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권 작가의‘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는 동화(童話)를 연상하게 하는 삽화(揷畵)와 제목과 달리 야성(野性)과 야생동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집이다. 오리, 수달(水獺), 족제비, 살쾡이, 긴꼬리 들쥐 등을 이야기 거리로 설정한 여섯 편의 단편 모음집인‘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는 읽는 이로 하여금 원시 및 자연에 대해 추억하게 하는 명작이다. 표제작인‘하늘로 날아간 집오리’는 서른 다섯 살 총각인 양갑수씨가 집오리를 기르기 시작한 것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양갑수씨는 지리산 골짜기에 들어와 손수 흙 벽돌을 만들어 집을 짓는다. 책이 좋아 산골로 들어온 양갑수씨는 벽난로 주변에 온통 책이 쌓인 집을 만들었다. 주경야독(晝耕夜讀)을 하는 양갑수씨는 어느 날 집오리 새끼 네 마리를 사온다. 오리를 기를 환경은 좋지 않았다. 담비, 살쾡이, 들개, 너구리, 오소리, 솔개 등 온갖 짐승들이 오리들을 잡아 먹을 기회만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리들이 연못에 들어가 들짐승들을 피한다 해도 언제까지 그럴 수 없음을 안 양갑수씨는 궁리 끝에 연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준다. 이런 저런 사연 끝에 그 짐승들에 세 마리 오리가 목숨을 잃어 마지막으로 하나만 남게 된 검둥 오리는 자신에게 날 수 있는 재주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하지만 그것은 청둥오리가 나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재주였다. 집오리가 처음부터 날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길들인 결과였다. 청둥오리 무리들이 날아가다가 집오리를 보고 웃는 와중에 한 수컷이 암컷인 검둥오리에 마음을 품고 함께 살며 검둥오리에게 나는 법을 가르쳐 준다. 그런데 두 오리 사이에서 새끼들이 생겨난다. 청둥오리는 새끼들을 지키려고 살쾡이와 싸우다가 죽는다. 관심은 홀로 남은 암컷 집오리가 새끼들을 제대로 가르칠까에 집중된다. 그런데 집오리 엄마가 다 자란 새끼들에게 엄하게 나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 장면이 목격된다. 양갑수씨의 친구는 동물학자인 교수를 모셔온다.

교수님은 놀랍지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대자연의 힘은 무섭고도 따뜻하며, 비록 집오리이지만 짝이 청둥오리이므로 야생의 본능을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이 교수님이 내린 결론이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일어난 일이다. 결국 슬프게도 검둥오리 새끼들은 다 날아가고 만다. 어느날 골짜기 아래에서 청둥오리 떼가 비행기 편대 모양으로 내려온다, 집오리의 후손으로 보이는 하얀 오리도 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왠지 가슴이 찡하다. 두 번째 이야기인 '나산강의 물귀신 소동' 역시 짠하게 읽힌다. 나산강은 나비로 유명한 함평의 강이다. 물귀신 소동이란 물귀신에게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는 근거 없는 소동을 말한다. 이런 소동은 옛날 시골에서 흔했는데 실상은 술을 마신 사람이 헤엄을 치다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죽음에 이른 것이다. 물론 물 속에 무언가 있었음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것은 물귀신이 아니라 수달이었다.

사람들은 수달을 민물 물개로 착각한다. 해남 할아버지란 분이 물귀신은 사실 민물 물개라고 말하고 이를 들은 주인공(‘나‘)이 그 사실을 이야기하자 책방 주인과 학교 선생 등이 어이없어 한다. 수달을 찾아다니던 '나'는 엿새째 날에 드디어 수달을 발견한다. 네발 달린 동물이 물 속에서 사는 것도 그렇거니와 수중 발레하듯 유영(遊泳)하는 모습에 반한 '나'는 할아버지의 귀띔을 어기고 사람들에게 수달의 존재를 알린다. '나'는 수달은 사라져 가는 귀한 동물이니 절대 잡지 말라고 호소하면 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말 그대로 순진한 생각일 뿐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수달을 팔아 돈을 챙기려는 속셈을 구체화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나는 주인공이 마을 사람들에게 수달의 존재를 알린 데 대해 죄책감을 가진 것과 마을 사람들의 욕심에 대해 분노한 것에 공감하며 책을 읽었다. 작가는 함평군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해남 할아버지는 지금도 자신을 만나면 그 수달 이야기를 하신다는 말을 들려준다. 제방 공사와 수질 악화 등 많은 것이 변한 것은 함평군의 나산강에 한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나산강의 사례가 특별히 아쉬운 것은 그 수달로 인해서일 것이다. 격세지감이란 말이 합당한 듯하다.

’내 이름은 왜?‘라는 책에서 저자인 이주희 기자는 토끼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주희 기자에 의하면 토끼는 친근한 동물이고 계수나무 아래에서 방아를 찧는다고 믿어진 주인공이다. 그런데 우리 조상들은 토끼를 사냥해 먹었고 약으로도 썼다. 모피로 옷이나 모자를 만들기도 했다. 이주희 기자에 의하면 집토끼와 멧토끼는 생태나 습성이 확연히 다르다. 지금은 생계를 위해 토끼를 기르는 사람도 드물고 애완용으로 기르는 사람이 훨씬 많아졌다고 한다. 그것은 여지 없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소설집 ’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의 키워드는 야생 짐승이냐 가축이냐의 차이, 격세지감, 야성(野性), 향수 등의 단어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는 정보도 귀한 것들이다. 겨울에 잡은 족제비만이 가죽을 쓸 수 있다는 것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박병상 환경운동가의 ’이것은 사라질 생명의 목록이 아니다‘가 말하는 대로 비오리, 도롱뇽, 늑대, 산양, 수달, 잔점박이물범, 매, 삵 등 멸종 위기종 또는 멸종된 동물들은 많다. 안타까운 일이다. 세 번째 이야기인 ’두 발로 걸어가는 족제비’에서 할머니는 족제비 사냥의 명수이자 가죽 벗기기에 도통한 문태라는 사람에게 족제비를 그만 잡으라는 말을 한다. 쥐를 잡는데는 고양이나 개도 족제비에는 미치지 못하니 쥐를 잡기 위해서라도 족제비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족제비는 쥐, 두더지, 뱀, 지네처럼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짐승들만 잡아먹는다고 한다. 할머니는 생명의 순환 사슬을 일깨웠다는 점에서 지혜롭고 수달의 존재를 알리지 말 것을 당부한 해남 할아버지처럼 현명하다. ’두 발로 걸어가는 족제비’는 족제비와 문태의 복수전(復讐戰)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족제비는 문태네 병아리들을 스무 마리 넘게 잡아갔다. 족제비를 잡아 코를 꿰뚫어 길들여 사냥용으로 쓰려한 문태와 덫에 걸렸지만 피를 흘리며 처절하게 도망친 족제비를 보며 시우(주인공)는 마음속으로 족제비를 염려한다.

시우는 족제비가 자신을 경계하지 않자 은근히 기분이 좋아진다. 문태는 족제비를 잡을 속셈으로 쥐약 먹인 쥐를 제각에 풀어놓는다. 그런데 문태네 개가 그것을 먹고 몰살을 당한다. 개를 분명히 묶어 놓았다는데...이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짐승의 가치를 알게 해준다. 문태는 이런 말을 한다.“나도 이제야 깨달았어. 동물도 사람처럼 분노하고 웃는다는 사실을. 그놈도 감정이 있는 거야.”비극적이게도 족제비는 문태가 쏜 엽총울 맞고 피를 흘리며 대나무 숲으로 도망했다가 문태네 강아지들을 물어 죽이고 죽는다. 문태는 자신이 생각이 짧았음을 고백한다. 문태는 암컷 족제비를 물어 죽인 용감이(개)의 새끼를 (문태가 길들이려던) 족제비가 물어 죽이고 쥐약을 물고 와서 용감이의 밥 그릇에 넣은 후 도망치지 않고 용감이에 의해 죽음을 맞은 것이라 추리한다. 총상을 입은 족제비는 어차피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용감이가 단번에 목숨을 끊(어주)기를 기대했다는 것이다. 아니면 용감이 새끼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 이야기는 들짐승과 사람이 등장하는 감동적이고도 가슴 아픈 야생의 드라마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이런 면은 작품의 전편을 관통한다. 특히‘밤의 사냥꾼 살쾡이’(네번 째 이야기)는 흥미진진하게 읽힌다. 하지만 그것은 넓게 보면 자연(自然) 또는 야생과 인간의 조화로운 삶을 일깨운다는 점에서 교훈적이다. 마지막 작품인‘조폭의 개’는 인간의 역할 또는 책임을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앞선 작품들과는 다소 다르다. 물론 이 작품 역시 조화와 공생을 생각하게 하는 미덕을 지녔다는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소설집‘하늘로 날아간 집오리’에 나오는 동물들은 인간과 친숙한 것도 있고 친숙하지 않은 것도 있다. 개가 대표적으로 인간과 친숙한 동물이지만 버려지기도 하고 식육이 되기도 한다. 그럴 경우 많은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물론이다. 나는 오래 전 스무살 무렵 애지중지하던 고양이가 죽은 뒤 다시는 짐승들에 정(情)을 주지 않아왔다. 그 고양이를 야산에 묻어줄 때 마음이 많이 착잡했었다. 그 고양이의 죽음은 동물을 사랑하는 것도 힘이 많이 드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었다.‘조폭의 개’의 결말을 읽으며 그런 감회를 느꼈다. "사람이나 개나 똑같다..다만 생김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238 페이지)이라는 마지막 말이 뭉클하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