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드라 프레드먼은‘인권의 대전환’이란 책에서 인권을 뒷받침하는 세 가지 핵심 가치로 자유, 평등, 연대(連帶)를 꼽았다. 그녀는 인권을 옹호하는 것은 제대로 된 민주주의 체제를 지향하는 것과 같다는 견해를 펼쳤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국가인 우리나라의 인권 상황은 괜찮은가. 답은 아니다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개체보다 전체(국가)를 우선시하거나 인간보다 경제를 우선시하는 사례들이 빈번하다. 보편적 가치가 된 인권이 우리에게는 아직까지 당위적인 가치로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다. 인권 논의에 하나의 시사점을 제공해주는 것이 있다. 바로 동물권이다. 최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동물권이란 개념은 서구의 중산층만을 위한 개념이 아니냐는 논란을 낳고 있다. 동물권 보장 운동은 의류(모피)와 식육(食肉), 오락 등을 위해 동물을 사육, 착취하는 사람들의 이해와 부딪힐 수 밖에 없다. 동물권 논쟁은 페미니즘 및 북한 인권 논란과 유사한 점이 있다.

 

동물권 보장 운동을 서구의 중산층만을 위한 운동으로 보는 것은 페미니즘을 정치, 경제적 문제에 비해 부차적인 것으로 간주하거나 우리나라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제쳐두고 북한에 식량을 그렇게 주어서야 되느냐는 논쟁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 이런 논쟁들은 모두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이 있다는 것과 관련한 논쟁들이다. 하지만 이런 논리에 매몰되었다면 페미니즘이나, 가난한 국가에 대한 지원 등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거나 펼쳐지지 못했을 것이 너무나 자명하다. 21년의 인권운동 경력을 지닌 류은숙씨가 쓴‘사람인 까닭에’에도 나의 이런 문제의식과 공명하는 내용이 나온다. 이 책에는 우리 주변의 다양한 인권 관련 이슈들에 대한 참여 또는 사유의 결과물들이 담겨 있다. 류은숙씨에게 능력은 사람을 내버려 두지 않는 것을 의미하며(31 페이지), 다른 시간 먼 장소에서 고통 받을 타인을 떠올리는 것을 의미한다.(48 페이지)

 

인권은 자유, 평등, 연대 중에서 연대와 가장 밀접하다. 류은숙씨의 문제의식하에서 연대는“앞 세대에 대한 부채와 다음 세대에 대한 책임”(52 페이지)을 의미한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에 참여한 지구 시민 엔지 젤터는“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행성에 살고 있고 모든 문제는 연결되어 있다.”는 말을 했다. 인권과 연대의 상관성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표현한 말은 찾기 어려울 듯하다. 류은숙씨는 연대는 비대칭적이라 말한다.(56 페이지) 비대칭성에는 가는 것이 있어야 오는 것이 있는 세속의 셈법으로는 헤아릴 수 없는 희생적 연대성이 담겨 있다. 여러 첨예한 이슈의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비대칭성이다. 류은숙씨의 책이 공감을 갖게 하는 것은 논의가 구체적이고 리얼하기 때문이다.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들이 솔직하게 토로된 것 역시 이유의 하나이다.“뭉뚱그려 빈곤에 대해서는 안타까워하고 분노하면서도 현실 속에서 만나게 되는 구체적인 빈민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두려워하기도 하는 것이 나이기 때문이다”(74 페이지)란 말은 특히 그렇다.

 

류은숙씨의 책을 읽으며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인권이란 개념을 상징적, 추상적으로만 여겨왔을 뿐 인권의 구체적 의미를 느낄 기회도 없었고 기본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체화해 내 일부로 여기지 못했다는 생각이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류은숙씨 같은 인권 운동가가 아닌 이상 심각한 차별과 폭력 등을 겪고 있는 이주 노동자들을 보며 안타까움을 느끼는 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복지 논쟁에 대해서는 이성보다 감성에 기초해 각자 다른 목소리를 내고 인권 운동을 베풂으로 여기는 정도에 그칠 뿐인 듯하다. 정부의 대규모 감세(減稅) 정책이 자신에게 구체적인 피해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기에 자신은 상관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감세 정책은 당연히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복지 축소와 맞닿아 있는데 문제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의 생각에 자신들의 경제력 능력에 대한 자신감이 깔려 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이는 류은숙씨가 말한대로 노동 윤리를 복지와 결합시키는 것이다. 복지 수혜자들에 대한 그런 불편한 시각은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굶주리는 사람들을 제쳐두고 북한에 식량을 그렇게 주어서야 되느냐는 생각과 연관성이 있다. 요는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굶주리는 사람들에 대해 손을 내밀거나 구체적 도움을 주는 경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복지 수혜자들이나 수혜를 바라는 사람들에 대한 불편한 시각과 인권 사각지대에 놓인 북한 사람들에 대해 보이는 못마땅한 시각은 한 뿌리인 셈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주소이다. 저자는 연민과 구별되는 태도를 상호관심이라 말한다.(121 페이지) 연민에도 이르지 못한 사람들은 연민에 이르도록 해야겠거니와 연민을 거치지 않고 상호관심으로 나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가능할까, 란 의문이 들지만 말이다.

 

류은숙씨에 의하면 인권운동의 성과는 개인주의이다. 하지만 개인은 고립을 넘어 연대할 때 의미가 있다. 이것이 바로 연대하는 개인주의를 말하는 배경이다.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적 인간을 만드는 자본주의적 토대가 마련되었을 때 보편화한 인권에 연대가 결합해야 하는 이유이다.‘사람인 까닭에’에는 류은숙씨와 함께 인권 운동을 한 동료들, 인권 소수자들, 인권 운동 지지자들에 이르는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나온다. 그분들 중 단(Dan Jones) 할아버지란 분이 있다. 국제 엠네스티의 인권 교육을 희망했지만 체류비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사정이 열악했던 류은숙씨에게 선뜻 당신의 딸이 쓰던 방을 내준 단 할아버지는 스스로 인권 관련 일을 만들어 할 만큼 일을 좋아한 분이었다. 가난한 인권 운동가들의 눈에는 여건이 되기에 인권 운동에 몰두할 수 있는 것으로 비쳤지만 실은 처음부터 그런 삶이 가능했던 것이 아닌 것이다.

 

류은숙씨는 그분이 늘 방향타를 그쪽으로 두고 살아왔기에 천천히 평생에 걸쳐 펼쳐진 것이었다고 말한다. 단 할아버지는 먼저 할 것과 나중 할 것이 있다는 논리에 매몰되지 않았기에 발전할 수 있었던 주요 이슈들을 떠올리게 하는 분이다. 류은숙씨와 인연이 닿은 분들 가운데에는 대단한 명문가 태생으로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평화운동에 참여하면서 방 한 칸만을 남긴 채 모든 재산을 기부하고 자신이 만든 비행기가 전쟁에 이용된다는 이유로 직업(비행기 설계사)도 버린 피터 할아버지란 분도 있다. 상투적인 표현일지 모르지만 그분들의 행동을 의롭다고 말하고 싶다. 배려, 관용, 지지, 침묵, 비판, 무관심 등‘사람인 까닭에’에 나오는 운동에 대한 반응은 다양하다. 이와 관련해 류은숙씨는 이런 말을 한다.“차이에 대해 침묵하는 관용 대신 툭닥거리며 치고받더라도 시끄러운 관심을 요구하는 것이 연대(連帶)가 아니냐고 되물어야 한다.”(235 페이지)‘사람인 까닭에’는 인권 운동에 대한 사색과 진지한 고민의 흔적이 담긴 책이다.

 

물론 그 사색과 고민은 실천을 전제로 한 사색이고 고민이다. 때로 우리는 행동과 사유의 바른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 하는 논의를 한다. 행동이 중요하다는 진영(陣營), 사유가 중요하다는 진영(陣營) 모두 나름의 논리와 설득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사유에 더 큰 무게를 두는 쪽에 믿음이 간다. 세상의 단순, 명쾌하지 않음은 순도 높은 사유를 요구하고 상반된 것들의 혼재는 양자를 아우르는 지혜를 요구한다. 행동보다 사유의 깊이가 관건이라는 철학자 김형효의 진단을 수용하는 나는 그 분의 말을‘행동과 함께 사유!‘라는 말로 조금 바꾸어 말하고 싶다. ’사람인 까닭에‘로 인해 사유와 행동의 바람직한 관계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음을 감사하게 여긴다. 수많은 강연과 교육을 다니고 글을 쓰지만 수입은 고스란히 연구소에 바치고 식당 일을 해 생활비를 마련하는 류은숙씨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하다.(인권연구소 ’창’ 연구 활동가 유해정씨의 글‘은숙씨는 누가 기다리고 있는 양 그곳에 갔다’참조) 세상이 생각만큼 각박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류은숙씨를 통해 배웠다. 성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