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경기도에서 태어나 대부분 경기도에서만 살았다. 그래서 경기도라는 이름이 익숙하고 京畿道라는 한문을 별 의식 없이 받아들여 써왔다. 그런데 막상 기(畿)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대답이 막막해진다. 경기란 서울(경:京)과 경기(기:畿)를 뜻한다. 물론 경기란 지명이 왕도(王都) 주위로 오백리 이내의 땅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거론하면 의미가 한결 정연해진다. 이내(以內)라는 말에 나는 내가 사는 경기도 최북단인 연천(漣川) 장남면의 경순왕릉을 떠올린다. 신라의 왕이 어떤 연유로 경주 바깥에 묻혔을까? 경주 바깥에 묻힌 신라의 왕은 경순왕밖에 없다.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은 나라를 고려에 넘기고 고려의 중심지에서 살다가 죽음을 맞았다. 이에 개성의 신라 유민들이 모여들어 그를 경주에 장사지내려 하자 망국의 왕을 장사지내는 것을 계기로 봉기가 일어날 것을 염려한 고려가 왕의 유구(遺柩)는 도성 밖 백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규정을 내세우는 바람에 연천 땅에 묻힌 것이다.  

서울은 경(京) 말고 낙(洛)이라는 한문으로 쓰이기도 했다. 우리 역사학계의 유명한 논쟁 중 인물성동이론(人物性同異論)이라 불리는 호락논쟁(湖洛論爭)이 있다. 호(湖)는 지금의 충청도 지방을 이르는 말인 호서(湖西)의 줄임말이고 낙(洛)은 지금의 서울 지방을 이르는 낙하(洛下)의 줄임말이다. 인성과 물성이 같으냐 다르냐는 논쟁이 호락논쟁으로 불리는 것은 인성과 물성이 같다고 주장한 세력들은 대개 낙하 지방에 거주했고 인성과 물성이 다르다고 주장한 사람들은 모두 호서 지역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낙(洛)은 물 이름과 서울의 이름을 뜻한다.  

반면 내가 사는 경기도의 기(畿)자가 들어간 기호(畿湖)라는 지명은 경기도와 황해도 남부 및 충청남도 북부를 이르기에 호락이라는 말보다 외연(外延)이 넓어 친밀도가 적다. 친밀도가 거의 없지만 외연이 좁은 호락이라는 말에 비해 친밀하지만 외연이 넓어 그만큼 막연한 기호라는 말은 이 단어가 들어간 신문 말고는 쓰이는 곳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경기도 문화유산 속 역사 이야기‘를 접하며 나는 저 먼 전남 고흥에 사는 아홉 살 조카를 떠올렸다. 이 책은 초등학생에게 맞는 책이지만 내가 사는 경기도의 문화유산에 대한 유익한 정보를 담은 책이어서 어른들이 읽어도 좋다. 나는 경기도에서 태어났고 지난 1980년부터 3년간 춘천에서 학교를 다닌 것, 지난 2006년 8개월간 울산에서 산 것 외에 경기도를 벗어난 적이 없고 특히 어린 시절 양평(楊平), 양주(楊洲) 등에서 살았던 것을 제외하고는 오롯하게 연천에서만 성인기를 보냈고 또 보내고 있음에도 연천에 대해 잘 몰랐고 특히 경기 남부보다 서울에 더 가까워 서울에 친근감을 느껴왔다.  

그런데 지난 2005년 이후 일 때문에 연천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많은 이야기 거리들, 유적지, 문화재 등을 보았다. 경순왕릉, 구석기 유적지, 호로고루성, 숭의전지(숭의전址), 미수 허목 묘역, 정발 장군 묘역 등....‘경기도 문화유산 속 역사 이야기‘에는 고양 벽제관, 파주 반구정, 파주 화석정 등 연천에서 가까운 문화유산이 소개되었지만 강화 정족산성, 강화 손돌목, 인천항, 수원 지지대, 여주 신륵사, 안성 칠장사. 광주 남한산성, 화성 마산포 등 연천과는 거리가 먼 유산들이 많이 소개되었다.  

아쉽다고 할 수도 있지만 역사에 대한 관심을 통해 내가 사는 경기도의 다른 사연들을 접할 수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물론 파주의 화석정은 거리와 관계없이 관심을 끈다. 불교에 대한 호감 때문에 남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여주 신륵사(神勒寺), 개혁이란 키워드에 따라 관심을 끄는 조선 22대 임금 정조(正租)와 관계된 수원 지지대 등의 내용은 유익하고 반가웠다. 너무 어른 중심이고 역사적 관점에 따른 관심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역사적 무게와 가족에 대한 정(情), 효성(孝誠)의 의미 등을 함께 음미할 수 있는 지지대(遲遲臺) 대목은 참 좋았다. 효자(孝子)였던 정조는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능에 다녀올 때 시흥과 수원 중간에 있는 고갯마루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몸이 피곤해서였지만 그 고개에서 아버지의 능이 한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차마 발길을 쉽게 떼지 못한 정조의 아픔이 만져질 듯 하다. 머물 지(遲)자가 두 자나 들어간 지명이 깊은 역사적 안목을 말해준다.  

경기도 민원 모니터를 하고 있는 선배와 최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선배는 연천과 경기도에 대해 공부를 하며 자료를 찾아 지역의 삶과 연결시켜 글을 쓰는 것이 힘이 든다는 말을 했다. 선배 말을 듣고 나니 ‘경기 문화유산 속 역사 이야기’ 같은 책도 유의미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아픔과 의미, 무게감이 없는 遺産은 없다. ’경기 문화유산 속 역사 이야기‘가 초등학생들에게 역사와 문화에 더 큰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특히 경기도에 사는 초등학생들에게 더 의미 있는 책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