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엄 촘스키(Noam Chomsky: 1928 - )는 행동하는 양심이다. 자국인 미국에 대해 철저한 비판을 가하며 열정적으로 저술활동을 하는 그의 강력한 무기는 집요한 신문 읽기와 분석이다. 그의 그런 집요한 읽기의 결과물들을 통해 우리는 지적 희열을 느껴왔다. 이번에 읽게 된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로 인해 나에게도 그의 책이 세 권째 서가에 꽂히게 되었다. ‘권력에 맞선 이성’, ‘학살의 정치학’ 등에 이은 세 번째 책인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는 구조적인 악의 시대에 추상 같은 메시지를 던지는 언어학 전공 학자의 최근작이다.

사실 미국에 대한 비판서는 차고 넘친다. 내가 읽은 책만 해도 앞서 언급한 촘스키의 책들인 ‘권력에 맞선 이성’, ‘학살의 정치학’ 말고도 ‘미국처럼 미쳐가는 세계’, ‘이것을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까’, ‘다운사이징 데모크라시’, ‘미국의 굴욕’, ‘지상의 위험한 천국’ 등 상당한 수에 이른다. 그러나 촘스키의 책은 몇 가지 점에서 차별적이다. 촘스키는 지식인들을 정부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정부의 문제점, 동기, 감추어진 의도들을 분석해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들로 정의한다.(2013년 1월 시대의 창 출간 ‘촘스키 知의 향연’ 18 페이지) 줄여서 말하면 지식인이란 진실을 말하고 거짓을 폭로하는 것을 책무로 지닌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촘스키의 이 정의는 누구보다 자신에게 들어맞는다. 그는 ‘반대에서 저항으로’라는 구호는 정말 타당하지만 그 말이 이제 반대는 그만 하자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에 의하면 반대와 저항은 상호보완적이다.(‘촘스키 知의 향연’ 63, 64 페이지) 촘스키는 무엇보다 화자(話者)를 둘러싼 물리적 상황을 관찰하고 조작함으로써 언어 행동을 예측하고 통제하는 방법을 제시하려는 책을 저술하는 언어학자이다. 우리에게는 그의 정치사회적 저서들이 많이 알려졌지만 그가 쓴 언어학 책들도 전문성 면에서 그에 못지 않는다.

‘촘스키 知의 향연’의 옮긴이에 의하면 지금까지 알려진 유한한 지식으로 무한의 이상을 열망하는 촘스키의 정치사회관은 유한한 수단의 무한한 활용이라는 언어관과 일맥상통한다. 물론 촘스키의 철저한 미국 비판은 그가 언어학과 관련을 맺은 학자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외부적 시선을 가질 때라야 조직의 잘못과 모순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것에 비춰보면 촘스키의 철저한 미국 비판은 예외적이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렇기에 그는 내부의 아웃사이더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점이 촘스키의 특별한 점이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탈을 쓴 전쟁광의 질주, 속고 속이는 진실게임: 미국에 민주주의는 없다, 세계 최강대국 타이틀 전쟁 등 세 챕터로 이루어진 이 책이 다룬 아프카니스탄 및 이라크 전쟁, 중국의 세계 제 2위로의 부상, 이란 및 북한의 핵 위협, 세계 금융 위기 등 굵직굵직한 이슈들은 세계의 창(窓)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이란의 핵 포기 선언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이 책은 그 이전에 쓰인 책이기에 그런 부분은 반영되지 않았다. 물론 북한은 여전히 핵으로 한반도를 긴장과 위협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 북한에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잘못된 인과관계를 헤아리는 데 능한 촘스키에 의하면 북한의 이런 행동은 2002년 북한을 악의 축의 한 국가로 지목한 부시 미 대통령의 잘못으로 빚어진 사태이다. 촘스키의 말인 즉 부시의 악의 축 발언이 그런대로 미국에 호응하던 북한으로 하여금 강경 자세로 돌아서게 했다는 것이다. 촘스키의 말은 선의의 외교는 효과를 낸다는 말로 요약 가능하다.

촘스키의 책을 통해 독자들은 세계 패권 국가로서 자유무역에 대한 이중적 원칙을 고수하는 미국, 세계의 주인으로 행세함으로써 큰 대가를 치르는 미국,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불의한 배경과 방법으로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편드는 미국, 다른 나라의 내전(內戰 또는 내정內政)에 개입해 보복 공격을 받으면 100배의 화력으로 되갚지만 신을 찾고 신의 뜻으로 자신들을 합리화하고 그 신에게 기도하는 위선적인 미국, 대외적으로 보여줄 국가적 페르소나를 장착한 미국, 평화 추구 외교가 아닌 전쟁 추수(追隨)의 광기를 지닌 미국, 폭력을 위해 나머지 나라들이 투자하는 비용을 전부 합한 것과 엇비슷한 돈을 쓰는 미국, 세계 제 2위의 강대국으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동아시아 지역에 상당히 집중하는 미국의 실상을 알 수 있다.

미국의 엔진이 전쟁과 시장이라는 말이 있는데 저자는 폭력과 경제제재를 언급한다. 폭력과 경제제재는 전쟁과 시장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석유를 위해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은 그만큼 주체하지 못하는 소비 문화, 전쟁 추수적 시스템에 빠진 국가이다. 이라크의 석유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매장량이 많고 채굴하기도 쉽다고 하니 안성맞춤이었던 것이다. 미국은 금융 자유화로도 유명한 국가이다. 문제는 미국이 집요하게 추구한 금융자유가 세계적 금융위기의 불씨로 작용하는 것을 넘어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금융자유화는 자본의 자유이고 극소수 플루토크라트들에게 유리한 자유이다. 촘스키는 미국을 실질적인 일당 체제로 분류한다. 미국에는 표면적인 차이가 있을 뿐 본질적인 면에서는 다름이 없는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파벌로 나뉜 기업 정당 밖에 없다는 것이다. 촘스키는 기업이 인수한 미국 민주주의에 대해 들려준다. 2010년 1월 21일 미국 연방 대법원은 정부가 기업이 선거에 정치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금지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로써 미국민주주의는 중대한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자(를 위한 정책을 펴는) 정당을 지지하는가, 말하지만 유권자들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음을 주시해야 한다. 촘스키는 진정한 민중의 투쟁이 투표소에서 노동현장까지 진정으로 민의를 반영하는 민주사회를 건설하겠다는 목표로 4년에 한 번이 아니라 하루도 빠짐 없이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대통령을 뽑는 것이 평소에는 소외받던 유권자들이 5년에 한 번 선거를 통해 제왕(帝王)을 뽑는 것인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미국이 민주주의 국가가 아니라(이에 대해 셀던 월린의 ‘이것을 민주주의라 할 수 있을까’를 참조하자.) 실질적으로 공화, 민주 양당에 의해 지배되는 체제라는 것은 정치의 투자 이론에 의해서도 설명된다. 정치의 투자 이론에 따르면 미국의 정책은 국가를 지배하기 위해 4년마다 투자하는 힘 있는 집단의 바람을 반영하는 경향을 띤다. 미국은 고문으로도 유명한 국가이다. 문제는 미국의 고문이 역사를 더럽힌 침략, 테러, 전복(顚覆), 경제 봉쇄 등에 비하면 하찮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상대적으로 작은 잔혹 행위들이 훨씬 큰 범죄를 덮는 기능을 한다는 말에 의해 뒷받침된다.

유엔의 논의로 논란의 중심에 선 보호책임 또는 R2P(Responsibility to protect) 원칙은 미국의 힘 우선 원리를 잘 보여준다. R2P는 자국민을 보호할 능력을 잃은 국가나 독재국가에서 심각한 인권 침해가 이루어질 경우 그 나라의 주권을 일시적으로 무시하고 국제 사회가 개입할 수 있다는 논리를 말한다. 문제는 국제사회가 거의 미국 한 국가를 의미한다는 점이다. 촘스키는 중국을 거론한다. 중국은 강력하게 부상하는 국가로 미국의 경쟁국이다. 물론 미국은 군사비 지출에서 나머지 국가들의 지출 총액과 거의 맞먹으며 세계 전역에서 수백 곳의 군사기지를 운영하고 있으며 과학기술의 파괴력과 지배력에서 월등하다.

현 정세에서 ‘안정’은 미국의 지배를 뜻한다. 즉 미국의 지배가 보장되어야 안정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이다. 촘스키에 의하면 미국은 1945년에 최정상에 있었던 국가로 현재 쇠퇴 일로를 걷고 있다. 중국은 현재 미국을 밀어내고 중동의 석유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국가이자 중동에서 가장 많은 물건을 수출하는 국가이다. 촘스키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지배에서 가장 큰 위협은 미국의 명령을 따르기를 거부하는 중국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반노동 정책 역시 심각하다. 미국의 노동절은 5월 1일이 아니라 9월 1일이다. 미국의 반노동 정책은 노동조합 파괴, 프레카리아트 양산 등으로 구체화한다. 문제는 우리나라도 미국 중심의 불안정하고 열악한 노동현실과 별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에는 우리와 관련한 긴급 이슈 한 꼭지도 실렸다. 해군기지 건설로 위협받는 세계 평화의 섬이란 글이다.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곳은 제주도이다.

제주도는 촘스키가 말했듯 1948년 4. 3 항쟁으로 당시 인구의 15 퍼센트가 죽음을 당한 곳이다. 2005년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제주도의 해군기지는 세계평화에도 위험하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중국과의 거리가 480k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기지를 한 신문은 국가방어의 최전선이라 표현한 바 있다. 이 신문의 표현대로라면 제주도에 최고의 전쟁 위험이 처해진 것이다. 그러나 어디 제주도 뿐이겠는가. 제주 해군기지에는 잠수함, 항공모함, 구축함 등 미군과 한국군의 전함 20척이 정박할 수 있다. 미국이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목적은 중국에 군사적 압력을 가하고 중국과 군사적 충돌이 일어날 경우에 대비해 작전 부대를 배치하기 위해서이다.

촘스키는 말한다. ‘중국이 미국의 해안 근처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 한다면 워싱턴은 어떻게 반응하겠는가?’라고. 그리고 이어 나간다. 얄궂게도 향후 초강대국들이 벌일 갈등의 씨앗이 생태보존 지역인 평화의 섬에 뿌려지고 있다고. 37세이던 1965년 초 납세거부 운동 참여, 보스턴에서의 최초의 반전시위 참여 등 비판적 지식인의 길을 걸어온 촘스키. 자신이 힘을 보탤 수 있는 운동이라면 어디든 가리지 않고 손을 뻗는다는 그는 전 세계에 영감을 주는 학자이자 행동가이다. ‘촘스키, 만들어진 세계 ,우리가 만들어갈 미래’는 그의 그런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