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 W. J 셸링이 처음 사용한 아폴론적 - 디오니소스적 개념쌍에서 디오니소스적이란 격정적이고 비합리적인 요소 등을 의미하는 유명한 말이다. 고대 리디아, 마케도니아 등지에서 엑스터시를 수반하는 광란의 의식에서 숭배되던 자연신이었던 디오니소스가 세계적 이름을 얻은 것은 그리스 신화 편입 이후이다. 니체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것은 그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융합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마케도니아의 광란의 의식, 셸링, 니체 등을 계보도에 포함시키는 창조성과 영감 등에 관한 간략한 의식(儀式)을 거행할 수 있겠는데 다만 잠시 술과 디오니소스의 연관성을 거론할 수도 있겠다. 벤야민 이야기이다. 그는 술을 가까이 했고 해시시 등의 마약에도 탐닉했던 철학자이다.

이제 미셸 마페졸리의 말을 들을 차례이다. 디오니소스의 창조성과 영감 등의 개념에 해당하는 마페졸리의 개념은 사회적 효율성이다. 마페졸리는 집합적 주체 속에서 점점 시들어가는 개인의 모습을 강조한다. 마페졸리는 광란성 속에서 사교성(socialite)은 각각 그 잠재성을 실현할 수 있도록 해주는 잘 유형화되는 동시에 변화무쌍한 형상들을 통해 작용한다고 말한다. 마페졸리는 당위 존재 - 의무적인 것의 논리 위에서 기능하는 도덕(morale)과 어떤 총체를 구성하는 여러 다른 가치들이 상대화되고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윤리(ethique)의 구별을 제안한다. 마페졸리가 의미를 두는 것은 당연히 윤리이다. 마페졸리는 과거의 모든 위대했던 사회가 외설스러움과 방종 덕택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파레토(Vilfredo Pareto)를 인용한다.(이 파레토는 파레토 최적의 그 파레토이다.)

마페졸리가 대립항으로 제시하는 또 다른 개념쌍은 유용성의 잣대로 모든 것을 측정하려는 태도 vs 비생산적인 삶의 의미이다. 마페졸리는 집단적 흥분이나 관능의 우월성을 어떤 다른 것에 대한 하나의 징후가 아닌 그 자체로 이해할 것을 주문한다. ‘디오니소스의 그림자‘는 열정의 세계, 이성의 세계, 경직된 질서를 뛰어넘는 세계, 역동성 속에 통합될 수 있는 무질서의 세계, 생산이라는 지상명령의 파산과 병행하는 불확실성이 수용되는 세계를 향한 마페졸리의 꿈이 제시된 청사진인 셈이다. 제 1장 비생산적 삶에서 마페졸리는 게임(유희성)이라는 불변의 상수를 전제한다. 마페졸리는 생산적인 것에 대한 환상, 실증성의 충만, 획일적 차원은 그것이 지니고 있는 경직성 속에 궁극적으로 파멸을 품고 있는 두터운 껍질들이라고 정의한다.(50 페이지)

2장 사회적 신성에서 마페졸리는 신화, 종교 등에서의 성스러운 방탕을 이야기한다. 매춘을 의미하는 코린티아조마이(corinthiazomai)란 말이 있지만 그것을 지원하기라도 하듯 마페졸리는 바쿠스적 축제의 형태를 취했던 매춘행위에서 사원(寺院)이 최적의 장소였음을 거론한다.(77 페이지) 마페졸리에 의하면 도취, 무절제, 매음, 방탕 등은 공동체적인 융합과 연결되는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것들이다.(79 페이지) 마페졸리는 종교 의식은 규칙을 어기려는 욕구에 기초하고 있으며 특히 성적 규칙 위반에 대한 욕구라는 뒤르켐의 말을 인용한다.(81 페이지)(이 뒤르켐은 ’자살론‘과 아노미의 그 뒤르켐이다.) 마페졸리는 아빌라의 성 테레사를 성(性)의 관능적 승화의 예로 든다. 그녀는 카톨릭 수녀였다. 마페졸리는 광란을 이 세상의 호흡 작용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고 말한다.(100 페이지)

마페졸리는 사회는 우주의 환경을 떠나서 유지될 수 없는 것처럼 환상 역시 이성이 이해할 수 없는 이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118 페이지) 마페졸리는 사회학은 성적 욕망에 대한 연구라고까지 말한다.(126 페이지) 마페졸리는 사회적 힘을 결정화하는 순간으로서의 축제는 그 내부에 과도함 즉 죽음에 대한 강력한 풍자를 담고 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축제가 필요하다면 죽음과 농간을 부리면서 관리하고 죽음에 순응한다고 말한다.(155 페이지) 마페졸리에 의하면 광란성은 죽음을 통합하면서 풍요함의 광대한 과정에 참여하는 축제의 한 형식이다.(155 페이지) 마페졸리는 선, 악, 미, 진실 등은 언제나 상대적이며 그것들에 대한 평가는 다양한 뉘앙스를 가질 수 있으며 그것들이 드러나 있는 상황에 종속된다고 말한다.(160 페이지)

마페졸리는 폭력을 미학적으로 가치평가를 하자는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사회적 소여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더 특별하게는 광란적 형식 속에서 일어나는 폭력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을까, 라고 말한다.(185 페이지) 밤은 항상 혼돈과 결합하게 되며 많은 신화를 통해 그것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하는 마페졸리는 시바, 디오니소스, 오시리스 등 세 신(神)을 이야기한다.(207 페이지) 마페졸리에 의하면 시바는 밤에 배회하는 자로 불리며 디오니소스는 밤의 질주자로 불리며 오시리스는 죽은 사람들의 세계를 지배하는 존재이다.

4장 광란, 사교성의 인자에서 마페졸리는 중요한 말을 한다. “지배적이었던 가치가 소멸하고 또 소멸했던 가치가 다시 지배적이 되는 자리바꿈의 끝없는 순환은 한 가치의 효력이 정점에 달했을 때 그와 동시에 그 효력이 소멸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로 그러한 가치와 함께하는 표상들과 행위 체계가 한동안 지속되는 경향이 있다 하더라도 그리고 비록 한참 뒤에야 그 가치의 소멸과 그것을 뒤따라 가치에 대해 알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215 페이지) 마페졸리는 디오니소스와 가장 밀접한 연관성을 지닌 포도주를 논하며 디오니소스는 자연과 문화 사이의 경계면이며, 본능적인 것과 사교성의 심화에도 접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 말한다.(223 페이지)

마페졸리는 개인적 구조화에서처럼 사회는 빛과 그림자의 방황과 정착을 통해 면면히 새겨지게 되며 이들 중 어느 하나의 가치가 지배적이 되는 것은 언제나 유감스럽다고 말한다.(242 페이지) 마페졸리는 광란성이 보여주는 것은 운명에 대하여 집합적으로 대처하는 모습이라고 말한다.(246 페이지) 하이데거의 현존재 즉 세계에 던져진 존재라는 원초적 조건에서 기인하는 불안을 경험하게 하는 것, 육체의 혼합과 육체의 혼돈이 망각의 시간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디오니소스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본질적인 교훈이라고 마페졸리는 말한다.(246 페이지) 마페졸리는 길들여지거나 반쯤은 받아들여진 방탕함이 집요하게 일상의 삶의 조직화 속에서 계속 우세하게 남아 있음을 상기시킨다.(274 페이지)

도덕적 가치가 부인되지는 않지만 유효성은 상대화한다(274 페이지)는 마페졸리의 말은 지금껏 전개해온 그의 논의와 공명하며 세상의 거대한 이원성과 상대성을 일깨운다. 디오니소스의 모험은 단지 (다시) 시작일 뿐이라는 마페졸리의 말은 그의 다른 말인 “물론 아직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는 말과 공명한다. 그런데 신화, 제의, 종교 등의 영역 외에서는 별다른 논의를 펼치지 못한 마페졸리의 책은 아쉽다. 광란이 사회성을 이끌어내는 양상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동, 정치, 공동체 등의 영역에서 광란과 디오니소스적 아우라가 어떤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그래서이다.

 “한쪽 끝에서 창조된 것을 다른 한쪽에서 먹어치우는 신적인 힘, 그것은 곧 자체의 차라투스트라가 보여주는 지하세계이다. 자신이 창조한 것(선과 악의 세계)을 파괴하도록 운명지어진 인물, 반그리스도의 세계. 이제 우리가 가야할 곳은 이 세계, 그리고 그것의 비밀들이다.”(키스 안셀 피어슨 지음 ‘싹트는 생명‘ 145 페이지) 마페졸리에게 이 말을 들려주고 싶다. 아니 그 말을 듣고 음미해야 할 사람은 어쩌면 나인지도 모르겠다. ’디오니소스의 그림자‘는 마지막 장의 마지막 문장이 인상적이다. “우리는 운명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기껏해야 벤야민이 ’자신을 사로잡는 광경으로부터 빠져나오려고 하는 듯하다.‘고 말한 클레(Paul Klee)의 천사: '앙겔루스 노부스(새로운 천사)처럼 할 수 밖에 없다.”(282 페이지) 다시 모색하고 새로운 책을 찾아 나서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