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 1902 - 1968)의‘분노의 포도’(1939년)는 오클라호마의 가난한 소작농 가문인 조드 가문을 등장시켜 1930년대 대공황기의 실상을 생생하게 그려낸 장편소설이다. 작가에게 퓰리처상과 노벨 문학상을 안겨준‘분노의 포도’는 출간 초기 정치적 이유로 금서 목록에 올라 소각당하기도 했던 문제작이다. 독일계 아버지와 아일랜드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스타인벡은 외가쪽인 켈트 민족의 후손이라는 의식을 강하게 지녔다. 그는 성장기에 농장 일꾼들과 정기적인 노동을 했는데 이것은 이민생활의 고단함과 어두운 인간성에 대해 성찰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소설은 예기치 않은 싸움에 휘말려 살인죄를 저지른 조드家의 둘째 아들 톰 조드가 4년의 복역 후 가석방되어 집으로 향하던 중 어린 시절 자신에게 세례를 준 전직 전도사인 짐 케이지를 만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윤만을 생각하는 대자본가의 탐욕에 의해 고향인 오클라호마에서 쫓겨난 조드 일가는 일자리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향한다. 낡은 허드슨 트럭에 몸을 실은 열두 명의 조드 일가가 오클라호마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이동한 사건은 대장정이라 불리기에 족한 사건이다. 일가는 갖은 어려움을 겪은 끝에 후버빌(대공황기에 세워진 천막촌)에 도착하지만 그곳은 꿈에 그렸던 실상과는 너무 거리가 멀었다.

  

플로이드란 남자를 알게 된 톰은 그가 하청업자 및 보안관에게 체포당할 위기에 놓이자 보안관을 때려 눕히고 그를 구하지만 가석방 중인 자신을 대신해 범인을 자처한 짐 케이시 덕분에 위기를 모면하고 몸을 숨긴다. 일가는 남쪽으로 내려가 정부가 운영하는 위드패치 캠프에 도착한다. 위드패치 캠프는 대공황 중에 세워진 수용시설로 자체적으로 경찰을 뽑아 치안을 유지하고 규율 위원회와 오락 위원회를 운영하는 등 코뮨적인 모습을 보인 생활터전이었다. 하지만 일가는 일자리를 얻지 못해 결국 그곳을 떠나고 만다. 조드 일가는 튤레어에서 복숭아 따는 일자리를 얻는다.  

톰은 그곳에서 농장주들을 상대로 임금 인상을 이슈로 파업을 주도하고 있는 짐 케이지를 만난다. 케이지는 경찰에 죽임을 당하고 톰은 케이시를 죽인 사람을 죽이고 피투성이가 된 채 도망한다. 조드 일가는 그곳을 떠나 목화 농장에서 일하게 된다. 목화를 다 따갈 무렵 일가는 대홍수를 겪는다. 톰의 여동생인 로저샨은 아이를 사산한다. 일가는 개울에 제방을 쌓으려 하지만 실패하고 언덕 위의 헛간으로 피신해 굶어 죽어가는 한 노동자를 보게 된다. 로저샨은 그를 가슴에 품고 젖을 먹인다. 로저샨은 신비로운 미소를 짓는다. 이 인상적인 장면으로 소설은 끝을 맺는다. 

 

평자들은 포도가 상징하는 것이 풍요와 부활이라는 말을 한다. 아이를 사산한 로저샨이 굶어 죽어가는 노동자에게 젖을 먹인 행동은 순환하는 생명의 신비와 풍요를 상징한다. 스타인벡은 인간을“우주의 모든 유기체나 무기체와 달리 자기가 창조한 것을 넘어서서 성장하고 자기의 사고의 범주를 딛고 넘어 자기가 이룩한 업적보다 앞서 나아가는 존재”,“고통을 겪으면서 때로 과오를 범하기도 하고 비틀거리면서 전진.”하는 존재로 규정했다.(228, 229 페이지)  

1929년에서 1933년 사이에 일어나 자본주의의 근본을 흔든 대공황은 공업, 금융, 상업 뿐 아니라 농업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친 과잉 생산 공황이자 통화 공황적 성격을 띤 재앙이었다. 1920년대 미국의 경기상승을 받쳐준 과잉 자본은 유휴 과잉자본의 주식투기, 토지투기 등으로 이어졌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가에 의한 유효 수요창출, 완전 고용, 금본위제를 대체한 관리통화 제도 등이 시행되었다. 미국은 이 정책의 일부를 수렴하여 뉴딜 정책을 시행했다. 역사상 모든 시대에 공황은 항상 있었다. 

 

자본주의의 성장 이전에 일어난 공황은 흉작이나 전쟁 등 비정상적 사건으로 인한 것인 반면 자본주의의 성장 이후 일어난 공황은 경제 체제의 구조적인 모순 때문에 주기적으로 발생했다는 차이가 있다.‘분노의 포도’에서 다루어진 공황은 자연 재해와, 자본가들의 탐욕이 함께 작용한 공황이었다.‘분노의 포도’는 문학성면에서나 사회학적 가치면에서 두루 가치를 발하는 책이다. 그것은 줄거리를 다룬 짝수 장(章)과 신비적이고 시적 문장들로 색다른 분위기를 발한 홀수 장(章)의 공존만큼이나 중요한 특성이다. 작품에서 다루어진 사건들은 오래 전 과거의 이야기이지만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있다는 점에서‘분노의 포도’는 현재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