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르 江의 푸가'는 클로틸이라는 서른 셋의 증산층 여성 주인공이 음악에 대한 열정을 통해 소리를 찾는 치유 과정을 담은 안 드라플로트 메드비의 장편 소설이다. 유능하고 잘 생긴 남편 벵상과의 사이에서 네 아이를 둔 클로틸은 국립 고등음악학교 학위와 피아노 교사 자격증을 가진 엘리트이다. 거기에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등 세 개의 외국어를 완벽하게 구사하는 등 실력을 갖추었지만 결혼 10년 동안 아이들을 낳아 키우고 어머니를 간병하는 등 반복적인 주부의 일상에만 머물렀었다.  

식물학자이자 사업가 친구 알릭스의 사업을 도우려던 클로틸은 그러나 개학날 학교에서 도망친 여덟살 난 딸 마들렌이 강물에 휩쓸려간 줄 알고 공포에 질려 퀴르 강을 헤매다닌 후유증으로 목소리를 잃는다. 클로틸은 음성 치료를 받으며 소리 자체에 대한 탐구와 훈련을 흥미로워 한다. 그녀에게 내려진 병명은 경련성 발성 장애였다. 말은 하지 못하고 노래는 할 수 있는 기이한 병을 치료받기 위해 음악치료에 임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자신이 아름다운 노래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클로틸은 노래를 부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보톡스 치료도 거부하고 말을 되찾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심리상담도 거부한다. 클로틸은 말을 잃은 상태에 편안함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녀는 자신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과 아버지, 그리고 친구 알릭스 때문에 힘겨운 시간을 보낸다. 처음에 엄마를 이해하던 아이들도 시간이 지나자 인내심을 잃고 힘들어 한다.  

클로틸은 말을 잃고 음악을 얻지만 음악의 힘으로 결국 다시 말을 되찾는다. 개학 첫날 학교에서 도망감으로써 클로틸로 하여금 소리를 잃게 했지만 무심하면서도 예리한 음악적 감수성으로 클로틸이 로열 오페라단의 주연 가수로 거듭 나는 데 큰 힘을 준 마들렌을 비롯한 가족 모두의 사랑은 갈등을 거친 해피 엔딩의 모범 사례라 불릴 만하다. 이 밖에 벵상과 클로틸 사이의 미묘한 심리 전개,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것을 주문하는 메조뇌브 부인(스승이자 치료사)도 인상적이었다.    

피아노와 오페라에 능한 작가의 면모는 작품을 제시부, 전개부, 재현부라는 세 부분으로 구성한 뒤 다양한 음악 용어들로 주요 장면들을 장식하는 모습으로 드러났고 노트(음표), 피아노(여리게), 스타카토, 크레센도 등의 음악 용어들과 바흐, 베토벤, 드보르작, 모차르트 등의 작곡가들, 교향곡, 푸가, 인벤션, 오페라, 재즈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은 읽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이것이 ‘퀴르 강의 푸가'가 지닌 매력 중 하나이다. ‘퀴르 강의 푸가'가 남다른 격(格)을 지닌 또 하나의 원인은 케모마일이나 라벤더 등의 증류액으로 비누나 샴푸, 아로마 연고 등이 만들어내는 향취 때문이었다.   

주요 장면을 설명하는 장치로 음악이 적절히 선택되었다는 점도 돋보였다. 로열 오페라단(團)의 주연 가수가 된 클로틸이 공연을 마친 후 객석에 있는 큰딸에게 무언의 답례를 보내는 휘날레 장면이 감동적인 푸가의 종결부(코다)를 연상하게 하는 가운데 중요한 장면들을 암시하는 매개체로 쓰인 음악들은 ‘퀴르 강의 푸가'를 고급 음악 소설로 읽히게 했다. 그것은 마들렌의 도주 장면에서 푸가가 언급되고 클로틸이 창의적인 일을 계획하는 장면에서 인벤션(대위법에 의한 단일 주제의 곡이지만 창작, 창의, 창조라는 일상적인 의미도 있다.)이 등장하는가 하면 밥티스트나 인디언 서머 이야기를 인터메쪼(간주곡)로 처리한 기법 등으로 인한 것이다.    

‘퀴르 江의 푸가'는 고급 음악 지식과 소리의 신비한 속성, 고통스런 치유과정을 통해 드러난 주인공의 의지와 열정, 그리고 자아 찾기 과정 등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감동적인 소설이다. 전개부의 마지막 부분에는 “왜 푸가였을까?(왜 푸가를 들었을까?)란 질문과 ”푸가는 무언가를 연결해주는 곡 형식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나온다. 이 답은 “왜 푸가를 들었는가?“란 질문 뿐 아니라 ”왜 푸가를 제목으로 정했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바흐의 이름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푸가는 각각의 성부가 서로를 차례로 모방하며 연이어 연주되는 곡 형식,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같은 주제가 계속해서 반복되며 주제, 대(對) 주제, 응답 등 다양한 성부가 서로에게 대답하는 형식으로 교차 연주되는 음악이다.(344 페이지) 반려견 보(beau)의 죽음 이후 다시 퀴르 강을 건넌 마들렌의 행보는 푸가 또는 재현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생생한 사례였음을 말하고 싶다. 작가에게, 그리고 이 책을 읽게 해준 분께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