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과 그리스도’는 범신(汎神)의 나라인 일본 기독교 작가들이 그리스도교에 대해 보인 갖가지 수용 양상을 분석한 책이다. 지은이는 신학박사 김승철. 그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1892 - 1927), 엔도 슈사쿠(1923 - 1996), 다자이 오사무(1909 - 1948), 시마자키 도손(1872 - 1943) 등이 쓴 유수(有數)의 그리스도교 작품들을 분석하며 집요저음(執拗低音)이란 뜻의 바소 오스티나토(basso ostinato)란 말을 꺼낸다. 이 말은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가‘일본에서 태어난 나의 그리스도‘란 관념이 일본 사상사의 특징이 된 현실을 논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다.

 

첫 주자(奏者)로 소개된 아쿠타가와는 열두 명의 작가를 대표한다. 십자가 처형을 위해 골고다 언덕을 향하던 예수를 멸시하고 모욕해 영원한 표랑(漂浪)의 형벌을 받게 된 유대인 요제프가 일본에도 오지 않았을까, 란 의문에 근거한 ’나의 그리스도‘란 작품이 그에게서 나왔기 때문이다. ’물의 성사(聖事)‘를 쓴 카톨릭 작가 엔도 슈사쿠는 일본인들은 범신성(汎神性)이라는 풍토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자연에 대한 여하한 투쟁이나 거리감도 거치지 않은 채 자연 혹은 신들, 그리고 우주와 융합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벚꽃과 그리스도‘에 수록된 작가들은 대부분 그리스도교로 인해 고뇌하고 갈등했다.

 

존 힉의 종교 다원주의적 그리스도론과 전통적 그리스도론 사이에서 고뇌했던 엔도 슈사쿠, 정통 그리스도교에서 자유주의 그리스도교로 또는 바울의 속죄론적 그리스도교에서 사도 요한의 사랑의 그리스도교로 이행(履行)했지만 공허감 끝에 자살한 아리시마 다케오(1878 - 1923), 형해화(形骸化)한 그리스도 이해를 벗어나 휴머니즘적 그리스도 이해를 위해 그리스도교를 떠난 시마자키 도손, 기성 성서 해석과 다른 독자적 성서 이해를 추구한 요시모토 다카아키(1924 - 2012) 등등... 물론 엔도의 말은 그리스도교 입교(入敎) 이전 즉 교리적 모순이나 배리(背理)를 알기 이전의 작가들에게 들어맞는 말이다.

 

반면 기타무라 도코쿠(1868 - 1894)는 고뇌하고 갈등했던 여러 작가들과 사뭇 대조적인 위상을 보였다. 남녀간의 연애에 지순성과 고도의 관념성을 부여한 도코쿠 사상의 근본에는 시대에 대한 저항정신의 밑바탕을 흐르는 생명에 대한 자각이 자리 했었다. 도코쿠는 이 모든 것의 전거(典據)를 그리스도교로부터 흡수했다. 그리스도교인이 아니면서 예수에 대해 무한한 동경을 품었던 무샤노코지 사네아쓰(1885 - 1976) 역시 남다르다. ’어떤 나라의 이야기‘라는 단편을 통해 이상주의적 공동체 건설의 꿈을 내보인 그에게 예수는 자신의 사명에 대해 회의하고 무력에 번민했으나 생각과 행동이 신의 뜻에 일치함으로써 결정적인 순간 신과 합일한 사람으로 자리매김한다.

 

요시모토 다카아키는 예수의 실재성 여부보다 예수에게 집약된 원시 기독교 사상을 이해하는 데 관심을 둔 문인이다. 다자이 오사무 역시 고뇌했던 작가라는 점에서 전기한 작가들과 같은 계열에 속한다. 하지만 그는 자신 안에 잠재했던 그리스도적 모습과 유다적 모습의 공존을 고뇌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그에게 그리스도교는 내면의 고뇌를 선명하게 드러나게 한 계기가 된 셈이다. ’고소(告訴)‘를 통해 공존하는 양면을 화해시키려 추구한 다자이는 유다 속에 있는 그리스도에 대한 양면가치적 애증을 그 누구보다도 더 절실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얻는다.

 

한편 시이나 린조(1911 - 1973)는 그리스도교에 입교(入敎)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기교(棄敎)한 문인들과, 입교(入敎)하지 않았지만 내용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세례를 받은 문인들을 통합하는‘ 형식과 내용 양면에서 그리스도교에 진지하게 관계한 대표적 문인’이다. 시이나의 이런 면모는 생래적으로 의지할 곳 없이 뿌리 뽑혔던 실존적 폐인이었던 이력을 감안하면 놀라운 일로 비친다. ’벚꽃과 그리스도‘에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여럿 나온다. 슬픔과 불행의 음화(陰畵)로 밖에 경험되지 않는 신, 고뇌의 깊은 내면에서야 시작되는 순수한 기도, 철저한 죽음을 통해서만 매개되는 구원 등...

 

이 장면들은 삶의 비극성과 신 존재를 함께 드러낸다. 벚꽃이 죽음과 일본적 에로티시즘을 상징하는 한편 일본의 범신적 토양을 상징한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물론 마지막 작가인 세이라이 유이치(1958 - )의 ’성수(聖水)‘에 얽힌 사연은 ’벚꽃과 그리스도‘의 핵심 가치가 물에 있음을 알게 한다. 저자는 엔도 슈사쿠에게 서구의 그리스도교와 일본의 정신적 풍토를 매개하는 상징성을 띠는 물은 일본적 범신성의 다른 이름이라는 말을 한다. ’벚꽃과 그리스도‘의 마지막 순서인 ’성수(聖水)‘를 소개하는 장면에는 일본화한 신앙에 대한 설명이 뒤따른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시키는 매개항인 물은 일본적 범신성의 다른 이름이며 성성(聖性)을 띠는 생명의 조건이다.

 

일본의 범신적 토양을 상징하는 벚꽃과 물, 나에게 그것은 벚꽃 곱게 핀 강(江)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운치(韻致)어린 신앙의 작품인 ’벚꽃과 그리스도‘가 내게 다가오는 것은 그런 그림으로써이다. 아직 문학을 사랑하고, 그리스도교와도 관계했던 나에게 ’벚꽃과 그리스도‘는 남다른 관심으로 읽혔다. ’청년이여, 마르크스를 읽자‘, ’스승은 있다‘ 등을 쓴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타츠루는 ’일본변경론(邊境論)‘에서 일본인들은 스스로를 영적(靈的) 변경에 있다고 보기에 종교적 관용을 보이지만 중심으로부터의 공간적 거리에 의해 스스로의 영적 미성숙을 설명하고 그로 인해 미성숙 상태에 안주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말을 했다. 일본변경론과 일본적 범신성의 상통(相通)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