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어둠’은 1926年 이후 시작된 스탈린 독재 시대와 그 시기를 이은 모스크바 재판을 다룬 대표적 체제 비판 소설이다. 작품을 쓴 아서 쾨슬러(Arthur Koestler: 1905 - 1983)는 공산주의자였다가 전향한 사람으로 ‘한낮의 어둠’의 주요 부분에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상세한 공산주의 묘사는 작가의 그런 이색적 이력을 확인케 하는 증거라 할 수 있다. ‘한낮의 어둠’이 스탈린(Joseph Vissarionovich Stalin: 1878 - 1953) 치하의 소비에트 체제를 비판한 작품이지만 작가의 비판의 펜이 겨냥한 것은 공산주의 체제가 아니라 하나의 획일화된 이념을 위해 모든 자유로운 사상을 억압하는 전체주의 체제로 보아야 옳다.

 

일식(solar eclipse)이라는 의미의 Sonnenfinsternis라는 제목을 가진 독일어로 처음 쓰인 ‘한낮의 어둠’이 'Darkness at noon'이라는 제목을 가진 영어 작품으로 번역된 것은 쾨슬러의 연인이었던 조각가 다프네 하디(Daphne Hardy)에 의해서였다. 작가 조지 오웰(Eric Arthur Blair - 필명은 George Orwell: 1903 - 1950)에 의하면 작품의 주인공인 루바쇼프의 모델은 트로츠키, 부하린, 라코프스키 또는 구 볼세비키 체제하의 몇몇 시민화한 인물들이다. 또한 작품에서 ‘넘버 원’이라고만 묘사된 인물은 정황상 스탈린이 분명하다. 스탈린 독재 체제와 모스크바 재판이 반영된 작품이지만 ‘한낮의 어둠’에 등장하는 시공간적 배경과 인물들은 제한적이다.

 

‘한낮의 어둠’은 10대 이후 40년간 공산주의자의 길을 걸은 50대의 주인공인 루바쇼프가 동유럽 여러 나라들의 공산당을 지원하던 시절 만난 인물들을 회상하는 장면과 서유럽과 접촉해 반혁명적 스파이 활동을 했다는 죄명으로 체포, 수감된 후 세 차례에 걸쳐 겪은 심문 과정을 다룬 부분으로 크게 나뉜다. ‘한낮의 어둠’이 작가 아서 쾨슬러의 이력이 반영된 작품임은 앞 부분에서 이미 말한 바 있지만 루바쇼프가 처형장으로 끌려 가며 ‘자신은 대체 무엇을 위해 죽고 있는 것인가' 라는 의문에 어떤 대답도 찾을 수 없었다고 말한 부분을 읽으며 나는 공산주의자이며 빨치산 대장이었던 아서 쾨슬러가 겪은 고문 및 수감 등이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가, 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뒤늦게나마 공산주의 체제의 실체를 보고 그로부터 벗어났지만 지식인 작가의 고난이 너무 안타까울 뿐이다. 깊은 안목을 지닌 많은 전문 독자들이 ‘한낮의 어둠’을 분석하는 자리를 마련해 맹목적 이데올로기의 시대였던 20세기와 러시아 혁명과 공산주의에 대해 치밀하고 폭넓은 지식을 드러내 보였지만, 아니 그랬기에 나는 루바쇼프라는 한 희생자의 실존적 변화 및 고뇌와 기쁨에 초점을 맞출 수 밖에 없었다. 작가이며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였던 아서 쾨슬러가 에릭 홉스봄(Eric John Ernest Hobsbawm: 1917 - )이나 메를로 뽕티(Maurice Merleau-Ponty: 1908 - 1961) 같은 사상가 또는 철학자들이 그랬듯 전문 이론서를 쓸 수도 있었겠지만 소설을 쓴 것은 지식인 작가 개인의 실존적 의미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쾨슬러에 대해 설명하며 그를 공산주의자였다가 전향한 사람이라고만 했지만 그는 1931년 독일 공산당의 당원이 되었고 코민테른(communist international)을 위한 선전, 선동 활동을 하는 과정에 프랑코 체제의 스페인과 NAZI에 의해 고생을 겪을만큼 겪은 사람이다. ‘한낮의 어둠’이 다룬 주제 중 가장 크게 이슈화할 부분은 혁명을 위해 함께 싸운 동지들이 혁명 성공 후 서로 죽이고 죽은 아이러니와, 순수한 수단만이 목적을 정당화한다는 진리이다. 루바쇼프는 옛 동료였던 이바노프로부터 넘버원 암살을 모의했다는 거짓 자백을 할 것을 설득받지만 이바노프가 너무 온건하다는 이유로 제거된 후 젊고 야만적인 글레트킨으로부터 수면 박탈과 전등 불빛에의 노출 등 고문을 당한다.

 

육체적 한계도 한 몫 했겠지만 루바쇼프는 스스로 조국의 반역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그로 인해 루바쇼프는 스탈린 일당 체제에 충성을 바친다는 착각 속에 죽음으로 내몰리게 된다. 다행인 것은 루바쇼프가 “혁명은 너무 빨리 왔는지도 모른다.”는 깨달음과 “이성 하나만으로 만들어진 나침반은 불완전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는 점이다. ‘한낮의 어둠’을 읽은 것은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었다. 또한 관련 자료들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는 점에서 감사하다. ‘한낮의 어둠’이 여러 부류의 사람들에게 고루 읽히기를 바란다. 1940년에 나온 원작이 1981년 최승자 시인에 의해 번역된 후 29년만인 2010년에 새롭게 번역되어 나온 것은 역사적 무게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좋은 책을 읽게 해주신 출판사에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