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의 표지를 기억하는가? 아프리카 소년의 흑백 사진이 굶주림이라는 세계적 심각성을 일깨우는 이 책의 메시지는 어떤 책보다 강렬하다.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 특별보좌관을 지낸 장 지글러(Jean Ziegler: 1934 ~)가 쓴 이 책은 전 세계의 기아와 빈곤 문제를 선진국의 경제정책 등과 연관지어 폭넓게 다룬 책이다. 본문에 의하면 1999년 한 해 동안 3,000만 명 이상이 심각한 기아상태에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고 만성적인 영양실조에 허덕이는 사람들의 숫자까지 더하면 기아 인구는 8억 2,800만 명 정도에 이른다.(31 페이지)  

이런 점은 다른 경제학자의 자료를 통해서도 입증된다. 미국의 경제학자 첸(Shaohua Chen)과 라발리온(Martin Ravallion)의 자료에 의하면 2001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서 하루에 1 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극단적 빈곤 인구가 11 억명에 달하고 2 달러 이하로 살아가는 사람의 수는 27 억명에 달한다.(이강국 지음 ‘가난에 빠진 세계’ 32 페이지) 기아의 실상을 다루기 위해서는 해당 국가 또는 개인의 무능력과 게으름, 기상 재앙, 급속한 사막화, 정치적 소용돌이(내전 등의) 등을 두루 언급해야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자유주의 경제와의 연관성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덧붙여 고기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세계의 삼림들이 파괴되고 부국(富國)의 가축들이 엄청난 식량을 먹어치우는 현상들도 고려해야 한다. 부국(富國)의 가축들이 엄청난 식량을 먹어치우는 현상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표현 중 배부른 소 떼와 굶주린 사람들이라는 제레미 리프킨의 표현만한 것이 없어 보인다.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에 의하면 미국에서 쇠고기는 거대한 사업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미국에 限하지는 않는다. 리프킨은 소(cattle)의 어원이 동산(chattel)과 자본(capital)이라는 말을 한다. 소가 인간의 무시할 수 없는 자산으로 이어져온 것이다.  

문제는 장 지글러에 대해 “적당히 분노와 감동을 주면서 자신의 장사를 시작”하며 “기아 문제를 잘사는 나라들의 무관심으로 몰아가며 기아문제를 팔아 돈 버는 지식 장사꾼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는 비판이 가해졌다는 점이다.(최승노 자유기업원 대외협력실장: 2011년 11월 11일 경향신문) 이는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자비를 팔다’라는 책을 통해 데레사 수녀를 비판한 것을 연상하게 한다. 히친스는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것을 그리스도의 수난과 공유하는 것 말입니다.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난이 세계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와, 아이티의 끔찍한 독재자 뒤발리에의 부인 미셸과 자매처럼 포옹하고는 “영부인은 느끼시고, 아시며, 자신의 사랑을 말뿐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실체적인 행동으로써도 보여주고자 하시는 분입니다. …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의 우두머리와 이토록 친근한 경우는 처음 보았습니다. 아름다운 배움의 경험이었습니다.” 같은 언행을 문제삼아 데레사 수녀를 비판한 것이다.  

지글러는 과연 지식 장사꾼인가? 최실장은 지글러가 “기아문제에 분노하는 전문가일지는 모르지만, 기아해결의 전문가는 아닌 듯하다”고 말한다. 여기서 이준구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이준구 교수는 비판을 하는 사람에게 대안 제시의 부담을 지우는 것은 부당하다는 말을 했다. 사실 대안 제시는 정책담당자의 몫이 아닌가. 대안을 생각하고 입안(立案)하는 정도의 실력을 갖추었다면 그는 이미 전문가라 할 수 있다.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비판을 하느냐고 하는 사람들 눈에는 어떤 현상이나 정책에 대해 문제를 느끼지만 이렇다 할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오늘날 금융 전략가는 자기장을 측정하여 별들의 궤도를 계산하고 학문적 활동을 객관화하는 천문학자처럼 자연법칙을 들먹이며 인간이 아닌 이윤만을 생각한다는 지글러의 말은 의미심장하다. 지글러는 기아에 대한 대안으로 인도적 지원이 효율화되어야 하고 원조보다는 개혁이 우선되어야 하며 인프라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인간의 원리를 버린 채 사회윤리를 벗어난 시장원리주의 경제(신자유주의), 폭력적인 금융자본 등이 세계를 불평등하고 비참하게 만들고 있어. 그래서 결국은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나라를 바로 세우고 자립적인 경제를 가꾸려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거야(153 페이지)라는 지글러의 주장 중 신자유주의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 공감한다.  

다만 자립경제를 세워야 한다는 부분은 논의의 여지가 많은 것으로 보인다. 최승노 실장은 ”기아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자급자족 경제로 가자는 주장은 황당하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지글러의 주장은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기아의 주요한 발생 요인이고 그 해결을 위해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지양(止揚)해야 한다는 의미의 말이다.(굳이 굶주림이 아니라 해도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로 인해 벌어지는 극단적인 빈부격차를 생각해 보라.)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2007년에 읽은 책이지만 올해 ‘성장의 광기’(2011년 출간), ‘엔트로피’(2000년 출간), ‘경제학 혁명’(2011년 출간) 등을 읽으며 갖게 된 문제의식을 계기로 뒤늦은 서평을 쓰게 된 것이다. 지글러는 이 책 이후 ‘탐욕의 시대’와 ‘빼앗긴 대지의 꿈’을 연이어 썼다.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이후 더 이상 읽지 않은 그의 책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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