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최인훈의‘광장’은 名作이다. 주제나 형식면에서 새롭고 여러 유형의 비평 방법이 두루 적용될 수 있는 비평의 광장에 해당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영문학자 김욱동은‘광장을 읽는 일곱 가지 방법’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일곱 가지 비평이란 역사비평, 형식주의 비평, 심리주의 비평, 사회학적 비평, 신화비평, 구조주의 비평, 포스트구조주의 비평 등이다.‘광장(廣場)’은 월북한 아버지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던 철학도 이명준이 북으로 올라가 그곳의 정치체제에 가담하지만 남한의 '밀실'에도 북한의 '광장'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다 6.25전쟁 중 포로가 된 끝에 중립국행을 택하지만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줄거리를 가진 작품이다.

이 작품을 읽은 지 이미 십 수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인상적인 것은“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라는 말과 카톨릭과 스탈리니즘을 열 가지 항목에 걸쳐 비교한 것이다. 1. 에덴 시대 vs 원시 공산사회, 2. 타락 vs 사유제도의 발생, 3. 원죄 가운데 있는 인류 vs 계급사회 속의 인류, 4. 구약 시대 여러 민족의 역사 vs 노예·봉건·자본주의 사회의 역사, 5 .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남 vs 칼 마르크스의 나타남, 6. 십자가 vs 낫과 망치, 7. 고해성사 vs 자아비판제도, 8. 법왕 vs 스탈린, 9. 바티칸궁 vs 크렘린궁, 10. 천년왕국 vs 문명 공산사회...

나는 한 작품을 여러 관점으로 보는 것은 매력적이고 방법론들간의 모순은 오히려 흥미로운 대목이라 생각한다. 역사비평은 문학 작품을 역사의 산물로 간주(看做)한다. 나는 결코 탈역사적이거나 몰역사적이지 않은데 역사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과학 이론서를 읽다가 어느 순간 지도로 좌표를 확인하듯 과학사를 참조하는 나는 역사비평을 무게감으로 대한다.(역사 비평의 하위 장르로 傳記비평, 언어비평, 장르비평, 원본비평 등이 있다. 원전비평은 문학작품의 기원과 발상을 캐고 앞뒤의 영향관계를 밝히는 비평이다.

원본비평은 문학비평가들이나 문학연구가들이 믿고 쓸 수 있는 올바른 텍스트를 만드는 작업이다.(이는 와전이나 왜곡에 대응하기 위한 비평방법이다.)‘광장’은 작가 최인훈 선생의 전기적 요소가 적잖이 반영된 작품이다. 1936년 함경북도 회령에서 태어난 작가는 한국전쟁을 맞는데 이때 작가는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이었다. 북한체험과 한국전쟁, 월남, 피난살이, 대학, 7년간의 軍생활, 4년 가까운 미국 경험 등이‘광장’에 녹아들었음은 물론이다. 장르면에서‘광장’은 중편소설이고 이념소설 중에서도 분단 소설이다. 1950년대 초반부터 중편소설이 붐을 이룬 것은 당시 주목할 만한 몇 개의 월간 종합 교양 잡지들이 창간되었기 때문이다.

작가는‘광장’을 무려 일곱 번이나 고쳐 쓰고 다시 고쳐 썼다. 전집판의 제 2판에서 작가는 볼셰비즘이나 코뮤니즘을 스탈리니즘으로, 볼셰비키를 스탈린주의로 바꾸었다.(북한의 정치체제가 볼세비즘보다 스탈리니즘에 더 가깝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형식주의 비평은 문학 작품의 형식적 구조를 밝히는 비평이라는 점에서 역사비평과 대조된다. 형식주의 비평의 대표격인 러시아 형식주의의 기법 가운데 ‘낯설게 하기’와‘드러내기’가 있다. 형식주의 비평은 역사적 맥락을 도외시하고 문학 작품에 자기 목적성을 부여한다. 그들은 문학 작품을 통해 작가는 자신의 의도를 말하기를 꺼리고 말할 때에도 대개 거짓 진술을 한다고 보았다.(무의식적으로 의도했던 바를 작가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들은 작품에서 구성을 중요시한다. 최인훈의 문학관은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의 문학관과 유사하다고 저자는 말한다.(문학어와 일상어의 구분) 작가는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고 말한다. 최인훈의 문학관은 인간의 속성을 호모 비아토르(편력하는 인간)로 본 프랑스의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을 연상하게 한다. 마르셀은 1962년‘호모 비아토르’라는 책을 썼다.homo viator는 영어로 itinerate man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순회 또는 편력하는 인간을 의미하는 말이다. 형식주의 비평에 의하면‘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이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을 한 것은 이데올로기와 사랑 중 사랑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 자체 모험 또는 순회를 목적으로 한 행동의 결말이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무엇이라 이야기 하든 형식주의자들은 작가의 의도를 작품의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의도의 오류라고 말한다. 우리는 때로 작가보다 더 그럴 듯하게 작품을 해석하는 평자들을 만난다. 이명준의 자살을 사랑을 택한 결과로 해석한 김현(149 페이지)은 작가보다 더 작가의 의도를 잘 파악한 평론가로 꼽혔었다. 그의 이른 죽음(1942 ~ 1990)이 안타깝다. 그러나 '광장'은 상징적 의미로 가득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편력 또는 순회를 의미하는 작품으로 볼 수만은 없는 풍부함이 있다. 역사 비평이 끝나는 곳에 형식주의 비평이 시작되듯 형식주의 비평이 끝나는 곳에서 심리주의 비평이 시작된다.(177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심리주의 비평은 잘못 사용되어왔다. 사람들은 흔히 심리 문제와 조금이라도 맥이 닿으면 심리주의 비평으로 간주한다. 심리주의 비평가들은 작가의 삶에 관심을 갖지만 역사적 맥락이 아니라 심리적 맥락에 더 큰 주의를 기울인다. 심리주의 비평의 주요 목적은 문학 작품은 꿈과 같아서 명시적 내용과 묵시적 내용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는 점을 드러내는 데에 있다.(정신분석에서 말하는 꿈의 기제인 응축이나 치환을 보라. 그리고 라캉이 이야기한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말을 기억하자.) 정신분석 이론에서 성(性)은 아주 중요하다.(저자는 정신분석 이론은 性 이론이라 말한다.)

저자는 이명준이 아버지에 대해 보인 태도를 외디푸스 콤플렉스로 규정한다.‘광장’에는 프로이트주의로 해석할 수 있는 내용들이 꽤 많다. 그리고 에고, 이드, 수퍼 에고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은혜는 이드로, 윤애는 수퍼 에고로, 이명준은 에고로...) 정신분석학적으로 이명준의 자살은 탄생 이전의 침묵으로 돌아가려는 무의식적 동기에 따른 행위이다. 사회학적 비평 방법은 역사 비평 방법과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연구 방법론이지만 역사 비평과 달리 언어 문제 즉 텍스트가 전달되는 과정에는 이렇다 할 관심을 갖지 않는다. 역사 비평 방법론이 통시적 측면에 관심을 갖는다면 사회학적 비평 방법은 공시적 측면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플라톤이 씨앗을 뿌린 사회학적 비평은 18 세기에 비로소 싹이 트고 열매가 맺힌 문학 연구 방법론으로서 특정한 문학 형식은 특정한 시대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223, 224 페이지) 문학사회학과 예술사회학을 포함하는 칼 만하임의 지식사회학, 뤼시엥 골드만의 발생론적 구조주의 이론도 사회학적 비평에 속한다. 사회학적 관점으로‘광장’에 접근하는 것은 작품 바깥쪽에 눈을 돌리는 것과 안쪽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나뉠 수 있다. 작품 외적 문제는 작품의 생산, 분배, 소비를, 내적 문제는 주제, 내용을 의미한다.

사회학적 비평의 하나인 마르크스적 관점으로‘광장’을 보면 유물론자인 이명준은 자신의 육체나 여성의 육체만을 믿을 뿐 역사의 진보나 발전을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와는 거리가 먼 유물론자이다. 사회학적으로 볼 경우‘광장’의 문제는 여성들이 남성중심주의의 가부장제도 아래에서 억압을 받고 타자화되었다는 점이다. 이명준은 남성 우월주의자이자 반페미니스트이다.(256 페이지) 한편 에밀 뒤르켐의 기준으로 이명준의 자살은 자아적 자살이자 아노미적 자살이다. 어느 특정한 방법론에 머물지 않고 다양한 영역을 두루 망라한다는 점에서 신화비평은 백과사전적이다.(문화인류학, 심리학, 비교종교학, 역사, 철학, 예술....)

신화비평은 심리주의 비평과 가장 가깝다. 신화비평은 인간의 동기가 投射되는 상징적 형태나 구조에 큰 관심을 갖으며 종교, 인류학, 문화사 등과 깊이 관계되어 있다. 신화비평에서 볼 때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데 집요했던 이명준은 순례자라 할 수 있다.‘광장’에서의 이명준의 행적은 아버지의 탐색이라는 신화적 모티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희생양의 모티프로도 해석할 수 있다.(이명준은 남한의 자유민주주의와 북한의 사회주의라는 이데올로기의 갈등 국면에서 방황하다가 죽음을 맞는다.) 또한 무시할 수 없이 매력적인 해석은 신화적 의미에서 (이명준이 자살한) 바다는 생명의 어머니의 의미를 지녔다는 점이다.

문학 연구 방법론 가운데에서 가장 과학적 엄격성과 객관성을 지향하는 구조주의는 인간의 모든 사회, 문화적 행위의 밑바탕에 깔려 있는 부호나 규칙 또는 체계를 찾아내려고 한다.(302 페이지) 문학 작품을 현실의 모방이나 재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저자의 감정이나 사상의 표현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구조주의는 문학과 저자의 신비를 벗기려는 방법론이다. 이는 구조주의를 문학을 비인간화시키는 이론 또는 반휴머니즘적 이론으로 규정하게 하는 근거로 작용한다. 구조주의는 러시아에서 일어난 형식주의가 논리적으로 발전한 이론으로 현대 언어학과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는 언어와 똑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음을 밝혔다.(이는 내가 좋아하는 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는 라캉의 말을 연상시킨다.) 구조주의 원칙은 이항 대립(binary opposition), 매개항(mediation), 통과제의(rites of passage), 전체성(totality), 변형(transformation) 등이다.(이는 에드먼드 리치의 이론이다.: ‘성서의 구조 인류학’ 참조) ‘광장’은 이항대립을 염두에 두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텍스트이다. 남한 vs 북한, 자유민주주의 vs 공산주의, 육지 vs 바다, 윤애 vs 은혜, 밀실 vs 광장 등이 그렇다.(작가가 비교한 카톨릭과 스탈리니즘은 대표적이고 절묘한 이항대립의 예이다.)

제라르 주네트의 서사 담론의 틀로써‘광장’을 분석해 보면 그것은“이명준이 배를 타고 중립국으로 가는 도중 바닷물 속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는다.”는 문장을 이야깃거리로 길게 만들어놓은 작품이다. ‘광장’에서 작가는 스토리와 플롯의 균형을 아주 많이 깨트렸다. 이런 점에서‘광장’은 리얼리즘 계열의 작품과 거리가 멀다. 포스트구조주의 비평은 구조주의의 과학적 야망에 깊은 회의를 보인다.(353 페이지) 그들은 구조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의 주요 주장은 상호텍스트성과 의미의 비결정성이다. 상호텍스트성이란 모든 문학 텍스트는 모자이크처럼 짜여 있음을 의미하는 말이다.

텍스트의 상호 관련성을 강조하는 이런 관점에 의하면 저자가 들어설 자리는 없다. 바르트는 저자를 사유재산 제도와 더불어 생겨난 부르주아 개념으로 보았다. 포스트구조주의 진영에 따르면 가령 남성과 여성의 이항 대립은 지극히 인위적이다. 말과 글의 관계도 그렇다. 해체는 그런 폭력적 질서를 붕괴시키려는 시도이다. 작가가 밀실도, 광장도, 그것이 상징하는 남한도 북한도, 자유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모두 거부한 것은 포스트구조주의적이다.(이항대립의 거부) '광장‘에서 최인훈은 무엇보다도 이항 대립의 폭력적 계급을 해체하려고 한다.”(382 페이지) 문학 작품에서 시니피에보다 시니피앙에 더 무게를 두고 비평을 한 자크 라캉의 관점에서 ’광장‘을 읽는 것도 흥미롭다.(이는 물론 포스트구조주의적인 방법이다.)

의미란 시니피앙의 무한한 미끄러짐 현상을 통하여 만들어지기 때문에 확고부동한 의미체계는 있을 수 없다. 광장이라는 말은 작품에서 수많은 시니피에를 만들어낸다.(내가 읽은 김형효의 ’구조주의의 사유체계와 사상‘에 의하면 하나의 시니피앙과 여러 개의 시니피에가 연결되는 것은 정신분열증적이다. 반면 하나의 시니피에가 여러 개의 시니피앙을 지시하는 것은 정신착란증적이다.) 작가는 광장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남용했다는 비평을 받는다. 광장이란 말은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자‘를 연상하게 한다. 이 작품의 여 주인공 헤스터 프린은 17 세기의 준엄한 청교도 사회에서 종교적 규범을 어긴 채 젊은 목사와 간음을 범해 간통을 뜻하는 adultry의 머릿 글자인 A를 평생 가슴에 달아야 하는 처벌을 받았다.

이 작품에서 A라는 시니피에는 Angel(천사)이 되기도 하고 Able(능력가)이 되기도 하고 Admirable(존경받을만한/ 칭찬할만한)이 되기도 한다.(지난 2010년 7월에 나온 하성란의 ’A‘라는 장편 소설에는 “천사(Angel)인가, 아마조네스(Amazones)인가, 간통한 자들(Adultry)인가" 라는 소개 글이 작품 전면에 쓰여 있다.) 이렇듯 광장이라는 말도 지시하는 바가 상당히 넓고 크다. 포스트구조주의의 관점에서 보면 ’광장‘은 광장의 의미에 대한 소설이 아니라 광장 그 자체에 대한 소설이다. 포스트구조주의자와 저자의 말대로 텍스트란 늘 열려 있을 것이다. 텍스트의 의미가 닫혀 있다면 그것은 곧 텍스트의 죽음을 의미할 것이다.

’광장을 읽는 일곱 가지 방법‘에 소개된 방법들은 모두 매력적인 방법들이다. 상당히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책이라 느끼며 저자에게 감사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