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더 구덴커프(Heather Gudenkauf)는 가족의 의미를 되짚어 보게 하는 두 편의 작품을 연이어 쓴 소설가이다. 그의 최신작인 ’히든‘은 열여섯의 나이에 영아 살해 및 영아 유기 혐의로 5년을 복역한 뒤 가석방된 앨리슨과 그의 여동생 브린, 그리고 그 두 자매와 연관된 차메인이라는 여인, 그리고 클레어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앨리슨은 공부, 운동, 대인관계 등 모든 면에서 완벽했던 반면 브린은 모든 면에서 언니인 앨리슨과 대조적이었다. 하지만 그 둘은 부모의 무관심의 희생자라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앨리슨과 브린은 부모와 대화가 단절된 무관심 속에서 소녀 시절을 보내야 했던 것이다. ’히든‘의 특징 중 하나는 앨리슨, 브린, 차메인, 클레어 등 여러 명이 번갈아 이야기의 중심으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모든 면에서 뛰어난 우등생이었으며 법학을 전공해 변호사가 되는 것을 꿈꾸었던 앨리슨은 자신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크리스토퍼를 만나 결국 그의 아이를 낳고 만다. 브린은 겁에 질려 피투성이가 된 채 부모 몰래 아이를 낳은 앨리슨이 이것 좀 치우라는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앨리슨이 낳은 여자 아이를 강물에 던져 버린다. 반면 남자 아이는 앨리슨에 의해 크리스토퍼의 여동생인 차메인에게 넘겨진다.

 

브린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앨리슨은 모든 죄를 뒤집어 쓰고 수감되기에 이른다. 브린은 그 5년 동안 한번도 앨리슨을 찾지 않는다. 한편 폐암에 걸려 죽어가는 양아버지 거스를 돌보아야 했던 차메인은 어린 아이까지 맡을 수 없어 소방서 앞에 몰래 아이를 버리고 달아난다. 아이는 북앤즈라는 서점을 운영하는 클레어에게 입양된다.

 

한편 전과자를 고용하면 세금을 감면받는 시스템 덕에 북앤즈에서 일하게 된 앨리슨은 입양된 조슈아가 자신이 낳은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심장마비로 쓰러진 아버지로 인해 브린을 만나게 된 앨리슨은 브린을 자기가 일하는 서점에 데리고 가 조슈아를 보여주기에 이른다. 한편 차메인의 엄마 리안은 차메인의 집에 들어가 차메인이 아이를 안고 있는 사진을 들고 나와 북앤즈에 가서 차메인에게 아이에 대해 털어놓으라고 난리를 친다. 이 소란의 와중에 모든 것이 밝혀진다.

 

이 극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중 브린은 조슈아를 욕조에 빠트린다. 정신과 진료를 받은 경력이 있는 브린이 실성 상태에서 조슈아를 그의 누나(자신이 강에 던져 죽인 여자 아이)에게 보내기 위해 물 속에 내려 놓은 것이다. 브린은 의사에게 아기(자신이 강에 던져 죽인 여자 아이)가 이미 죽었다고 생각해서 강에 버렸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었던 아기를 자신이 죽였다는 죄책감을 끊이 없이 토로했었다고 한다.

 

차메인은 심폐 소생술로 조슈아를 살린다. 앨리슨은 무죄로 판명되고 전과 기록도 삭제되기에 이른다. 앨리슨은 브린을 다시 린든폴스로 불러들인 것도 자신이었고 물에 빠트린 아기의 남동생을 브린에게 대면하게 한 것도 자신이었다고 고백한다. 브린은 물에 빠져 죽는다. 소설이 절정을 치달을 무렵 나는 비극적 상황에 가슴을 쳤다. “다시는 결코 조슈아 켈비, 내 아들을 볼 수 없을 것도 안다. 하지만 그 애가 건강하게 자라서 행복하게, 사랑도 듬뿍 받으며 자라기를 바란다.”는 앨리슨의 말에 마음이 많이 아팠다.

 

헤더 구덴커프의 전작인 ’침묵의 무게‘는 아동 성폭행과 가정에서의 자녀 학대를 다룬 미스터리 가족 소설로 분류된 바 있다.(나는 헤더 구덴커프의 작업이 ’트라우마’와 ‘근친 성폭력, 감춰진 진실(Father-Daughter Incest)’등을 써서 세상의 불편한 진실을 알리고자 노력한 정신의학과 교수 쥬디스 허먼의 그것에 견줄만하다고 생각한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50개 주 모두에서 세이프헤븐 영아 보호법을 실시한다고 한다. 주마다 세부적 내용은 다를지라도 기본적인 방침은 영아 유기죄로 체포될 걱정 없이 병원이나 기타 건강 보호시설에 신생아를 맡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와 관련한 논란이 일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달 한 일간지에 따르면 우리 나라도 세이프헤븐 영아 보호법과 유사한 논쟁이 일고 있다.

 

서울의 모 교회 목사가 버려지는 갓난아기들을 거두기 위해 국내에선 처음으로 설치한 '베이비박스(baby box)'를 놓고 논란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무 곳에나 버려져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아기들을 보호한다"는 목사의 주장과 "신생아 유기를 부추긴다"는 보건복지부의 주장이 맞서고 있는 것이다. 나는 베이비 박스가 설치되었다고 해서 미혼모 사태나 영아 유기 등의 범죄가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라 본다. 근본적으로는 생명에 대한 경외감과 바른 처신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안될 경우 방편적으로 그런 조치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 히든'은 오랜만에 소설 읽는 맛을 느끼게 해준 작품이다. 비록 가슴 아픈 내용을 담은 작품이지만 여운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