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강계숙의 첫 평론집‘미언’이 나왔다. 책 제목으로 쓰인 미언은 하나의 한자로 규정할 수 없는 단어이다. 수수께끼에 가까운 말(謎言), 나를 미혹시키고 매혹시키기도 한 말(迷言), 미래의 어느 때엔가 완성될 말(未言), 그렇기에 작고도 아름다운 말(微言/美言), 그리고 그 모든 말과 함께 숨 쉰 나의 말이란 의미를 가졌기 때문이다.‘도덕경‘이라는 텍스트를 정치서로 규정한 안성재 박사의 ’노자, 정치를 깨우다‘는 미언대의(微言大義)로 쓰인 노자의 도덕경에 따라 미언, 대의(大義), 그리고 해설 부분으로 구성된 책이다.

’도덕경‘은 강계숙의 말처럼 수수께끼는 아니지만 신비한 텍스트, 미래의 어느 때엔가 이해될 말, 작고도 이름다운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다만 관건은 ’도덕경‘은 정치 텍스트라는 점이고 정치 텍스트로는 이례적으로 짧은 축약형의 문장을 가진 텍스트라는 사실이다. 독자들은 ’도덕경‘을 정치적으로 읽는 것으로부터 혼란을 느끼지는 않을까? 물론 나는 안성재 박사의 전작인 ’노자의 재구성‘ 리뷰에서‘도덕경’을 정치 텍스트로 읽은 안성재 교수를 지지하기에 노자의 의도와 다른 독해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다.

다만‘광장을 읽는 일곱 가지 방법’처럼 하나의 작품을 여러 가지로 읽는 방법도 있다는 말을 하고 싶다. 문제는‘도덕경’을 기존의 방법대로 읽는 것 역시 나름의 논리를 지녔다는 사실이다. 한 발 물러서는 것인지 모르지만 텍스트를 읽는 데에는 왕도가 있지 않을 것이다. 전작에서 언급했듯 노자는 곳곳에서 눈 앞의 작은 이익을 경계할 것을 강조했다. 나는 이를 나름으로 정치적으로 읽어 보고 싶다. 최근 나온‘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와‘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는 제목부터 대립적이다.

두 권 모두 미국의 사례를 다룬 책인데 문제는 전자의 요지는 가난한 사람들은 가진 것이 적기 때문에 훨씬 더 신중하게 행동하고 선택한다고 주장을 하고 후자는 보수 세력의 교묘한 조작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착란적 의식을 보였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제는 그들이 가난한 자신들을 중산층이라 생각하는 허위의식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다. 요지는 무엇인가? 가난한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선택한 것은 돈과 관계된 것 즉 자신의 이익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이고 보수의 조작에 넘어간 가난한 사람들은 당장의 이익이나 손실로 판가름나지 않는 정치적 행위를 선택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작은 것은 신중하게 결정하고 계급 투표를 해야 하는 정치적 선택에서는 허위의식에 빠지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저자는‘도덕경’에서 가장 다루기 어려운 곡신(谷神) 부분을 법률이나 제도로 다스리는 법치나 예치보다 더 중요한 자애로움(의 정치)으로 풀이했다. 궁금한 것은 착호유이위실 당기무 유실지용(鑿互?以爲室 當其無 有室之用) 즉 창문을 내어 집을 짓는데 집에 빈 공간을 만들어야 집의 쓰임새가 있다는 말처럼 정치와 직접적으로 관련 없어 보이는 것은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이다.

노자의 공간론은“나는 작업실을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공간 자체를 없는 것으로 생각할 수는 없다. 그런 까닭에 공간은 선천적 직관”이라는 랄프 루드비히의 칸트 해설을 연상하게 한다. 그렇다면‘도덕경’은 철학서인가? 이것이 기존의 관점이다. 물론‘도덕경’을 철학서로 본 기존 관점들이 칸트의 공간론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떻든‘노자, 정치를 깨우다’가 돋보이는 것은 전작에서처럼‘도덕경’의 논지를 뒷받침할 많은 예를‘사기’,‘십팔사략‘ 등의 다른 텍스트들로부터 끌어왔다는 점이다.

‘노자, 정치를 깨우다’는 해석상의 세부적인 낯섦이 있지만 전체를 대동(大同)과 소강(小康)으로 나눈 점이 돋보인다. 아니 그 점이 키 포인트이리라. 제 22장 진심으로 보존하다편에는 내 지론과 일치하는 내용이 있어 눈길(?)을 끈다. 대의를 예로 들자면 도를 따르게 되면 성기고 불완전해 보여서 불합리한 것 같지만 오히려 흠이 없이 나라를 온전히 다스릴 수 있다는 부분이다.(154 페이지) 이는 앞서 내가 두 권의 정치 서적을 예로 들며 거론한 이익 부분과 상통하는 이야기이다. 이 밖에 제 23장 함부로 명령하지 않다,

제 32장 제도로 명분화하다, 제 49장 백성의 의지를 따르다, 제 54장 대동의 이념을 실천하다, 제 72장 누르지 않으면, 따르게 된다, 제 80장 이상적인 사회 등은 제목만으로도 정치적 연관성을 짐작하게 한다. 저자는 나오는 글에서 옛 중국의 고전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것의 장점과 부작용을 함께 거론했다. 저자의 이 말은 저자가 가진 노고와 자신감을 방증(傍證)한다. 문자 및 문장구조를 분석하고 각 문장의 의미를 증명하기 위한 사료 제시에 중점을 둔 책과 요점과 문장 구조의 의미를 제시한 책을 연이어 낸 저자의 뚝심은 칭찬받아야 할 것이다.

‘노자, 정치를 깨우다’는“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는 공자의 말씀(이 부분을 “왕실 제사를 진행하는 궁궐에서 제례 절기에 따라 제반 절차를 실제로 실습하는 과정이, 그 얼마나 기쁜 일인가.”라고 해석한 김경일 교수의 사례가 있지만)처럼 때때로 들춰 보고 익힐 책이다. 때때로 들춰 보아야 한다는 의미는 많은 고전들이 그렇듯‘도덕경’을 해석한‘노자, 정치를 깨우다’는 즉각적인 효용과 무관한 책이기 때문이다.“대동 사회는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지도자가 삼가 부단히 실천하는 모습, 그 자체가 대동이다.”란 책 후면의 붉은 색 글씨가 눈에 띈다. 예사롭지 않은 구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