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윌슨(E. O. Wilson: 1929 - )은 개미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생물학자, 사회생물학과 종 다양성 연구자, 통섭과 생명 사랑(biophilia) 등과 관계된 이론가, 자연보호론자 작가이다. 그가 통섭과 사회생물학 등으로 많은 논란을 낳은 것은 유명한데 이번 ‘지구의 정복자’를 통해 (혈연선택에 대항해) 제시한 집단 선택 역시 상당히 이슈적이라 할 수 있다. ‘지구의 정복자’는 폴 고갱의 그림 제목인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가 부제로 설정된 책이다. 물론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란 문제의식은 더 이상 새롭지 않다. 그것은 이미 종교, 철학, 인류학, 과학 등에서 충분히 논의된 주제이다. 다만 외면할 수 없는 난문(難問)이다.

 

저자는 고갱이 제기한 그 물음들을 일관성 있게 다루기 위해 더욱 근본적인 두 가지의 물음에 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하나는 고도의 사회성이 존재하는 이유와 그것이 생명의 역사에서 왜 그토록 드물게 출현했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고도의 사회성을 존재하게 한 원동력의 정체는 무엇인가이다. 윌슨은 진사회성 동물(eusociality animal)을 이야기 한다. 진사회성 동물이란 집단의 구성원들이 여러 세대로 이루어져 있고 분업의 일부로서 이타적 행동을 하는 경향을 가진 동물을 뜻한다. 이 개념은 개미, 벌, 말벌(나나니벌) 등의 막시목(膜翅目) 곤충 연구를 통해 관찰된다.

 

저자는 현생인류의 기원은 요행이라 말한다. 물론 그것은 우리 종 외의 대부분의 나머지 생물들에게는 영구하게 좋지 않은 결과를 미칠 행운이었다. 요행이란 말은 닉 레인의 ‘미토콘드리아’를 연상하게 한다. 약 20억년 전에 일어난 ‘한 세포가 다른 세포를 집어삼키면서 미토콘드리아를 품은 진핵 세포의 합체 사건’이 지구 외의 다른 곳에서 되풀이 되었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는 것이다. 닉 레인의 논의는 외계 지적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이 희박함을 추론하게 하지만 그보다는 그렇게 극도로 희박한 가능성 즉 극단의 행운을 생각하게 한다.

 

인류가 이룬 영광과 성취가 아무리 눈부시다 해도 인류의 탄생은 한 순간 우연히 일어난 우주적 사건에 지나지 않으며 생명의 씨앗이 다시 뿌려져 생명의 나무가 비슷한 조건에서 자라난다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사건이라고 말하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논의('풀하우스' 35 페이지)도 참고할 만하다. 저자는 진화의 원동력으로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을 꼽는다. 그것은 특수한 환경하에서 생존에 적합한 형질을 지닌 종이 생존에 비적합한 형질을 지닌 종에 비해 생존과 번식에서 이익을 본다는 이론이다. 저자는 혈연선택 대신 집단선택을 인류 진화의 핵심 원동력으로 제시한다.

 

 

혈연선택(血緣選擇)은 근연(近緣) 개체 간에 공통의 어떤 유전 형질이 직계의 자손 이외의 근연자의 생존과 번식에 대하여 유리하거나 불리하게 작용하는 진화의 과정을 뜻한다. 집단선택은 집단을 근거로 하는 자연선택을 의미한다. 저자는 혈연선택이 부모, 자식, 사촌과 방계(傍系) 친족들이 목적의 통일성과 조율가능성을 통해 결속되어 있어서 서로 사심 없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제대로 입증된 바가 없으며 지금은 무너지고 있다고 말한다.(70 페이지) 방계란 직접적이고 주(主)된 계통에서 갈라져 나가거나 벗어나 있는 관련 계통. 시조(始祖)가 같은 혈족 가운데 직계에서 갈라져 나온 친계(親系)를 뜻한다.

 

그런 저자가 인류 진화의 원동력으로 내세우는 것은 개체 선택과 집단 선택을 아우르는 다수준(多水準) 선택이다. 저자는 인간 뇌의 각 부분들은 집단선택을 통해 집단주의 성향을 갖도록 진화해 왔다고 말한다.(82 페이지) 그 집단주의의 대표 사례는 전쟁이다. 인류는 정복전쟁을 벌이는데 갖다 붙일 이유가 없을 때는 늘 신(神)을 들먹였다. 기원의 폭력성이라는 말이 있지만 저자는 인간과 신성한 폭력 사이의 심오한 관계를 언급한다. 구약 성경을 통해 유대기독교와 폭력의 밀접한 연관성을 인정하는 사람에게 주의를 환기시키기라도 하듯 저자는 불교 역시 전쟁과 무관하지 않았음을 언급한다.(91 페이지)

 

침팬지의 압도적인 폭력성을 언급하는 저자는 그런 폭력성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에 대해 인간과 침팬지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았을 것이라 말한다.(97 페이지) 저자는 현재 우리는 수렵채집인 조상들과 근본적으로 똑같다는 말을 한다. 이는 설득력이 있는 말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냉혹하고 거칠고 힘든 자연 조건이 갈등과 투쟁 또는 전쟁을 부르는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아프리카를 탈출해 지구를 정복한 우리 조상들의 저력은 다양한 유전적 혼합에서 나왔다.(105 페이지) 현생 인류의 유전적 진화와 그로 인한 인구 증가, 그리고 그 둘로 인한 문화적 혁신은 상호배타적이지 않은 연관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다. 상호촉매적이라 할까?

 

저자는 유전자 하나 또는 소수의 유전자 집합 수준에서 일어나는 진화로 인해 유전자 빈도가 변하는 소진화(micro evolution)가 자연과정으로서 무한히 계속될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고 말한다.(122 페이지) 저자는 모든 비합리성, 위험한 산출물, 온갖 갈등, 비효율성 등을 지닌 생물학적 마음 즉 우리의 영토가 인간 조건의 본질이자 의미 자체라고 말한다.(124 페이지) 저자는 육상환경에서 서식하는 동물들 중에서 가장 복잡한 사회체제를 갖춘 종들이 우위를 점하는데 그런 종들의 출현은 아주 드물다고 말한다.(137 페이지) 가장 복잡한 계(係)는 진정한 사회적 조건 즉 진사회성을 지닌 계라 말한다.

 

저자는 개미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은 분인데 그런 이력을 반영하듯 인류가 척추동물 중에서 차지하는 위상보다 진사회성 곤충이 무척추 동물 세계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더 웅대하다고 말한다.(개미는 1억 2천만년 전보다 이전인 파충류의 시대 중반에 출현한, 진사회성 곤충의 대표이다.) 저자는 진사회성은 생명의 역사에서 이루어진 주요 혁신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165 페이지) 하지만 진사회성은 수수께끼의 근원이기도 하다. 대단히 희소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진사회성을 달성한 모든 동물 종의 개체들은 예외 없이 이타적 협동을 통해 포식자, 기생동물, 경쟁자 같은 적으로부터 항구적이고 방어 가능한 보금자리 또는 집을 지키며 집단의 구성원들은 두 세대 이상으로 이루어지고 적어도 자신의 사적인 이익 중 일부를 집단의 이익을 위해 희생하는 방식으로 분업한다고 말한다.(175 페이지)

 

저자는 이기적 유전자도 이야기하는데 그에 의하면 이는 지극히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178 페이지) 저자는 일꾼들은 표현형의 확장 사례 즉 여왕 자신의 유전자와 여왕과 교미를 한 수컷의 유전자의 또 다른 표현형이라고 말한다.(178 페이지) 저자가 진사회성을 거듭 이야기하는 이유는 당연히 사회를 이루고 생활하는 종이 독립생활을 하는 근연(近緣) 종보다 자원 채취 활동과 수명 측면에서 모두 더 낫다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서이다.(184 페이지) 진사회성의 문턱을 넘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외부 환경이 어미와 어미가 거느린 작은 군체(群體)에 압력을 가함으로써 이루어진다.(188 페이지)

 

저자가 말했듯 본능과 인간본성이 자연선택의 산물이라는 증거는 많다.(196 페이지) 개체선택 대 집단선택은 한 사회의 구성원들 사이에 이타성과 이기성, 미덕 대 죄가 혼재된 양상을 빚어낸다.(201 페이지) 혈연선택 개념이 온전한 이론적 토대를 갖춘 것은 1964년 영국의 학자인 윌리엄 도널드 해밀턴(W. D. Hamilton: 1936 - 2000)에 의해서이다.(207 페이지) 이 분은 세대가 짧은 기생충의 공격에 유전자를 섞어 대응하는 과정에서 인간이 유성생식(sex)을 하는 쪽으로 진화하게 되었다는 이론을 세운 학자이다. 그가 발표한 사회생물학의 공식은 rb>c이다.(b는 이타적 행동의 수혜자가 받는 혜택, r은 근친도, c는 이타주의자가 치르는 비용이다. cost, benefit, relatedness)

 

이 공식이 뜻하는 바는 이타적 행동의 수혜자가 받는 혜택(b)과 그 이타주의자와의 근친도(r)를 곱한 값이 이타주의자가 치른 비용(c)보다 크면 집단 내에서의 이타성을 빚어내는 대립유전자의 빈도가 증가한다는 의미이다.(207 페이지) 그런데 문제는 저자도 말했듯 혜택과 바용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학적 정밀성을 가진 근친도를 정의하는 것도 어렵다.(212 페이지) 진사회성 유전자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기존 형질에 돌연변이를 침묵시킴으로써 사회성 형질에 주된 변화를 만든다고 알려진 유전자 또는 유전자 집합은 적어도 두 가지 있다.(228 페이지)

 

 

저자는 인간 본성을 논하는 자리에서 무엇이 인간 본성이 아닌가부터 설명한다. 그렇게 인간 본성이 아닌 것은 수 없이 많다. 유전자는 물론 나이 서열, 근친상간 금기, 혈연집단, 언어, 법, 행운, 주술, 혼례, 종교의식, 성적 규제, 영혼 개념 등의 보편적 문화적 특징들...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의 현재를 만든 것은 늘어난 장기 기억 특히 꺼낸 뒤 작업 기억에 집어넣을 수 있는 장기 기억과 단기간에 시나리오를 짜고 전략을 세우는 능력이라고 말한다.(273 페이지) 그러면서 이런 복잡한 문화의 문턱에까지 호모 사피엔스를 이끈 힘이 바로 집단 선택이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호모 사피엔스란 지구의 정복자의 다른 이름이다. 저자는 인간의 인지기능과 우리의 가장 가까운 유전적 친척인 침팬지를 비롯한 다른 동물 종들의 인지 기능의 일차적이면서 핵심적인 차이가 공동의 목표와 의도를 달성하기 위해 협력하는 능력이라는 토마셀로(Michael Tomasello: 1950 - )의 문화지능가설을 원용한다.(277 페이지) 인간만이 지니는 큰 작업 기억에서 나오는 지향성 덕분에 마음 읽기의 전문가이자 문화 창안의 세계적 챔피언이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이다. 언어라는 성배(聖杯) 역시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한다.

 

 

지향성으로 인해 꽃피운 마음을 전달하는 효과적이고 강력한 수단이 언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물론 언어 없이 마음을 일으키거나 사유하지 못한다. 물론 언어가 마음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마음이 언어를 창조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언어는 의사소통을 하는데 그치는 일부 동물들의 기능과 달리 표상작업을 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지향성과 표상 등은 철학의 주요 개념들이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연막을 피우고 무언가를 암시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저자는 인류와 그들의 사회질서는 본래 불완전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다행이라 말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에서는 불완전성만이 줄 수 있는 융통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295 페이지) 저자는 선과 악의 딜레마는 개체 선택과 집단 선택이 한 개인에게 동시에, 하지만 대체로 서로 반대방향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이기적 개인은 이타적 개인을 이기지만 이타주의자 집단은 이기주의 집단을 이긴다는 냉엄한 법칙이 유전적 사회성 진화에 있음을 언급한다.(298 페이지)

 

저자는 종교에 대해서도 논한다. 즉 종교와 도덕의 기원은 자연 선택이 이끈 인류 진화사의 특수한 사건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모든 면에서 타당하다는 것이다.(317 페이지) 당연하지만 저자는 예술에 대해서도 진화론적 해석을 가한다. 즉 예술이란 인류가 추상적 사유 능력을 계발했을 때 가능해진 진화적 발전의 한 유형이라는 것이다.(340 페이지) 우리가 자유의지라고 직관적으로 꼬리표를 붙일 수 있는 현상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고 말하는 저자는 자유의지는 생물학적 문제인 듯 하다고 말한다.(353 페이지) 저자는 과학은 우리가 현실세계에 관해 지닌 모든 지식의 원천이라고 말한다.(360 페이지)

 

저자는 우리가 몹시 원한다면 22 세기쯤 지구는 인류의 영원한 낙원이 되거나 적어도 그 초입에 도달할 것이라는 믿음을 고백한다.(363 페이지)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 예의를 차려야 하고 이성을 가차없이 적용해야 하고 우리가 진정 무엇인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구의 정복자’는 윌슨의 필생의 역작이라고 할 만하다. 윌슨의 작업은 흔히 유전자 결정론과 생물학적 환원주의로 불린다.(물론 비판론자들에 의해) 대표적인 학자가 스티븐 제이 굴드(Stephen Jay Gould: 1941 - 2002)와 리처드 르원틴(Richard Lewontin: 1929 - )이다. 생물학자들이 주로 그의 사회생물학이나 유전자 결정론에 대해 비판한다면 인문 진영에서는 통섭에 대해 비판한다.

 

 

르원틴은 사회생물학 이론은 인간 본성의 결과라고 이야기되는 사회 제도들의 보편적인 집합을 기술한 다음 이런 개인적 특성이 우리 유전자 안에 부호화되어 있다는 주장으로 나아간다고 비판한다.(‘DNA 독트린’ 168 페이지) 생명 사랑과 낙관적 전망 자체를 비판할 수는 없지만, 그리고 전기l한 비판들을 생물학 진영에서의 자리와 위상을 놓고 벌이는 대결 때문일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아니 그렇기에 더욱 정교한 읽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두 학자를 이을 새로운 비판자가 누구일지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