배꼽을 위한 연가 5’가 저자의 설명을 통해 가장 명쾌한 의미로 다가온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인당수에 빠질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 저는 살아서 시를 짓겠습니다”로 시작하는 시를, 효녀라는 페르소나 때문에 인당수의 제물이 되지 않겠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해석한 것은 정교하다. 저자는 백석 시인의 ‘나와 나타샤와 당나귀’를 연인이라는 키워드로 분석한 장에서 백석 시인이 몇 년 동안이나 만주에서 방황한 것은 단지 시 백편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무의식의 심층에 존재하는 민족적 원형이 작동한 것으로 풀이한다.(251 페이지)

저자는 서정시가 근본적으로 추방자인 인간의 운명을 일깨워 주는 것과 관계되어 있다고 말한다.(318 페이지) 세계의 타자이자 주변인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아프게 일깨워 주는 것이 서정시라는 것이다. 들어가는 글에서 밝혀진 ‘다소 난해하고 복잡한 내용의 시라도 우리에게 절실하고 간절한 인생 문제들을 깊이 있게 다룬 시들을 시 읽기의 텍스트로 삼았다.’는 저자의 말이 다시 떠오른다. 저자는 그 과정에서 시인이 위대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말하는데 내게는 그런 점을 읽어내는 평자도 그에 못지 않은 존재로 여겨진다. 저자의 시 읽기는 정교하고 치밀한 시 읽기의 전형으로 기억될 만하다. 시집 한 권을 분석하는 것보다 어려울 수 있는 시 한 편 읽기의 매력을 느낀 독서였음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