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를 지배하는 메커니즘‘에는 인체의 정교한 메커니즘을 느끼게 하는 다양한 사례들이 잘 나열되어 있다. 척추 동물인 사람의 기본 디자인이 완성된 것은 진화의 빅뱅이라 불리는 캄브리아기(5억 4200만 ~ 4억 8300만 년 전)기인데 인간의 먼 조상은 콧 구멍이 네개였다고 한다. 그런데 네개의 콧 구멍 가운데 둘은 눈으로 이동했다.(눈물을 계속 흘리면 콧물이 쉽게 나오는 것은 코가 비루관이라는 관으로 연결되어 있어 넘치는 눈물이 비강으로 흘러들기 때문이다. 이 비루관은 우리 조상이 물고기였을 무렵 코의 관이었던 것이 바뀐 것이다. )

한편 3억 7000만 년 전에 물에서 땅으로 올라온 우리 조상은 어류와 달리 칼슘 농도를 조절하는 부갑상선이 있다. 모습을 바꾼 아가미가 우리 몸 속에서 계속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인체는 다양한 기원을 가진 여러 기관이 모여 구성되었다. 인체의 여러 기관들에는 오랜 진화의 역사가 배어 있는 것이다.

에러 축적설과 프로그램 가설은 노화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것들이다. 염색체의 말단인 텔로미어는 세포가 증식하기 위해 DNA를 복제할 때 완전하게 복제되지 않아 길이가 짧아지는데 특기할 것은 텔로미어의 길이를 늘이는 효소인 텔로머라아제를 잘 활용하면 노화를 늦출 수 있다는 이시카와 후유키의 말이다. 물론 이 경우에도 에러 축적에 의한 노화는 막을 수 없다고 한다. 텔로미어는 암 세포나 배아 줄기세포에서 강하게 발현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와, 텔로미어가 짧아지지 않으면 암의 원인이 된다는 이야기는 어느 정도 연관 관계가 있는지 궁금하다.

재생 세포계의 죽음인 아포토시스(apoptosis)와 달리 신경 세포나 심근 세포처럼 몇 십년이나 사는 비재생계 세포도 아포비오시스(apobiosis)라는 이름의 세포사를 한다. 닉 레인이 ’미토콘드리아‘에서 밝힌 것처럼 죽음은 진화과정에서 유성 생식을 획득한 생물에만 나타난다. 성(性)은 다양한 유전자를 지닌 자녀를 만들고 죽음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개체만이 선택되게 한다. 영양이 고갈되지 않는 이상 끊임 없이 증식하기에 본질적으로 죽음이 없는 세계에 사는 대장균 같은 1배수체 생물과 비교되는 부분이다.

사람의 일생은 다른 모든 생물과 마찬가지로 유전 정보를 남기고 전하는 과정이기에 유전자를 함부로 조작하거나 지배하려는 것은 정보 전달 과정을 저해하는 것이며 자기 붕괴로 이어진다는 저자의 말은 고무적이다.

세포의 얼굴인 당 사슬은 4개의 문자로 이루어진 단순 암호인 DNA와 달리 혈액형이나 수정(受精), 독감 , 암의 전이(轉移) 등 질병의 메커니즘에도 관여한다. 바이러스는 세포의 당 사슬을 목표로 감염을 시도한다.(당 사슬과 바이러스가 결합하지 않으면 감염은 일어나지 않는다.) 한편 암이 된 세포에는 당 사슬이 나타나기에 당 사슬은 암의 표지라 불린다. 유전자 변화로 생기는 암은 원래 없던 물질이기에 인체 입장에서는 이물(異物)이다.

암 세포는 태아 흉내를 낸다고 한다. 아버지에게서 물려 받은 클래스 1 MHC(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 주요 조직적합 유전자 복합체) 분자는 어머니 입장에서는 이물이기에 어머니의 면역 담당 세포의 공격을 받는다. 그런데 태아는 클래스 1 MHC 분자를 통째로 감추어 어머니 킬러 T세포의 공격을 피하고 클래스 1 MHC가 없는 세포를 공격하는 내츄럴 킬러 세포 앞에서는 숨겨 놓은 클래스 1 MHC 분자 대신 HLA - G라는 인류 공통의 클래스 1 MHC 분자를 표면에 방출해 공격을 교묘하게 피한다. 이 밖에 태아 세포는 어머니의 면역 담당 세포를 방해하는 물질을 방출한다. 그런데 암 세포는 바로 태아를 흉내내어 세포의 공격을 피한다고 한다.('내 몸 안의 주치의 면역' 참조)

태아가 면역 시스템을 따돌리는 메커니즘을 보며 그런 메커니즘이 없었다면 우리는 태어나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또한 암 같은 것도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발병자에 한하는 말이지만 암은 탄생의 대가이다. 죽음과 성을 가능하게 한 진화와 암의 면역 회피 시스템은 함께 생각해 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 암 세포가 면역 세포의 공격을 교묘히 따돌리는 것은 프로이트가 말한 응축(condensation)과 치환(displacement)을 떠올리게도 한다. 태아가 면역 세포의 공격을 따돌리는 것은 놀라운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마이크로 버블은 차세대 암 치료법으로 주목받고 있는 치료법이다. 일반 거품에 비해 부력이 약한 마이크로 버블을 수축시켜 암 세포를 순식간에 70도c까지 가열하는 것이다.(암세포는 40도c면 죽는다.) 이 방법에는 정교한 초음파 기술이 수반되어야 한다. 한편 분자 로봇은 바이러스와 암 세포를 공격할 환상적인 극소 장치로 주목받고 있다. 분자 크기의 기계를 제작하려는 발상은 물리학자인 리차드 파인먼에게서 비롯되었다.

지금껏 아미노산은 좌수형(左手型)이 있다고만 알려져 왔는데 우수형(右手型) 아미노산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우수형 아미노산은 노화, 백내장, 알츠하이머 등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왼손과 오른손 관계에 있는 분자를 거울상체 또는 거울상 이성질체라 한다. 아미노산은 아니지만 거울상체가 존재하는 탈리도마이드가 있다.

1960년대에 탈리도마이드제를 복용한 임신부들이 기형아를 출산했고 사망자도 생겼다. 우수형의 탈리도마이드는 진정 작용이 우수해 수면제로 사용되었지만 좌수형 탈리도마이드는 기형을 촉진한다고 한다.(탈리도마이드를 인공 합성한 결과 좌수형과 우수형이 뒤섞여 부작용이 발생한 것이다.) 좌수형 아미노산이 이어진 곳에 우수형 아미노산이 하나라도 섞이면 아미노산의 입체 구조가 크게 일그러진다. 이때 기능 저하와 노화가 발생한다.(알츠하이머 병의 주요 원인으로 생각되는 아미로이드 단백질, Tau 단백질, 백내장에 관여하는 크리스탈린, 광우병과 크로이츠펠트야콥병 등에 관여하는 프리온 등에 우수형 아미노산인 아스파르트산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우수형 아미노산이 들어 있는 단백질을 분해하는 효소가 있음을 시사하는 실험 결과가 도출되었다고 한다. 우수형 아미노산 발생은 자외선에 노출되는 것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DNA가 손상되면 제거해야 할 우수형 아미노산을 제거할 수 없고 이는 노화의 원인이 된다고 한다. 손상된 DNA를 제거하거나 복구하지 못하는 것이 암의 원인들 중 하나로 추정되고 있다. 일본의 가나자와 대학 대학원 교수인 가와하라 에이 박사팀이 PP2A/ B 베타라는 효소가 암의 전이에 관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벌견했다고 한다. 단백질은 인산(燐酸)의 결합 유뮤에 따라 작용 정도가 변하는데 PP2A/ B 베타는 단백질에서 인산기를 분리하는 효소의 일종이다.(단백질에 인산을 결합하는 효소는 키나아제이다.)

포스파타아제는 암의 전이에 관계하는 효소이다. 유전자 조작을 이용해 PP2A/ B 베타의 역할을 억제하자 암세포의 이동이 억제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 ’인체를 지배하는 메커니즘‘이 여러 저자가 함께 쓴 책이어서 상호 충돌하는 내용도 있다는 것이다. 유전자를 함부로 조작하거나 지배하려는 것은 정보 전달 과정을 저해하는 것이며 자기 붕괴로 이어진다는 주장(66 페이지)과 암의 전이에 관여하는 유전자를 조작해 바람직한 결과를 얻었다는 주장(156 페이지)이 같은 책에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유전자 조작에 관한 합의가 도출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인체를 지배하는 메커니즘‘을 통해 많은 진기한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좋은 책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