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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세월 에이즈 공포증이라는 강박 장애를 앓고 있는 데이비드 애덤이 쓴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 대한 총체적 보고서이다. 저자가 자신이 겪은 강박 장애의 증상으로 소개한 내용은 터무니 없는 생각이지만 한 생각에서 다음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는 점에서 지성적 내용임을 입증한다. 지적인 사람이기에(지적인 사람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이라 할 수 있다.

강박 장애는 기이한 비현실적인 생각들의 연쇄(連鎖)를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이한 생각들을 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런 생각을 떨쳐낸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본문에는 벽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를 않아 벽을 (부숴) 먹은 한 여학생 이야기가 나온다. 역사적으로 유명한 강박 장애 환자들이 있다. 찰스 다윈, 카메론 디아즈,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마이클 잭슨, 루드비히 판 베토벤, 앨버트 아인슈타인, 미켈란젤로, 스텐리 큐브릭, 윈스턴 처칠, 섀뮤얼 존슨, 프레데릭 쇼팽, 조지 워싱턴 등이 유명한 강박증 환자들이다.

완벽한 피아노 연주를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혔던 글렌 굴드도 강박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순위를 매길 수는 없지만 유명한 수학자 쿠르트 괴델은 특기할 만하다. 그는 아내가 먼저 맛을 보지 않은 음식에는 손을 대지 않다가 아내가 병에 걸려 맛을 볼 수 없게 되자 강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굶어 죽고 말았다. 처칠은 물에 뛰어들려는 충동, 기차에 뛰어들려는 충동 등에 시달렸지만 이는 자살충동이 아니라 강박장애이다.

청하지 않은 생각이 모두 바람직하지 않거나 불쾌한 것은 아닌데 이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았던 음악적 아이디어가 떠오르자 열광한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예가 증명한다. 조지 워싱턴과 프레데릭 쇼팽은 산 채로 묻히는 공포감을 앓았다. 저자는 강박증을 정신의 독재자라 표현한다. 강박 장애는 일상적이다. 가령 강박증 환자의 증상인지 정상인의 증상인지를 구별할 수 없을 만큼. 이 질환은 우울증, 약물남용, 불안 장애에 이어 네 번째로 흔한 정신 장애이며 자폐증이나 조현병보다 두 배 많다.

더러운 것이나 병에 오염되는 것에 대한 강박, 피해에 대한 비합리적 공포, 패턴과 대칭에 대한 강박, 신체와 물질에 대한 강박, 종교적이면서 불경스러운 생각, 원치 않는 성적인 생각, 폭력을 행사하는 생각 등이 강박의 내용을 이루는 것들이다. 강박의 재료가 되는 원치 않는 침투적 사고는 비합리적이며 정신적 불화를 일으키는 것들이다.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마‘란 책이 유명한데 원치 않는 생각을 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는 않지만 아주 어렵다.

억제하려다 그만 두면 후에 그 생각이 더 많아진다. 강박증을 앓는 사람들은 탈출구가 없다는 점에서 공포증 환자들과 다르다. 공포증에서 공포를 자극하는 것은 외부에 있는 반면 강박 장애는 그 원천이 내부(우리 자신의 생각)에 있다. 강박 장애는 자아 이질적인 반면 강박 인격 장애는 자아 동질적이다. 강박 장애는 환자에게 지옥이고 강박 인격 장애는 주변 사람들에게 지옥일지 몰라도 환자들은 보통 즐겁게 청소하고 정리하며 그런 행동에 자부심을 느낀다.

문을 잠갔는지 자신할 수 없어 계속 확인하는 것 같은 강박 장애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억의 정확성이 아니라 자신의 기억이 맞는지 자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역시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서처럼 악순환이다. 파킨슨병은 강박 장애가 아닌 신경퇴행성 장애이지만 일부 환자들은 강박 행동과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 신경성 식욕 부진증이나 신경성 대식증 등의 식이장애는 강박 장애와 부분적으로 매우 유사하다.

에이즈 공포증이라는 강박 장애를 앓고 있지만 저자는 정상적인 생활을 했다. 마찬가지로 대다수의 강박 장애 환자들은 도움 없이 살아간다. 저자는 무신론자로서 종교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없지만 자신의 말이 종교에 대한 공격으로 해석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낸다. 저자는 종교가 정신병이라거나 강박장애와 신앙이 같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지만 침투적 사고를 억압하려 하면 강박 장애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종교는 강박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을지 모르지만 강박을 배출하는 역할은 한다고 말한다. 저자는 동물의 사례도 예시한다. 동물의 의식은 강박 장애 행동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가 그 예로 제시한 것이 그루밍(grooming)이라 불리는 몸단장이다. 한 학자는 수다를 입으로 하는 그루밍이라 말한다. 그에 의하면 털 다듬기는 집단의 크기가 커짐에 따라 모두에게 일일이 직접 해줄 수 없고 말은 여러 명에게 한 번에 해줄 수 있다.

이 내용은 인간의 두뇌가 도구의 제작과 사용을 위해서라기에는 너무 큰 현실을 보완해줄 이론으로 사회 두뇌 이론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이다. 사회성이 높은 동물일수록 두뇌 크기가 크다는 것이다.(이상희 교수 지음 ‘인류의 기원’ 참고) 저자는 동물들에게서 보이는 구루밍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나타나는 고정행위패턴이라 설명한다.(151 페이지) 물론 저자는 강박 장애의 주요 요소인 씻기, 청소, 확인 등이 오래전 초장기 인류나 포유류가 생존하는 데 유용했던 전략이었음을 의미한다는 주장은 그럴 듯 하다고 말한다.(156 페이지)

중요한 진술 가운데 하나는 현대의 인간 행동을 오랜 옛날부터의 진화과정에 연결하려는 시도는 연관성을 테스트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지닌다는 말이다. 단일한 강박 유전자는 없다. 유전자는 모두 다른 유전자와 함께 일한다. 대대로 내려온 정신 장애의 원인이 반드시 유전이라고 볼 수는 없다. 환경적 영향도 있다는 의미이다. 강박 장애는 유전, 진화, 가족력 등과 함께 우리의 환경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왜 어떤 사람은 걸리고 어떤 사람은 걸리지 않는지 알려지지 않았고 강박 장애자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도 알려지지 않았다.

‘도망친 뇌‘라는 챕터는 흥미롭다. 주먹을 쥐고 엄지를 세운 후 땅을 향하게 했을 때 엄지는 뇌간, 엄지손톱은 척수의 끝부분, 손가락과 손은 피질, 새끼손가락은 전두엽 피질에 비유될 수 있다. 똑같이 주먹을 쥐지만 검지는 포도알을 쥐듯 구부릴 때 그 포도알 부분이 강박적 생각이 존재하는 곳이다.(191 페이지) 뇌와 정신을 지나치게 분리해 생각하면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까다로운 영혼이란 개념에 부딪히게 된다.

저자는 특정 뇌 부위가 활성화되었다고 해서 불이 들어온 부분의 뇌가 우리가 조사 중인 정신활동을 조종하고 있는 것인지 정신 활동의 결과로 뇌의 그 부분이 활성화된 것인지 우리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195 페이지) 대부분의 뇌는 그때그때 다른 일을 한다는 말도 중요하게 읽힌다. 즉 편도체는 성적 흥분이나 성적 폭력 모두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MRI 촬영으로는 열정과 공포를 구분할 수 없을 뿐으로 단지 뇌 부위가 활성화되었다는, 평소보다 활성화되었다는 사실을 말해줄 뿐이다.

인간의 뇌는 내부에서 외부로 진화했다. 표면에는 주로 지능과 관련된 부분이 있다. 사고하는 능력을 담당하는 피질이 이 부분에 있고 최근에 진화한 것이다. 뇌의 깊은 곳에 있는 부위일수록 오래된 것이다. 그 부분은 인간이 존재하기 훨씬 이전부터 형성되어 진화를 거치며 후손들이 공유해온 부분이다. 대뇌 기저핵은 뇌의 가장 깊은 곳에 있으며 가장 오래된 부분이다. 과학자들은 기저핵에 문제가 생기면 강박 장애와 유사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계속 관찰하고 있다.(200 페이지)

강박 장애가 전염된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연쇄상구균 감염시 항체의 수가 적을수록 강박증도 약해지고 다시 감염이 되어 항체가 급격하게 늘어나면 강박 장애 증상도 악화되었다. 저자는 설트랄린이라는 강박증 치료제를 복용한다. 물론 약을 복용해도 생각은 여전히 찾아오지만 이전보다 오래 머물지 않았다고 한다. 화학공학 박사인 저자는 뇌와 신경전달 물질 등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전한다. 이 부분은 그 자체로 뇌에 대한 소략(疏略)한 보고서라 할 만하다.

가령 뇌에 세로토닌이 필요한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신호를 전달하는 뉴런들이 서로 직접 연결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기저핵에서 도파민의 양을 늘어나게 하는 약품을 사용하면 갑자기 도박 강박이 생기거나 파킨슨병에서 볼 수 있는 도벽이 생기기도 한다. 세로토닌을 충분히 만들어내지 못하면 도파민의 양이 늘어나 선조체(線條體)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선조체는 강박 장애가 있는 뇌 모델에서 핵심 역할을 한다.

최근 신경과학자들은 제3의 신경전달물질인 글루탐산염이 강박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다고 지목하고 있다. 옥시토신 역시 강박 장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강박장애 환자들은 편도핵(扁桃核)과 해마(海馬)의 크기가 정상인의 그것에 비해 작다. 안와(眼窩)전두(前頭)피질(皮質)과 기저핵은 정상인의 그것에 비해 작고 시상은 역시 정상인의 그것에 비해 크다. 병이 심할수록 그 크기는 더 크거나 작다. 저자는 정신이 아닌 뇌의 문제라는 일반론과 반대로 자신의 뇌는 정상이지만 정신에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정신의 문제를 치료하는 것이 뇌의 문제를 치료하는 것보다 확실히 쉬운지 알고 싶어 병원에 다닌다고 말한다.(223 페이지) 저자는 강박 장애라면 지긋지긋하고 신물이 나 어서 사라지기만을 바랐지만 어쩌면 그리워할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그 증상 역시 그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사이렌의 유혹을 물리치려고 자신의 육체를 기둥에 묶었던 오디세우스처럼 일부 강박 장애 환자들은 육체적 제약을 가함으로써 강제로 강박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하는 치료를 받기도 한다.

일부 강박 장애 환자는 너무 약하다는 이유로 인지행동 치료를 거부하고 또 다른 강박 장애 환자는 인지행동 치료가 너무 가혹하다는 이유로 그만 둔다.(241 페이지) 저자는 강박 장애에 시달리면서 두개골을 쪼개 뇌에서 생각을 뽑아버리고 싶었던 때가 여러 번 있었다고 말한다.(243 페이지) 우연히 뇌손상을 당해 강박 장애가 생길 수 있는 것처럼 아주 드문 경우이긴 하지만 우연한 사고로 강박 장애가 사라지기도 한다.(262 페이지)

저자의 책을 통해 우리는 의학의 역사란 오류와 무모하기도 한 도전, 위험한 실험 등이 일부였던 역사임을 알게 된다. 강박장애는 미디어 특히 영화와 텔레비전 등에서 부당한 취급을 받았다. 생각은 내면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라 영화화하기 어렵기에 행동에 집중한 까닭이다. 강박 장애는 웃음의 소재로 쓰이거나 경박스러운 취급을 당하는 빈도가 컸다. 저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강박장애의 긍정적 면은 없다고 말한다.

강박장애와 외상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는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충격적인 경험 뒤에 강박장애가 생기는 경우도 있고 PTSD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 PTSD와 강박장애는 같은 사건 때문에 나타날 수 있고 한 사람에게 공존할 수 있다. PTSD가 있는 군인들은 강박장애에 걸릴 확률이 열배 이상 높다. 기이한 생각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떠오르지만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강박장애로 연결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이 말을 즈음해 조언할 말은 명상(冥想)이 강박장애 극복에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다. 길거리에서 할머니를 칼로 찌르는 침투적 생각(intrusive thoughts)이 생겼을 경우 가치 없는 생각이라 여겨 떨쳐버리면 아무 문제가 없지만 사라지게 하려고 싸우면 강박장애가 생길 수 있고 그 생각이 생겨난 원인을 외부 탓으로 돌리면 정신분열이 될 수 있다.(291 페이지) 저자는 강박증을 비롯한 정신질환 진단에 깃든 자의성의 대안으로 정신질환 사이의 연관성을 확립하는 것과 강박장애를 다른 정신적 증후군과 공통점이 있는 장애로 재분류하는 것을 제시한다.

뇌신경망 지도를 커넥톰(connectome)이라 한다. 이 프로젝트에서는 행동이나 동기를 유발하는 것이 뇌의 일부나 특정 부속의 활동 때문이 아니라 세심한 연출 덕이라 가정한다. 강박장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여겨지는 안와전두피질과 시상(thalamus) 사이의 회로에 힌트가 있는 것 같다.(302 페이지) 과학자들이 정상인들이 얻은 점수와 중증 정신병동의 환자들이 얻은 결과를 비교했는데 흥미로운(?) 점이 발견되었다. 정상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열 명 중 한 명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완전히 미친 환자들이 얻은 점수의 평균보다 높았다는 것이다.

강박장애는 스스로 없어지지 않지만 과학자들이 꾸준히 진단법과 치료법을 연구하고 있다.(310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정신과 의사로부터 평생 강박장애와 싸워야 할 것이라는 경고를 들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때때로 불시에 자신을 점령하는 생각이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매번 겪을 때마다 고통스러운 공포심과 불안이지만 그것 또한 지나가리란 점을 안다고 말한다.(316 페이지)

안데르센은 자신의 강박관념을 자신에게 부와 명성을 안겨준 창조적인 상상력의 이면이라 생각했다.(317 페이지) 저자는 자신의 책 집필이 증상 개선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책이 새로운 것이며 자신의 것이라는 말을 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말을 ’나는 의심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고 바꾼 저자의 소중한 자아관과 자신감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자신의 뇌는 스스로 관리해야 한다(223 페이지)는 말을 한 저자의 일관성을 알게 하는 대목이기도 하고. ’멈출 수 없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책이어서 읽기의 수고를 보상하는 좋은 책이라 말하고 싶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저자에게 명상을 권하고 싶다. 현학적이고 상세하며 교훈적인 병력(病歷) 보고서이자 희망의 보고서를 읽을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한다.

* 인터파크 도서 신간 리뷰단을 통해 제공된 도서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