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 동작은 의지적이거나 의도적이지 않고 반사적이다. 물에 몸을 맡기는 수영(水泳)이 그렇듯 춤도 리듬에 몸을 맡기는 것이어서 자신을 던질 줄 모르는 자의식이 강한 사람에게는 어렵기만 하다. 한 철학자는 춤의 이런 특징에 착안해 춤을“마비된 의식의 놀이“(서동욱 지음‘일상의 모험’353 페이지)라 불렀다. 수영(水泳)을 하지 못하는 나는 춤 추기에도 서툴다. 그런 나에게 부러움을 안겨 주는 이들은 당연히 춤을 잘 추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어느 정도 춤을 잘 춰야 프로 댄서의 길에, 그것도 우사미 히로요시(USA)처럼 댄스 어스(Dance Earth)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일까? 그런데 우사미는 프로 댄서이지만 그보다는 춤으로 하나되는 정신을 지향하는 생각이 바른 사람이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춤을 시작한 사람으로 좋아하는 일로 밥벌이를 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고민했던 우사미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가 아닌 정식 멤버가 되어 가는 시기에 춤을 위해 나선 사람이다.

‘댄스 어스(Dance Earth)’는 댄스 그룹 엑사일(Exile)의 멤버인 바로 그 우사미와 여행 작가 이케다 신이 참여한 댄스 프로젝트를 담은 책이다. 쿠바의 아바나, 볼텍스(vortex)로 유명한 미국 애리조나주 세도나의 벨록(Bell Rock), 세네갈 다카르, 브라질 사우바도르, 태국 사무/ 팡안섬. 프랑스 파리 등 댄스 어스 프로젝트를 위해 두 일본인이 찾아간 곳들은 모두 깊은 역사적 유서(由緖)가 있는 곳들이다.

예전 타이노족 인디언의 말로 중심지를 뜻하는 쿠바노칸에서 유래한 쿠바는 스페인의 오랜 식민지 생활을 겪고 카스트로의 혁명으로 독립한 나라이다. 공공 의료 서비스와 교육 제도 등에서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쿠바는 룸바, 컬럼비아, 구아구안코, 얌부 등 사랑의 춤이 넘쳐난다. 미국 애리조나주 세도나의 파워 스폿인 벨록은 주니족 인디언의 전통에 따라 죽은 자와 재회하기 위해 여러 사람이 둥글게 모여 한 마음으로 추는 고스트 댄스(Ghost Dance)가 유명한 곳이다.

모든 리듬의 뿌리인 아프리카의 대표 국가인 세네갈의 다카르는 말하는 북(talking drum)으로 알려진 전통의 북 사바르로 유명하다. 이 북에서 유래한 사바르 춤은 댄서가 음악을 지휘한다는 점에서 전 세계 어디의 춤과도 다른 희귀한 춤이다. 난이도도 세계 최고이다. 세네갈 다카르는 ”필요한 것은 아무 것도 없어도 소중한 것은 무엇이든 있다.“는 곳이다. 브라질 사우바도르는 바이아주의 건국 수도로 그곳에서 열리는 카니발은 상업적 흥행을 위한 리우 카니발과 달리 객석을 두지 않고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모두가 춤에 참여해 열광의 분위기를 만드는‘춤을 위한 축제’이다.

사우바도르는 특히 아프리카에서 운반선으로 이송된 흑인 노예들이 처음으로 당도한 브라질의 땅이다. 학대받던 흑인 노예들의 영혼의 해방을 위한 축제이지만 분위기는 마냥 밝기만 하다. 이것이 바로 댄스의 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지? 그 압도적 춤의 향연에서 우사미의 춤은 리드미컬하고 경쾌하고 현란했다고 이케다 신은 전하고 있다. 태국 사무이/ 팡안 섬은 세계 3대 레이브 파티의 명소 가운데 한 곳이다. 우사미는 ”서퍼가 아직 보지 못한 물결을 찾아 파도 여행을 떠나듯 나는 아직 듣지 못한 리듬을 찾아 비트 여행을 떠난다.“고 말한다.

레이브 파티에서 울려나오는 리듬은 힙합, 하우스, 트랜스, 테크노, 드럼 앤 베이스, 레게 등 다양하기만 하다. 프랑스 파리는 세계 최고를 가리는 지상 최대의 스트리트 댄스 콘테스트인 저스트 데붓(Just Debout)의 개최지이다. 이 대회는 힙합, 하우스, 록, 팝 등 브레이크 댄스를 제외한 스탠딩 댄스 분야의 최고를 가리는 대회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경쟁. 댄스 배틀 인 더 월드. 어째서 국가와 국가는 시간이 흘러도 싸움을 그만 두지 않는 걸까. 어째서 사람과 사람은 서로를 죽이려 하는 걸까. 어째서 이 세상은 국경으로 나뉘어 있는 걸까. 흘러나오는 음악에 몸을 맡기고 리듬에 맞춰 스텝을 밟다 보면 어느 새 웃음이 번진다. 모든 사람이 마음 깊이 즐거움을 느끼는 그곳을 찾아낸다면 다툼은 모든 사라질 것이다. 춤. USA, 우사미 요시히로가 즐거움을 느끼는 그곳. 그래서 USA는 세계를 돌아다닌다. 춤추고 만나고 그리고 여행을 이어간다.“(198, 199 페이지)

이케다 신의 이 감동적인 글을 읽고 존 레논의 이매진을 연상해도 좋을 것이다. 이메진은 ”상상해봐, 천국이 없다고/ 노력하면 너무 쉬워/ 우리 밑에 지옥도 없다고/ 우리 위에는 하늘 뿐이라고/ 상상해봐, 어떤 국가도 없다고/ 누구도 그 때문에 죽이거나 죽지 않고/ 상상해봐,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게 산다고...“라는 가사를 가지고 있다.‘댄스 어스’를 읽으며 나는 참다운 댄스 정신을 표현하는 단어는 에너지와 소울이라는 생각을 했다.

‘댄스 어스‘의 주요 글을 담당한 이케다 신은 여행 작가로 골수 바이크족이기도 하다. 그는 여행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프로인 자신에게도 댄스 어스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고 말한다. 이케다 신(1962년 출생)과 우사미 요시히로(1977년 출생)는 열다섯의 나이 차이가 나는 사이이다. 어디론가 떠나는 직업이라는 공통점이 그 두 사람을 하나로 분류하게 하지만 그런 점보다 더 근본적인 것은 춤이 있는 지구라는 별에서 춤으로 하나 되는 세계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리듬에 몸을 맡긴 채 스텝을 밟으며, 팔을 흔들고, 손뼉을 치고, 마음을 여는 그 순간부터 지구는 하나가 된다.”는 이케다 신과 우사미 요시히로에게 아름다운 지구인 플래닛 트래블러, 플래닛 댄서라는 이름을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