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道德經)’의 저자인 노자(老子)에게는 미스테리한 면이 있다. 그는 한 철학자에 의해 국가주의적 사상가로 규정되었는가 하면 또 다른 철학자에 의해서는 지식의 이론(道經)과 지식의 실천(德經)을 설파한 사상가로 규정되었다. 그런가 하면‘도덕경’이 한 사람에 의해 저술된 것은 아닌 듯 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면 나에게‘도덕경’은 어떤 위상을 지닌 경전인가? 지난 달‘철학자의 서재 2’를 정치적 관점으로 읽은 나에게 무위자연과 자유방임의 도가사상이 정치 텍스트라는 저자(안성재 교수)의 지적은 반갑게 다가온다.

노자는 이씨 성을 가진 사람인데 그런 그가 이자(李子)라 불리지 않고 노자(老子)라 불린 것은 그가 어머니의 성씨인 이씨를 따랐기 때문이다.‘노자평전’이란 책에서 철학자 쉬캉성은 노자의 도가철학이 정치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을 했다. 문제는 저자의 텍스트가 집필 의도와 다르게 읽히는 경우이리라.‘도덕경’은 고금을 통틀어 주석(註釋)과 번역(飜譯)이 가장 많은 저작이다. 안성재 교수는 지금까지의 한국 및 중국의‘도덕경’번역본들이 그 본의(本義)와 일정한 괴리(乖離)를 보인다는 말을 했다.

나는‘도덕경’을 정치 텍스트로 읽은 안성재교수를 지지하기에 노자의 의도와 다른 독해 여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저자에 의하면 노자는 태평성대로 돌아가자고 주장한(이상향을 꿈꾼) 사람이다, 그런데‘도덕경’을 정치적으로 읽을 때 어려운 것들 중 하나는 현빈지문(玄牝之門) 대목을 어떻게 풀어내느냐이다. 지금까지의‘도덕경’해석의 주류는 이 부분을 형이상학적 또는 신비적으로 읽었다. 저자는 이를 심오한 모성 즉 부드러움의 문으로 해석했다. 앞서 노자를 태평성대를 꿈꾼 사람이라 언급했는데 태평성대란 공존과 상생을 특징으로 하는 시대이다.

노자가 공존과 상생을 강조한 것은 제 7장 무사(無私)편에서 잘 드러난다. 저자에 의하면 노자는 일관되게 덕치(德治)를 주장한 사상가이다. 물론 노자가 말한 정치적 맥락은 태평성대를 이루기 위한 마음 가짐 또는 정신적 태도를 의미한다. 이는 노자가 지도자로서의 수양과 백성들에 임하는 자세를 말하고 성인(聖人)을 나라를 평안하게 다스린 태평성대를 이끈 지도자로 보았다는 저자의 지적을 통해 드러난다.

인상적인 것은 노자가 말하는 도(道)가 세상과의 괴리나 은거(隱居) 등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더불어 사는 적극적인 사고유형이지만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명확하게 구분해야 함을 강조했다는 말이다.(功을 이루었으면 자신은 물러나는 것이 하늘의 도리임을 풀이한 공수신퇴 천지도편 참조: 73 페이지)‘도덕경‘에서 도(道)를 순리로 보면 의미가 분명해진다. 학자에 따라 ’도덕경‘을 전쟁의 책략을 연구하는 병서(兵書)로 보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쉬캉성 지음 ’노자평전‘ 113 페이지)

물론 노자는 주로 정치문제를 언급했고 궁극적으로는 전쟁을 반대했다. 본문에 의하면 궁극적으로 도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잡을 수도 없는 것이다.(109 페이지) 중요한 것은 도가 보이지도 들리지도 잡히지도 않는 것은 그것이 신비하고 형이상학적이어서가 아니라 추상명사 일반이 그런 것과 차원이 같다는 점이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잡히지도 않는 것이 도 하나 뿐이겠는가. 지극히 일상적이지만 마음, 사랑, 평화, 믿음, 효(孝) 등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잡히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그런 것들을 형이상학적으로 또는 신비적으로 해석할 수 있겠는가 묻고 싶다.

’도덕경‘은 도경과 덕경이 합쳐진 것인데 저자에 의하면 노자는 도를 이야기할 때마다 항상 덕을 함께 논했다.(131, 132 페이지) 노자는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향을 일반적인 의미의 이상향의 상위 개념으로 설정했다.(139 페이지) 노자는 소강사회(小康社會)를 반대하고 대동사회(大同社會)로의 복귀를 주장했다. 대동사회란 3황 5제 즉 복희씨, 신농씨, 여와씨의 3황과 황제헌원, 전욱고양, 제곡고신, 제요방훈, 제순중화의 5제가 통치하던 시기로 인재를 선발하여 왕위를 넘겨주는 선양제(禪讓制)를 실시했다.

반면 소강사회는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세습제가 시작된 시기이다.(144 페이지) 저자는 노자의 도를 궁극적으로 지도자의 치세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으로 풀이했다. 물론 노자의 도와 덕에 대한 가치관은 노자만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노자의 도와 덕에 대한 가치관은 유가(儒家)와도 통한다. 그것은 태평성대를 이루는 골간(骨幹)이 덕치이고 또한 덕에 이르지 못하면 도가 머물지 않으니 이러한 덕은 도를 이루는 하위개념을 말한다. 저자는 대동사회로의 복귀를 주장한 노자는 아마도 주나라의 외사였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말한다.(173 페이지) 나는 사실 외사가 무엇을 뜻하는지 잘 모르겠다. 다만 석가 생존시 있었던 6사외도처럼 이교도란 의미로 쓰이는 것이 아닐까 추측할 뿐이다.

저자에 의하면 공자와 노자는 동시대인이었는데 두 사상가 사이에는 공통분모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상이(相異)한 점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공자는 예(禮)를 치국의 중요 수단으로 보았던 데 비해 노자는 예를 형식적인 것으로 간주해 반대했다는 점이다.(291 페이지) 노자와 공자는 동시대인으로 추정된다. 독일의 철학자 카를 야스퍼스가‘역사의 기원과 목표’(1949년)라는 책에서 제시한‘축의 시대(Axial Age)’라는 개념이 있다. 기원전 800년에서 200년에 이르는 이 시기는 세계의 주요 종교와 철학이 탄생한 인류사의 가장 경이로운 시기이다. 이 시기는 공자, 묵자, 노자가 활동한 시기이고, ‘우파니샤드’, 자이나교, 고타마 싯다르타 등이 등장한 시기이다.

노자는 일관되게 작위(作爲)란 일을 그르치는 지름길이라는 점을 가르쳤다. 저자에 의하면 작위의 반대어인 무위(無爲)는 노자가 ’사기(史記)‘, ’십팔사략(十八史略)‘, ’예기(禮記)‘ 등을 참조한 역사적 고증의 산물이다. 물론 노자의 무위는 지극히 정치적인 맥락을 가진 개념이다. 노자는 질박함, 소박함의 도로 통치하는 대동을 지지하고 예악제도(禮樂制度)로 통제하는 소강(小康)을 반대했다. 이는 오래 전 읽은 한흥섭의 ’중국 도가의 음악 사상‘을 통해서 확인한 바이다. 도덕경 35장에는 음악과 음식은 과객을 멈추게 한다는 구절이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음악과 음식은 자극적인 것으로 노자의 도에 정면 위배된다.

노자는 곳곳에서 눈앞의 작은 이익을 경계할 것을 역설했다. 그의 가르침은 지나치게 아끼면 반드시 큰 소비가 있고 과다하게 보관하면 큰 손실이 있다는 구절(44장) 등을 통해서도 드러난다. 또한 그것은 아주 곧음은 마치 굽은 듯하고 아주 정교함은 마치 서툰 듯하고 아주 잘 변론함은 마치 말을 더듬는 듯하다는 역설적인 말로 심화된다. 저자에 의하면 노자에게 최상의 가치는 무위이고 그 다음이 도와 덕이다.(도와 덕이 존숭받는 기반이 마련되어야 비로소 무위가 존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무위란 물론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 천성을 다할 수 있도록 삼가 노력하여 환경을 조성해주고 기초를 탄탄히 다져준 후에는 마치 버린 듯이 하여 스스로 그 천성을 누리도록 하는 것이다.(497 페이지) 노자는 변증법의 대가로 불린다. 그것은 그가 역설적인 표현에 능하기 때문이리라. 그런 노자의 철학은 한대(漢代)의 도교(道敎)를 탄생시킨 사상적 원천이다.(쉬캉성 지음 ’노자평전‘ 245 페이지) 노자를 정치적으로 읽을 수도 있고 형이상학적으로 읽을 수도 있다. 나는 노자를 정치적으로 읽은 저자의 노자 해석에 지지를 보낸다.

다만 다른 쪽으로의 해석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열린 자세를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후일 노자와 공자를 비교한 책을 저술할 것을 밝혔는데 이는 흥미를 끄는 부분이다. 특히 나는 예악을 놓고 대립한 두 사상가의 견해가 전통 음악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음을 밝히고 싶다. ’중국 도가의 음악 사상‘에 의하면 노자에게 도에 부합하는 음악 즉 대음(大音)은 소박하고 자연스럽기에 미(美)이고 선(善)이지만 그렇지 못한 음 즉 오음(五音)은 인위적이고 가공된 것이므로 추(醜)이며 악(惡)이다.(83 페이지) 방대(尨大)한 자료를 섭렵(涉獵)해 600 페이지가 넘는 책으로 작업을 마무리한 저자에게 경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