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론(異論)과 해석(解釋)의 여지가 없이 하나의 완결된 의미로 읽히는 텍스트는 없을 것이다. 굳이 해석의 다의성(多義性)을 실감하게 하는 니체의 텍스트를 예로 들 필요도 없다. 알튀세르가 마르크스의 텍스트를 읽는 데 활용한 징후적 독해를 행해야 할 만큼 니체의 텍스트들은 해석(解釋)의 의미를 근본에서부터 생각하게 한다. 징후적 독해란 텍스트가 말하지 않은 것, 비의도적으로 침묵하고 생략한 것, 의식하지 못한 불연속과 갭 등을 재발견하는 독해를 의미한다.

“니체를 받아들인다면, 철학은 은유를 분석하거나 평가할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철학이 사용하는 모든 개념적 언어는 은유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순수한 것처럼 보이는 관념도 여전히 어떤 탈색된 은유이기 때문.”(‘해체론 시대의 철학’240 페이지)이라는 김상환 교수의 말은 해석의 다기(多岐)함을 여실히 보여준다. 김상환 교수는 니체와 하이데거를 함께 받아들일 경우“철학의 체계에 속하는 개념적 언어의 기원을 파헤치면 은유적 언어가 나오고, 은유의 기원을 파헤치면 개념적 언어의 기원인 형이상학이 나오게 된다.”고 말한다.

여기서의 하이데거는 은유가 아무리 다의적이고 일탈적이어도 형이상학적 사유를 구성하는 감성적 체계와 초감성적 체계의 이분법적 대립을 전제할 때에만 성립 가능하다고 말한 하이데거이다. 이 상황에서 필요한 것은‘하이데거와 데리다의 니체 해석과 계보학’이란 부제가 붙은 앨런 슈리프트의 책‘니체와 해석의 문제’와, 네하마스의‘니체: 문학으로서의 삶’같은 책을 면밀히 읽는 일일 것이다. 니체는 관점주의란 이름으로 해석의 창조적 측면을 강조했는데 다행인 것은 그가 자신의 말을 창조적으로 해석해야 할(할 수 있는) 대상에서 제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창조적이란 말이 자의적이라는 의미로 들리지만‘열린’이란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최근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를 한 부류로 분류한 경우를 연이어 세 차례 목도(目睹)했다. 첫 번째는 신학자/ 철학자인 발터 니그가‘예언자적 사상가’란 책에서 키에르케고르와 함께 두 사상가를 함께 다룬 경우이다.(1991년) 두 번째는 불문학자인 동성식 교수의‘앙드레 지드, 소설 속에 성경을 숨기다‘(2008년)의 경우이다. 저자가 인용한 묄러에 의하면 지드의 작품 세계를 떠받치는 세 기둥은 프로테스탄트 복음서, 니체, 도스토예프스키이다. 세 번째는 장 드 파브레그의 ’성녀 에디트 슈타인‘(2012년)의 경우이다.

“객관적인 하나의 선(善) 즉 인간 존재를 인도하고 돌보아 주시는 존재의 규범을 잊어버리게 되면서 무(無)의 그늘이 세상에 드리워졌다. 서로 상반되지만 한 곳으로 귀결되는 도스토예프스키와 니체의 경험들은 결국 합류한다.”는 장 드 파브레그의 말은 도스토예프스키와 니체에 대한 부정적 시선을 말해준다. 물론 니그는 긍정적으로, 동성식은 부정과 긍정 사이의 한 지점에서 읽힌다. 니그에 의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니체도 기꺼이 시인한 자신과 니체의 교직점인 허무주의적 인간관에 대해 분석하기도 했다.(216 페이지)

니그에 의하면 도스토예프스키는 언제나 허무적인 것을 신적(神的)인 관점에서 바라보았고 허무주의를 악의 계시라고 파악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종교적인 깊이를 보였을 뿐 아니라 무(無)의 사상에 심취한 사람들을 단순히 시대적 유행에 편승한다고 일소(一掃)하지도 않았다.(224, 225 페이지) 도스토예프스키는 기독교 없이는 악마의 퇴치도 불가능하고 하느님에의 믿음 없이는 병자가 다시 치유될 수도 없다고 굳게 믿었지만 가톨릭교와 신교(新敎)를 다 같이 종교적 파벌에서 온 귀결이라 보고 러시아 정교회에 의거했다.

후설의 제자이자 하이데거의 동료였던 학자(현상학, 심리학) 출신으로 유다교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죽임을 당한 에디트 슈타인에 대해 쓴 장 드 파브레그가 신(神)을 그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을 알고 그가 알고 있는 것만이 존재하게 한다(’에디트 슈타인‘ 98 페이지)고 정의한 반면 발터 니그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 속 인물들이 신을 이성에 의한 인식이 불가능한 비합리성을 띤 존재라 보았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예언자적 사상가’301 페이지)

도스토예프스키는 신의 실존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을 벌였지만 그리스도의 형상에 대해서만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예언자적 사상가’313 페이지) 반면 카톨릭으로 개종한 에디트 슈타인이 어머니와 나눈 대화에서 보듯 에디트 슈타인은 유다인들이 인정하지 않은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하는 어려운 과제를 수행했다.“난 그에 대해서 반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그는 아주 착한 분이었을 수도 있어. 그런데 왜 자신을 하느님과 같다고 한 거지?”라는 어머니의 물음에 에디트 슈타인은“예수님께서 율법을 수정하실 권리가 있다고 믿으셨다면, 그것은 그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란 답을 했다.

장 드 파브레그는 도스토예프스키를 부정적으로 보았지만 발터 니그에 의하면 도스토예프스키와 에디트 슈타인은 그리스도라는 기저공간에서 만난다. 반면 니체는 어떤가? 니그는 니체는 현대인의 종교적 정신사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당황스런 테마로서 이해될 수 있고(‘예언자적 사상가’373 페이지) 니체에 대해 궁극적인 판단을 내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381 페이지)고 전제하면서도 니체에 파고들수록 더욱 종교적 해석이 강하게 솟아오른다는 말을 한다.(375 페이지)

니그에 의하면 니체는 자신의 표면의 무종교를 자랑하고 코라의 일당으로 자처하는 것을 좋아했으며 고의적으로 자기의 소질과는 반대 방향으로 기울었으며 고백을 할 수 있을 때나 고백을 한 후에 더욱 자유 정신이 되고자 했다.(379 페이지) 니그가 말하듯 니체는 우리가 정당하게 여길 수 없고 격리되어야 할 많은 불편한 것들을 썼다. 그리고 그의 저술은 소란한 것, 비사실적인 것, 부정적인 것, 위험한 것들로 가득했다.(405 페이지) 니그는 우리는 니체를 간단히 긍정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되며 그의 가치있는 의견들까지도 무분별하게 전적으로 그를 받아들이는 것을 금한다고 말한다.

니그에 의하면 무비판적인 독자에게 니체는 해독을 끼치기에 그를 절대적 전형으로 내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405 페이지) 니체는 허무주의에 대해 증오와 끌림이라는 양가적 태도를 보였다. 물론 빼놓을 수 없는 것은“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말이다. 이에 대해 니그는“신을 발견하려는 열망으로 가득 찬 이 사람은 신이 어떤 자연사(自然死)를 했다고는 보지 않고 절망적인 태도로 우리가 그 신을 죽였다고 고백하고 있”(488 페이지)는 것이며“니체의 마음 속에 더 깊이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그의 모든 반대되는 발언에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 속에 진정한 신을 갈구하는 억제할 수 없는 동경심이 있는 것을 알아낼 수 있을 것”(490 페이지)이라 말한다.

그리고“니체가 주장하는 것은 신을 더 이상 믿지 않음으로써 모든 삶의 기초가 무너지면서 현대인은 혼돈을 초래”한 것이라 말한다.(494 페이지) 니체는 역사적 기독교에 대해 강력한 비판을 가했다. 이는 현실 공산주의와 마르크스주의적 의미의 공산주의의 괴리를 지적한 이매뉴얼 월러스틴을 생각하게 한다. 월러스틴에 의하면 현실 공산주의는 마르크스가 내다 본 것과는 다른 것으로 자본주의 세계체제 내부에 존재했던 이질적인 부분으로 일정한 시간 동안에만 존재했었다.(황광수 지음‘ 소설과 진실’18 페이지에서 재인용)

니그는 니체가 보인 기독교에 대한 공격적 어조에는 진실성이 있었다고 말한다. 궁금한 것은 니체의 관심이 새로운 모임으로 향했는지 무교회적 의미의 만남으로 향했는지 여부이다. 나치의 수용소에서도 홀로 놀랍도록 침착하고 경건했던 에디트 슈타인은“모든 기도는 교회의 기도”로“저마다의 기도는 교회 안에서 작용하며 모든 기도는 교회가 드리는 기도”(‘성녀 에디트 슈타인‘172 페이지)라는 말과“세속에서 지낸 대부분의 세월이 이곳(봉쇄 가르멜 수녀회) 생활보다 더 고독한 것”(164 페이지)이었다는 말로 세속을 부끄럽게 한다.

하지만 슈타인은“피신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가까이 할 수 없는 내적 은신처에서””감옥에 갇힌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생각하면서 세상을 정면으로 응시”(170 페이지)했다. 니체와 예수, 그리고 에디트 슈타인의 관념은 어린 아이에 대한 부분에서 합일점을 이룬다. 굳이 구분하자면 니체와 예수는 어린이의 가치를 긍정했고 에디트 슈타인은 어린이 같은 순수함으로 신 앞에 선 것이다. 김상환 교수에 의하면“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시여, 이런 진리를 지혜 있고 슬기 있는 자에게 숨기시고 어린 아이에게 나타나심을 감사하나이다.”(마태복음 11장 25절)란 예수의 기도는 그가 신의 적자(嫡子)임을 확신하면서 올린 첫 기도이다.(’예술가를 위한 형이상학‘ 111, 112 페이지)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8장 3절),“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마가복음 9장 37절) 등도 예수의 대표적 어린아이觀이다.“나는 그대들에게 어떻게 정신이 낙타가 되고 이 낙타가 사자가 되며 어떻게 이 사자는 마침내 어린이가 되는지, 이 정신의 세 가지 변화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는 니체의 잠언 같은 말은 유명하다. 그런 그에게 어린이는 인간 정신이 실현되는 마지막 도달점이었다.

니체는 아이를“순결이고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이며 유희이고 스스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성스러운 긍정“으로 보았다.( ’예술가를 위한 형이상학‘ 117 페이지) 에디트 슈타인의 이력에서 눈에 띄는 것은 ’어린아이 같은‘이라는 수식어이다. ”즐겁게 노래 부르며 어머니 품으로 뛰어드는 어린아이처럼 가르멜에 들어갔으며 그 후로 후회하는 빛은 전혀 없었“(149 페이지)으며 ”가르멜의 휴식 시간만큼 웃어본 적이 없다고 원장에게 말했다. 그것은 하느님과의 일치에서 오는 영적 기쁨일 뿐 아니라 본성에서 해방된 평화롭고 어린아이 같은 기쁨이었다.“(151 페이지)는 평을 받은 에디트 슈타인은 ”크나큰 신뢰로 하느님 손에 우리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맡기고 어린아이처럼 그분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우리를 맡깁시다.“(206 페이지)란 말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같은 ”어린아이“라도 니체와 예수, 그리고 에디트 슈타인의 뉘앙스는 각기 다르다. 특히 에디트 슈타인의‘어린아이‘는 에디트의 관능을 탐색하지 않게 하는 효과를 발휘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에디트 슈타인이 전기(傳記)를 통해 만난 아빌라의 테레사 수녀는 자신이 본 신의 환상을 ”황금의 긴 창을 들고 있는 아름다운 천사의 창이 그녀의 심장을 지나 내장까지 깊숙이 관통하는데, 이때 그녀는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으로... 온몸이 불붙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고통이 심해서 신음을 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그 고통이 주는 달콤함 또한 너무나 커서, 그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랄 수가 없었다....그것은 한 인간의 영혼과 하나님 사이에서 벌어지는 부드러운 사랑의 애무였다.“(올리비아 가잘레 지음 ’철학적으로 널 사랑해‘ 101 페이지에서 재인용)고 표현했다.(자서전에 그녀라는 3인칭 표현을 쓴 것이 특이하다.)

충격으로 다가오는 것은 ”환희의 몸을 타고 있는 성녀 테레사가 느낀 황홀감은 연인의 품에 안긴 채털리 부인을 뒤흔들어 놓은 황홀감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는 올리비아 가잘레의 말이다. 성(性)적인 성(聖)에 대한 주지(周知)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충격이 오히려 에디트 슈타인의 관능 여부에 대해 의식하지 않게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궁금한 것은“후설의 현상학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면 태어날 때부터 강제로 주입되어 신학교에까지 가게 만든 기독교 신과 그에 따른 신앙을 버리지 못했을 것“( ’의식의 85 가지 얼굴‘ 13, 14 페이지)이라는 한 철학자(조광제)와, 현상학을 공부한 무신론적 실존주의였다가 막스 셸러(현상학자)를 통해 가톨릭 사상과 만난 에디트 슈타인의 차이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란 것이다.

눈에 띄는 것은“결정적인 요인은 하느님의 뜻에 순응하는 것이며, 십자가의 요한 성인과 예수의 테레사 성녀도 이 순응에서 핵심을 보았습니다.”(170 페이지)란 에디트 슈타인의 말이다. 저자는“사랑 없이는 존재하지 못“하며 ”하느님은 바로 그 사랑을 창조라는 영원한 재생을 통해 실행하셨“고 ”오롯이 보편적인 존재를 향한 에디트는 십자가가 베푸신 사랑을 만나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한다.(199 페이지) 사랑 = 아가페로 충만했던 성녀(聖女) 에디트 슈타인.. 이 해석의 여지가 없는 말을 그녀에게 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