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유기체의 생물학적 기능이 영구히 멈춘 상태를 의미한다. 무호흡, 심정지 등.. 죽음 논의는 물리주의적 견해와 이원론으로 나뉜다. 이원론이란 사후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견해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원론의 대표적 존재를 기독교로 알고 있다. 하지만 니체의‘신 죽음론‘을 복음의 새로운 출발점으로 삼는 급진신학자인 토마스 올타이저(Thomas Altiser: 1927 ~ )나 올타이저의 신학을 철학자 자크 데리다의 해체와 연결지은 마크 테일러(Mark C Taylor: 1945 ~ ) 등이 있음을 감안하면 사정은 단순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볼셰비키는 영지주의(靈智主義)의 일종이었다는 존 그레이의 견해를 수용하면 사정은 복잡하기만 하다.(영지주의는 초기 기독교의 주요 이단 세력이었다.)

 

올타이저는 기독교의 전통적 성육신론을 신과 인간의 합일이 아닌 신의 인간에로의 전이(轉移) 또는 신의 자기 방기(放棄)로서의 케노시스(kenosis)로 이해한다. 신의 케노시스는 세계와 관계 없는 즉자적 신의 죽음을 의미한다. 그런가 하면 신(神) 및 자아, 역사에 대한 해체를 감행한 테일러의 신학은 더욱 급진적이다. 그에 의하면 자아의 자기동일성은 실체적 통일성이 아니라 파편적인 기억을 로고스와 플롯을 통하여 정리하고 조직함으로써 자아와 역사에 통일성과 정체성을 부여한 것이다. 이때 신(神) 죽음은 자아와 역사의 정체성과 통일성이 해체되었음을 의미한다.(이경재 지음 ’현대문예비평과 신학‘ 참고)

 

죽음에 대한 논의에서 중요하게 거론할 학자는 피에르 - 프랑수아 모르이다. 그에 의하면“세계를 엄격한 필연성의 관성에 복종시켰던 인간은 적어도 그 자신에 관한 한 필연성의 적용을 막연하게 차단하기를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세계의 일부이고 세계와 더불어 연결된 부분을 간직한다.”(다른 세상 刊 ’스피노자‘ 60 페이지) 스피노자는 '에티카’3부에서 인간은 자신의 행위에 관해 절대적 권능을 가지며, 인간은 자기에 의해서만 규정된다고 믿고 있다는 말을 한 바 있다. 피에르 - 프랑수아 모르는 인간은 세계의 일부이고 세계와 더불어 연결된 부분을 간직하고 있기에 영혼과 신체 관계의 어려운 과제가 있다는 말을 한다. 문제는 무엇일까? 필연성에 대한 인식과 순응일까?

 

저자인 셸리 케이건은“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들로부터 감정적 거리감을 유지할 수 있다.”는 스피노자의 말을 인용한다.(377 페이지) 자살로 생을 마감한 철학자 들뢰즈는 스토아 철학자들과 선승(禪僧)들, 라이프니츠,‘달몰이’의 작가인 조에 부스케 등을 합리적 자연의 총체적 법칙의 차원에서 운명을 수용한 사람들로 소개했다. 그들은 결국 필연성을 인식하고 체화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나는 스피노자도 재론의 여지없이 그 대열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운명을 수용하는 것과 관련해 논의할 수 있는 것은 자살이다. 자살이 운명을 거부하는 것인지 앞당겨 수용하는 것인지는 논란 거리이다. 철학자 이정우 교수에 의하면 자살은 우주의 섭리를 전적으로 거역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거부하는 것이 우주의 섭리를 거부하는 것이다.(‘삶 죽음 운명’119 페이지)

 

저자는 가치 없는 삶을 살아가야 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이라면 자살은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즉 자신의 상황을 명료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자살이 합리적인 선택이 될 수 있는 사례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476 페이지) 물론 죽음을 거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이들은 홍정수 교수가“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새로운 인류가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기독교는 메시지를 잃을 것인가?“라는 말을 통해 알려지게 한 새로운 인류와는 정반대의 위상을 차지한다.(‘베짜는 하느님’참고) 하지만 존 그레이(‘불멸화 위원회’참조)나 조너던 와이너(‘과학, 죽음을 죽이다’참조)를 통해 알 수 있듯 인류 역사에는 불멸이나 영생을 꿈꾸었던 사람들이 수없이 많았다.(아니 그 꿈은 현재진행형일 것이다.)

 

저자는“나는 결코 죽지 않는다.”란 주장과“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는 주장을 죽음에 관한 두 가지 놀라운 주장이라 말한다. 저자가 말했듯 인간은 모두 홀로 죽는다는 주장은 외로움을 인식한 까닭에 나온 말인지도 모른다.‘죽음이란 무엇인가’는 저자인 셸리 케이건이 예일대학교에서 행한 강연을 글로 옮긴 것이다. 수많은 논의와 관점들, 학자들이 인용되었지만 그런 만큼 언거번거하다는 느낌도 든다. 소개된 여러 학자들 중 플라톤이 반가운 것은 그의 영혼불멸론이 차지하는 위상 때문이다. 이 부분은 기독교의 부활 사상은 영혼은 선하고 영원하며, 육체는 악하고 유한하다고 보는 고대 그리스(플라톤)의 영혼 불멸 사상과, 후기 유태교의 육체의 부활이라는 양립할 수 없는 두 사상이 결합된 결과라고 주장한 전 감리교신학대학 홍정수 교수의 말을 떠올리게 한다.

 

양립 불가의 이슈를 결합한 것은 불교도 마찬가지이다. 무아(無我)와 윤회(輪廻)가 그것이다. 그러나 자아의 자기동일성은 실체적 통일성이 아니라 파편적인 기억을 로고스와 플롯을 통하여 정리하고 조직함으로써 자아와 역사에 통일성과 정체성을 부여한 것이라는 마크 테일러의 견해를 수용하면 무아(無我)가 수용되어야 할 것이고 자연스럽게 윤회는 모순적인 것이 된다.(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조직된 자기동일성의 폐기를 의미한다.) 존 그레이와 조너던 와이너의 주장은 영생 추구는 어리석은 탐욕의 결과라고 요약할 수 있다. 저자는 영생은 형벌이라고 말한다. 제 11장 삶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장(章)이다.

 

서동욱 교수는‘들뢰즈의 철학’에서 "칸트의 신(神)이 개별자들에게 귀속할 수 있는 모든 술어들(속성들)의 총체적 저장 창고이듯 스피노자의 신은 무한한 속성들 전체의 다수성(mulplicite)을 의미한다."는 말을 했다. 이 부분에서 하나의 의문이 든다. 기독교의 2분법적 내세관을 지양(止揚)한 삶을 살다가 소멸(消滅)을 꿈꾸면 안되는 것일까? 나는 이 유형의 삶은 쾌락주의적, 비도덕적 삶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한다. 한번 뿐인 삶은 당연히 성실하고 바람직하게 영위되어야 할 것이다.

 

이런 삶이 바람직스럽다는 사실은 필 주커먼의‘신 없는 사회’가 증거한 그대로이다. 스칸디나비아의 세속주의가 갖는 바람직한 현상을 다룬 이 책에 의하면 그들은 교회를 공동체 결속의 매개로 삼으며 내세를 믿지 않는 정서가 널리 펴져 있음에도 절망, 소외감, 우울감 등이 뚜렷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도그마가 아니라 인간이고 죽음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다.“두려움과 환상에서 벗어나 죽음과 직접 대면하기를 바란다.”는 저자의 결론은 인상적이다. 석가모니 붓다는 들숨과 날숨 사이에 삶과 죽음이 있다고 가르쳤다. 나는 삶과 죽음의 사이가 그리 먼 것이 아님을 가르치는 이 말을 지표로 삶과 죽음을 긍정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