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분자(Molecules of Emotion)’을 쓴 캔더스 퍼트(Candace Beebe Pert: 1946 - )는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과학자이다. 혁명적인 그는 과학자들이 쓰기를 꺼리는 영혼이라는 단어도 거리낌 없이 쓰는 분이다. 그는 감정이 하나의 관념에 불과한 것으로 인식되던 1970년대 초에 아편제 수용체(opiate receptor)를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저자의 설명에 의하면 세포는 생명을 구동(驅動)하는 엔진에, 수용체는 엔진 조작판의 단추에, 리간드(ligand)의 95퍼센트를 차지하는 펩타이드는 단추를 누르는 손가락에 비유된다.(펩타이드라는 말이 얼핏 다가오지 않지만 옥시토신, 인슐린, 인터페론, 엔도르핀 등이 모두 펩타이드임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수용체와 리간드는 세포의 일생을 결정한다. 수용체는 감각기관, 수신장치 등의 개념으로 설명 가능하고 리간드는 세포 표면에 있는 특정 수용체에 선택적으로 결합하는 모든 천연 또는 인공 물질로 아세틸콜린,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 히스타민, 글라이신, 감마아미노낙산, 세로토닌 등의 신경전달물질과 스테로이드, 펩타이드라는 세 가지 화학 유형으로 나뉜다.

 

저자는 대학원 입학을 앞둔 어느 날 낙마로 인해 찾아온 요추 압박 통증을 해결하기 위해 맞은 모르핀 유도체가 선사한 황홀경과 충족감을 계기로 몸에서 일어나는 어떤 것이 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개념에 입문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아편제 수용체는 실험실의 쥐나 고등한 인간이나 마약 중독자나 할 것 없이 지니고 있는 시스템으로 황홀경과 들뜬 의식을 생성하는 메커니즘이다.

 

저자는 아편제 수용체가 뇌에 존재하는 이유는 우리 몸에서 천연 아편이 존재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모르핀이나 헤로인 같은 어떤 약물은 그 수용체에 꼭 들어 맞아서 거대한 행동 변화를 일으키고 날록손(Naloxone) 같이 화학 구조가 거의 똑같은 그 약물의 길항제(antagonist: 수용제 차단제)는 수용체에 잘 맞으면서도 아무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더 이상의 활동을 차단하느냐는 질문을 던진다. 마취성 진통 길항물질인 날록손은 헤로인 과용에 매우 효과적인 해독제로 기능하고 있다.

 

저자는 아편제 수용체를 발견하는 데 크고 결정적인 역할을 했음에도 여자라는 이유로 래커스상 수상에서 제외된 것으로 인해 안타까움을 샀던 분이다. 이는 마치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하는 데 결정적 몫을 한 DNA의 3차원 형태가 나타난 X선 사진을 도난당하고 노벨상 수상에서 배제된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사례를 연상하게 한다.(어이없는 것은 프랜시스 크릭과 함께 공동으로 DNA 이중나선 구조를 제임스 왓슨은 자서전에서 도둑질을 뽐내면서 발견 내용을 먼저 발표하지 않은 프랭클린을 비웃기까지 했다는 사실이다.) 저자 역시 로잘린드 프랭클린의 자서전이 자신의 사고와 감정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말을 한다.

 

끝까지 홀로 남아 아편제 수용체를 발견한 캔더스 펀트는 제외되고 중도 포기한 세 명의 남자 과학자가 수상자가 된 것은 대단히 불공정한 일이다. 퍼트는 세 명의 수상자들을 노벨상 후보로 지명하는 양식의 작성을 도와달라는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한 번에 단 세명의 살아있는 과학자만이 상을 수상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노벨상의 규정이다. 래커스상도 노벨상의 규정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듯 보인다.)

 

저자는 생화학물질들이 감정, 사고, 감각, 욕구는 물론 정신이나 영혼으로 경험하는 감정의 생리학적 기질(基質)의 분자적 토대라는 주장을 한다. 저자는 감정이라는 말을 희로애락과 쾌감 및 통증 등의 기본 감각, 배고픔이나 목마름 등의 추동적 상태(drive state) 등을 총괄하는 개념으로 썼다. 저자가 선구적인 것은 그의 연구가 정신신경면역학의 산파 역할을 했다는 사실로 드러난다.

 

그간 과학자들은 면역계는 방어 역할만을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캔더스 퍼트의 연구를 계기로 면역계와 뇌신경계가 하나의 통합된 정보 네트워크를 이룬다는 연구결과들이 꾸준히 발표되고 마침내 뇌신경계와 면역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보는 정신신경면역학이 태어났다.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펩타이드를 받아들이는 수용체는 뇌세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면역계와 온 몸의 장기에도 있다는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신경계, 내분비계, 면역계가 정신면역 내분비 네트워크처럼 보이는 것 안에서 기능적으로 통합되어 있는 것이다.

 

이 부분은 정신적인 자기인식의 바탕이 되는 뇌와 신체적인 나를 인식하는 면역기능은 오랫동안 별개의 체계로서 알려져 왔지만 연구가 거듭됨에 따라 서로 관계를 맺어 영향을 주고 있음이 알려졌다는 우희종 교수의 발언과 연결지어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생명과학과 선‘ 218 페이지) 퍼트에 의하면 면역계와 신경계는 의사소통을 한다.

 

퍼트는 신경전달물질이란 신경펩타이드와 전신의 수용체가 정보를 전달하는 훨씬 더 멀리까지 펼쳐진 그물망의 일부분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는 도파민, 히스타민, 감마아미노낙산,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은 뇌신경계의 소통에 아주 적은 부분만을 차지함을 의미한다. 감정과 다른 정보를 담은 펩타이드가 리간드의 95%를 차지하는데 놀라운 것은 이런 펩타이드의 대부분이 소화계와 면역계에서도 만들어진다는 사실이다.(“실제로 오감이 신경계로 정보를 들여보내는 거의 모든 위치에서 고농도의 신경펩타이드 수용체가 발견되었다”: 193 페이지) 뇌와 몸에서 분비되는 펩타이드의 총합이 우리의 감정을 이룸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펩타이드들이 우리 몸의 기관과 체계들을 단일한 거미줄로 엮어서 내외적 환경 변화에 정교하게 반응하게 해주는 것이다. 저자의 논의가 래디칼한 것은 “외부 세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이 펩타이드 수용체가 풍부한 정거장들을 따라가며 여과되고 정거장을 지날 때마다 감정의 색조가 달라진다면 무엇이 실재이고 무엇이 실재가 아닌지 어떻게 객관적으로 정의할 수 있겠는가?”라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다.(저자는 세상에 객관적인 실재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가 한 가지 감정에 사로잡혀 도움이 되지 않는 버전의 현실에 고착되어 있을 때에도 변화와 성장을 위한 생화학적 잠재력은 항상 존재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아버지의 소세포암(폐암의 한 종류)를 계기로 암세포가 분비하는 펩타이드를 규명, 치료하기 위해 분투했다. 암의 무한 분열 또는 광폭한 성장 메커니즘에 대한 길항제를 찾으려 분투한 것이다. 저자는 세포 대부분의 성장인자를 정제하고 화학적으로 규명해 보면 결국 (관건은) 펩타이드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성장 인자는 암 연구에서 집중 관심의 대상이다. 저자는 모든 암 세포에 신경 펩타이드가 관여한다는 결론을 내린다.(물론 펩타이드만이 암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물질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퍼트가 아버지의 소세포암에 대한 마이클(동료. 후에 결혼상대가 된 사람)의 가설을 입증하기 위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다는 점이다. 퍼트 부친을 사망에 이르게 한 소세포암은 정상세포가 암세포화한 것이 아니라 흡연으로 손상된 세포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면역계가 과잉 반응을 일으킨 결과였다.

 

“神은 전두피질에 있다.”는 저자의 결론은 획기적이다. 전두피질은 미래를 결정하고 계획하는 능력,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 삶에 대한 통제력을 주는 뇌의 부분이다. 사실 퍼트가 수행한 과제들은 권력이나 자존심, 영역 같은 것들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불편한 것이다. 저자는 마음은 물질이 아니지만 몸과 뇌라는 물리적 토대와, 정보의 흐름과 관계있는 비물질적 토대도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전체적 체계란 마음, 감정, 영혼 같이 표면상 비물질적인 모든 것으로 이루어진 정신과 분자, 세포, 기관들의 물질세계인 신체를 결합한 정신신체 정보라 말한다.

 

그간의 서구적 사고는 마음이란 전적으로 머릿 속에 있는 뇌의 기능에 불과했다. 몸은 단지 머리를 달고 다니라고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저자에 의하면 마음이 몸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마음은 하나이다. 마음은 뇌에 있을 뿐 아니라 몸 안에도 있다는 것이다.(256 페이지) 육감(肉感)을 장(腸)의 감각이라는 뜻의 gut feeling이라 부르는 것은 저자의 논의와 연관성이 있다. 장에는 높은 밀도의 수용체들이 존재한다. 자율신경계에 의식을 개입시킬 수 있는 요가수행자들도 저자의 논의를 입증해 주는 사례로 꼽힌다.

 

‘감정의 분자’에는 올더스 헉슬리가 페요테 선인장에서 추출한 메스칼린(mescaline) 흡입으로 의식변형을 경험한 뒤 쓴 ‘인식의 문(The Doors of Perception)’이란 책과 영성, 아유르베다, 심신의학의 전문가인 디팩 초프라(1946 - : 하버드대 의학박사) 등의 인물과 저자가 경험한 명상, 대체의학, 영성 등의 이야기, 양자물리학에 대한 관심을 알게 하는 글들이 함께 나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나에게는 무한 분열 메커니즘을 지닌 암의 길항제를 찾으려 분투한 퍼트가 인상적으로 느껴졌다.

 

의식하라, 정신신체 네트워크에 접근하라, 꿈 속으로 들어가라, 몸과 교신하라, 스트레스를 줄여라, 운동하라, 지혜롭게 먹어라, 약물 남용을 피하라 등은 저자가 제시한 정신신체 네트워크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들이다. 우리의 분자 흐름을 뇌가 지휘하는 것이 아니라 뇌는 그저 네트워크에서 또 하나의 접속점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정보는 물질세계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 마음, 영혼으로 경험할 수 있는 고유 영역(정보영역)에 속해야만 한다는 것이다.(425 페이지) 이는 타고난 지능, 지능의 장, 몸의 지혜 또는 神등으로 불린다.

 

환원주의를 가장 작은 부분들을 조사한 뒤 그것들을 외삽(外揷 - extrapolation)하여 전체에 관한 보편적인 가정을 이끌어냄으로써 삶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풀이한 저자의 설명(21 페이지)은 내가 접한 환원주의에 대한 설명들 중 가장 효과적이고 간결하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과학의 심장은 여성적인 것이며 과학의 노력은 영적인 것이라는 저자의 말이 나에게 시사(示唆)하는 바가 가장 크다. 깊이 음미할 대목이다. 감정에 대한 저자의 강조를 들으니 미리암 그린스팬의 ‘감정공부’를 재독하고 싶어진다. 저자에게 감사한다. ‘감정의 문자’가 나온 것이 1997년(우리 나라에 번역된 것은 2009년)이니 이제 저자의 새 책이 나올 때가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