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김용희 교수의 최근 행보는 돋보인다. 단편 ‘수염난 여자 이야기’로 2011년 제1회 농어촌희망문학상 대상 수상, 소설집 ‘향나무 베개를 베고 자는 잠’으로 본격 소설가의 길에 진입..‘순결과 숨결’, ‘천국에 가다’, ‘정지용 시의 미학성’ 등의 문학평론집과, 영화평론집 ‘천개의 거울’로 익히 알려졌었지만 농어촌희망문학상 대상 수상 직후 “앞으로 역량의 90%를 소설 쓰는 데 쏟겠다”고 밝힌 그의 말은 그가 소설에  더 큰 매력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평론을 쓰면서도 삶이라는 것과 생생하게 만나고 싶다는 갈급함 같은 게 내 안에 있었던 것 같다.”는 그는 2006년 불교신문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돼 등단한 시인이기도 하다.

‘페넬로페의 옷감짜기’는 허수경, 김혜순, 강신애, 조말선, 이경림, 김선우,  김명리, 나희덕, 이선영, 이진명, 조용미, 천양희, 이수명 등 여성 시인들의 시세계를 분석한 시론집이다. 개인적으로 참 익숙하고 관심이 많은 시인들과 어려워 경원하는 시인들이 적당히 섞여 있는 시론집이어서 균형잡힌 긴장과 기대, 설렘을 갖게 하는 책이다.(2004년 출간) 이 책은 저자가 강신애, 이경림 등 일부 여성 시인을 ‘창녀적 시인’이라고 명명해 당사자들의 반론에 휩싸인 책이기도 하다. 이에 평론가 자신의 재반론이 이어졌었는데(경향신문 2004년 3월 4일) 저자는 이 밖에도 여성 시인들을 아마존적 여성(이선영)’, ‘사디즘적 여성(김혜순, 조말선)’, ‘모성적 여성(허수경, 김선우)’, ‘구도자적 여성(나희덕, 이진명, 천양희)’, ‘몽상적 여성(김명리, 조용미, 이수명)’ 등 6가지로 분류했다.

이 책은 개인적으로 오래 전부터 읽으려고 만지작거렸던 작품인데 ‘수염난 여자 이야기’와 ‘향나무 베개를 베고 자는 잠’ 등 인상적인 최근 소설을 계기로 읽게 된 책이다. 여성이 글을 쓰는 것을 복수화되고 다층적인 자아가 글을 쓰는 것(18 페이지)으로 명명하는 저자는 허수경 시인의 시에서 보이는 리듬은 고단한 삶에 대한 여성적 세례이며 아니마적 정화(淨化)라 말한다.(27 페이지) 저자는 허수경 시인은 한국 여성 시 세계에서 주모(酒母)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규정을 가능하게 하는 시집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이후 그의 그런 면모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페넬로페의 옷감짜기’가 2004년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만일 이 책이 최근 나왔어도 허수경 시인에게 그런 이름을 붙였을까? 그러나 이런 말은 현명하지 못하다. 분명 허수경 시인이 주모적 면모로 기억되던 시절이 있었다, 정도의 과거형 규정이 발했을 것이라 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김혜순 시인에 대해 “세계를 순수한 감각의 몸 현상으로 내재화한다.”(35 페이지)고 규정한다. 김혜순 시인은 저자에 의해 마녀의 언어(를 가진 시인으)로 규정된다.(37 페이지) 강신애 시인에 대해 저자는 은밀한 정숙과 관능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저자는 강신애 시인의 ‘오래된 서랍‘이 들어 있는 시집 ’서랍이 있는 두 겹의 방‘을 분석 대상으로 삼는다. “처음 강신애의 시집을 대하였을 때 나는 강신애가 수녀 같다고 생각했다.”(42 페이지)는 저자는 하지만 “강신애의 시에서 들썩거리는 관능을 본다.”고도 말한다.(43 페이지) 저자는 “’오래된 서랍’에서 시인은 오래 닫혀 있는 서랍 같다. 몸 속에 원초적 어둠을 켜둔 사람.‘이라고 말한다.(50 페이지) 앞으로 이어지겠지만 허수경, 김혜순 시인에 이어 몸이라는 키워드로 다시 한번 시인을 해명하는 것이다.

조말선 시인에 대해 저자는 더러운 피라는 말을 한다. 다시 육체 이야기이다.(이것이 나쁘지는 않다. 아니 흥미롭다.) 저자에 의하면 조말선 시인의 시에는 ’비닐 하우스”, “화분”, “모종”, “꽃병” 등의 시어가 자주 등장한다. “여성 신체가 식물에 비유“되는 것이다.(59 페이지) 조말선 시인이 자주 시적 화자를 비유하는 토마토의 은유는, 저자에 의하면 그 붉은 색이 여성의 신체적 색깔인 붉은 핏방울, 붉은 방으로서의 여성의 자궁을 의미한다.(63 페이지) 저자는 ”은밀한 여성 신체적 경험들은 새로운 정치학적 실천을 담보한다.“고 말한다.(68 페이지) 세상에 욕설을 하고 세상을 조롱하는 조말선 시인의 나이가 이제 오십에 이르렀다.(그러니 이 책에서 다루어진 조말선 시인은 불혹의 나이였었다.) 사랑 즉 결핍됨으로써 욕망하고 욕망함으로써 결핍되는 순환적 뫼비우스의 띠 속에 놓여 있다(72 페이지)는 말을 하며 이경림 시인에 대해 설명하는 저자는 여성적 글쓰기야말로 정신착란과 같은 사랑의 언어 코드와 일치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75 페이지)

저자에 의하면 이경림 시인의 시 속에 지속되는 울음 소리는 여성의 몸 속에 일종의 비어 있는 어떤 곳이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78 페이지) 다시 몸 이야기이다.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시인으로 규정된 김선우 시인은 저자로 하여금 문화적 질서라는 오이디푸스의 구조 즉 부자간의 혈통 안에서 구성된, 모자관계는 고려하지 않는 체계에 대해 고려하게 했던 듯 하다. 이는 ‘내 혀가 입 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에 실린 ‘둥근 기억들의 저녁’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오이디푸스를 이야기할 때 그 가족 내의 위계적 구조가 사회적 위계 질서와 밀접한 관계를 형성한다는 사실만을 고려했다는 반성이 드는 대목이다. 배제되는 여성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은 채. 저자는 김선우 시인의 시에서 여성 신체의 제물화는 저항된다고 말한다.(93 페이지) 김선우 시인의 시를 읽으면 세계의 순환을 가능하게 하는 여성 몸의 실상에 대해 충분히 가늠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김명리 시인에게 부여된 이름은 영원과 순간을 잇는 부싯돌이다. 이 장(章)에서 저자는 생이란 불꽃과 같은 것이며 불은 스스로를 태움으로써 살아 있고 또 죽어간다고 말한다. 이는 영락없이 에로스와 타나토스간의 비유를 연상하게 한다. 에로스와 타나토스간의 비유는 김혜순 시인편에서도 언급되었다.(34 페이지) 김명리 시인은 ”보랏빛 수수꽃다리 꽃 진 새로/ 홀연 두 사라진 몸이/ 오동꽃 연분홍 향으로 천지에 가득하겠네.”란 시를 선보인다.(‘나무 속의 방’) 향이란 말에서 강신애 시인의 ‘부드러운 흔적’을 연상할 법 하다. 저자는 아닌 게 아니라 ‘나무 속의 방’을 사랑의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시로도 보인다고 말한다.(108 페이지) 김명리 시인에게 ‘적멸(寂滅)의 즐거움‘이란 시집이 있음을 기억하자. 그런 그의 적멸도 에로스적인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저자의 도도한 몸론(論)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밤 내린 장항리,/ 폐사지 자욱한 달빛 진신사리(眞身舍利)여!(’적멸의 즐거움‘ 마지막 연)을 보라. 달빛의 진신사리란 흔적처럼 떠도는 어떤 것이란 생각을 가능하게 한다.

조율과 포복의 시인으로 명명된 나희덕 시인은 저자도 말했듯 단정한 시를 쓰는 시인이다. 강신애 시인에 대해 처음 수녀 같다(42 페이지)고 말한 저자는 나희덕 시인에 대해서도 수녀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118 페이지) 강신애 시인에 대해 그러나 저자는 기생이라 불러보고 싶다고 말했다.(44 페이지) 수녀란 무엇을 의미할까? 그것은 바로 내면성의 시를 쓰는 존재일 것이다.(123 페이지) 이선영 시인에 대해 내려진 헐렁헐렁한, 짤랑짤랑거리는이란 표현은 재미 있다. 이 표현은 그의 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진명 시인에 대해 내려진 가까스로 발견한 평화라는 말에서 가까스로란 말 역시 흥미로운 관심을 끈다. 어둠 속의 타전은 조용미 시인이 가진 이름이다. 나는 우선 조용미 시인이 몸이 많이 아프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된다. 조용미 시인에게서 어둠의 시어가 자주 드러나는 것은 아픈 몸 때문이 아닐지? 저자는 어둠이 보내오는 기이하게 달콤하면서 공포스러운 불안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 라고 말한다.(167 페이지)

천양희 시인에게 저자는 마음의 교신이란 이름을 건넨다. 평론도 쓰는 이수명 시인에게 내려진 이름은 예감과 마술이다. 저자는 시인을 의식 너머의 무의식에 의해 소명받은 자(186 페이지)로 규정한다. 저자는 여성 육체의 교유한 고백들이 여성 시의 한 전형으로 매너리즘화되고 있다고 말한다.(194 페이지) 저자는 여성의 선험적 모성성 소유 담론에 대해 경계한다.(이는 ’만들어진 모성‘이란 책의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여성 시인들에 대핸 다양한 규정(아마존적, 모성적, 창녀적, 구도자적, 몽상적, 사디즘적)은 여성에 대한 단편적 이해를 거스르려는 시도이다.

그런데 여성 시인들은 다르게도 불릴 수 있다. 물론 시인들의 다양한 면모에서 한 측면을 읽어낸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리라. 저자도 말했듯 여성 시는 다양한 다층적 자아를 드러내며 전개(197 페이지)되기에 새로운 읽기의 필요성이 대두됨은 물론이다. 저자는 창녀라는 말을 열정과 매력을 지닌 존재로 정의했지만 그런 긍정적 의미라면 굳이 그렇게 이름을 한정지을 필요가 있었을까, 의문이다. 이름을 붙이지 않을 수 없음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리고 저자의 책이 흥미로운 시도이고 유의미한 작업임을 알지만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이란 노자의 언명도 유의해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역량의 90%를 소설 쓰는 데 쏟겠다.”고 하지만 평론도 자주 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