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의 폭발, 은하의 충돌 등 우주의 일대 파노라마들은 완전한 침묵 속에서 진행된다. 이는 파스칼이 팡세에서 한 “저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두렵게 한다.” 는 말을 연상하게 한다. 아니면 자크 모노가 ‘우연과 필연’에서 한 “인간은 마침내 우주의 광대한 무관심 속에 홀로 내버려져 있”게 되었다는 말을 상기하게 하거나. 별의 폭발, 은하의 충돌 등이 완전한 침묵 상태로 진행되는 것은 빛이 전달되는 데에는 매질이 필요하지 않지만 소리가 전달되는 데에는 공기라는 매질이 필요하기 때문인 것과 무관하다. 물질이 밌기만 하면 압력의 변화에 따라 파동 즉 음파가 만들어져 퍼져 나가고 태양계는 물론 우주 공간 어디에나 플라즈마가 있어 외계에는 우리가 들을 수 없는 수많은 음파들이 떠돌고 있다. 다만 우리의 열등한(?) 귀가 천상의 음악을 듣기에 역부족일 뿐이다.(‘월터 르윈 지음 ’나의 행복한 물리학 특강‘ 157, 158 페이지)

배명진, 김명숙 두 교수의 ’소리로 읽는 세상‘을 읽으며 이렇게 길게 운(韻)을 떼는 것은 소리가 그 만큼 신비하고 기묘하기 때문이다. ’소리로 읽는 세상‘ 역시 과학적인 용어나 정의만으로 소리를 모두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이 세상의 모든 소리는 과학 이상의 것이며 우리 삶 자체라고 말한다. 음악학자 서우석 교수는 모든 소리는 근본적으로 대상이 소유하지 않는 속성들이라 말한다. 의식의 밖에는 진동 외에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뜻함과 차가움 등의 느낌은 접촉된 대상이 가지고 있는 열(熱)에 원인이 있지만 소리는 그렇지 않은 것이다.(’음악과 현상‘ 202 페이지) 이는 소리는 과학 이상의 것이며 우리의 삶 자체라는 정의에 부합하는 말이다.

배명진 교수는 소리공학이란 말을 처음 만든 분이다.(22 페이지) 저자는 소리공학을 이렇게 정의한다. 소리를 분석하고 궁극적으로 소리가 우리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필요한 과학기술과 접목시키는 학문이라고.(25 페이지) 소리공학은 전자공학이나 기계공학의 한 분야로 분류되기도 하며 음향공학과 진동학 등으로 나뉠 수 있다.(27 페이지) 저자는 소리공학이 과학의 한계를 넘어서려면 융합과 감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27 페이지) 본문에는 공명(共鳴: resonance) 현상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공명은 정확한 주파수로 작은 노력을 반복해 커다란 효과를 얻는 것을 말한다.(존 파웰 지음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 92 페이지) 모든 물체는 고유 진동수가 있어 물체에 어떤 에너지를 가하면 이 진동수로 진동하기 시작하고 이 진동수에 맞춰 에너지를 계속 공급하면 작은 에너지로도 큰 효과를 얻을 수 있다.(‘월터 르윈 지음 ’나의 행복한 물리학 특강‘ 160 페이지)

저자는 타코마 브리지 붕괴 사건을 이야기한다. 공명에 의한 붕괴 현상을 말하는 것인데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려면 그러나 몇 개의 가설이 성립되어야 한다. 소리의 떨림 주파수가 부피가 큰 다리의 흔들림으로 나타나려면 반복 주기가 아주 낮은 톤(tone)의 저주파여야 하고 소리가 넓게 퍼져야 하고 현수교(懸垂橋)의 다리 상판이 약한 재질로 만들어져야 하며 다리를 매달고 있는 줄이 단심으로 되어 있어 쉽게 비틀릴 정도여야 한다.(49 페이지) 본문에는 이 밖에 양쪽 귀로 느끼는 청감(聽感)의 미세한 차이를 이용해 방향을 파악하는 시각장애인 소년 이야기도 나온다. 물 속 초음파의 특성을 이용해 바다에 그물 없는 어장(漁場)을 만들어 눈에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쳐 물고기를 가두는 이야기도 흥미롭다.

비오는 소리, 폭포수 소리, 갈대밭에서 들리는 소리, 나뭇 가지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 등 백색 소음 즉 집중력을 높이는 자연의 소리(일상적인 소리여서 공부할 때 듣더라도 별로 의식하지 않는 소리)를 이용해 공부에 도움을 기하는 것도 그렇다. 득음(得音)의 명창(名唱), 가수 이미자씨, 아이유 등의 소리를 분석한 장(章)에서 나는 그들의 뛰어난 천부(天賦)의 능력을 확인했다. 설득력 있는 목소리를 가진 연기자로 지목된 김남길, 가수 김창완 등이 과학적 분석의 대상이 된 것도 인상적이다. 한 성직자(황창연 신부)가 자신은 좋은 목소리(톤이 높고 쉽게 쉬지 않고 울림이 강하고..)를 타고 났기에 높은 호응을 얻는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 주위에서 내용이 좋은데 목소리가 너무 평이하고 때로 낮게 울려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안타깝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듣기 좋은 소리, 거슬리는 소리가 분명 있고 그 대비는 엄연하지만 소리 만큼 중요한 것이 내용이 아닐까, 란 생각을 하게 된다. 음악의 경우 헤비메탈 장르를 즐기는 사람이 절대적으로 적은 것은 아주 높은 괴성들이 들쭉날쭉 전개되어 짜증을 유발하는 것과 관계 있다.(정재승 지음 ’과학콘서트‘ 130 페이지) 의도적으로 헤비메탈과 같은 듣기 싫은 장르를 골라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음악 분야와, 음을 즐기는 것이 아닌 내용을 듣고 이해해야 하는 일상의 영역은 많은 차이가 있는 듯 하다. 서우석 교수는 일상의 소리와 음악의 소리를, 그 소유(所有) 여하에 따라 분류한다. 그는 일상의 소리는 그 뜻을 알기 위해 듣기에 소리를 소유하지 않지만 음악의 경우 소리를 그 자체로 갖는 것이라고 말한다.(’물결 높던 날들의 연가‘ 27 페이지)

한편 소리의 세계에서 가청 주파수가 다른 것은 왜일까, 궁금하다. 가령 사람이 20에서 20,000 헤르츠의 음역대를 듣는다면 동물들은 사람이 듣지 못하는 주파수 이하의 음역대(저주파)와 듣지 못하는 주파수 이상의 음역대(고주파)를 듣기도 하는 것을 보라. 저자를 중심으로 한 소리공학연구소의 활약은 인상적이다. 북한의 로켓 발사를 판명해낸 것이 그 대표적 경우이다. 정확히 말해 북한이 발사한 비행체가 위성인지 미사일인지를 가려낸 것이다. 소리의 속성을 이용해. 저자는 말한다. 로켓이 위성인지 미사일인지 판명하려면 발사 당시의 화력을 비교해야 한다고.(134 페이지) 위성의 1차 폭발력은 지축이 흔들릴 만큼 강력하다. 나로호와 비슷한 규모의 인공위성을 궤도에 안착시키려면 적어도 7초 이상의 지속시간, 170톤 정도의 화력이 되어야 하는데 노동 1호, 대포동 2호, 광명성 3호 모두 지속 시간과 화력면에서 기준에 못미쳤다.(137 페이지)

육영수 여사가 문세광을 저격(저지)하기 뒤에서 경호원이 쏜 탄환에 맞아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사실(143 페이지)은 충격적이다. 과학적 분석에 의한 명확하고 신뢰할 만한 결과인데 이런 활약상은 명품 바이올린이 음 높이의 균일성, 안정성, 자연성 등 면에서 일반 바이올린에 비해 탁월하다는 점을 분석한 것에서도 드러난다.(153 페이지) 저자는 한국어와 영어가 차이를 보이는 것은 사용 주파수가 다르기 때문이 아니라 소리 체계 특히 소리를 의미와 연결할 때 필수적으로 작용하는 요소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176 페이지) 100 헤르츠 이하의 소리를 저주파라 한다. 저주파의 문제는 귀로는 잘 들리지 않지만 신체의 떨림이나 촉감으로 소리를 더 강하게 느끼게 되므로 오히려 신체적 충격이 더 큰 것이다.(210 페이지) 버스 엔진 소리가 대표적인 저주파 소음이다. 일반적으로 운전석에서 뒤쪽으로 갈수록 저주파 소음에 더 많이 노출되는 것이다. 저주파 소음은 공명에 의한 것이다 층간 소음, 발파 공사장의 소리 등도 저주파 소음을 일으킨다.

반면 특정 음 높이를 유지하는 컬러 소음과 넓은 음폭의 백색 소음 등 좋은 소음도 있다. 에밀리 종은 어떤가. 이 종의 소리는 가까이에서 들었을 때 64 헤르츠의 저주파 음이 나와 신체를 흔드는데 3초 주기로 소리가 멀어졌다가 가까워지는 맥놀이 효과로 더욱 전율을 느끼게 한다고 한다.(232 페이지) 사람의 청각 연령은 고주파를 어디까지 들을 수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한다.(252 페이지) 가장 신비한 것은 소리로 환각을 일으키는 사이버 마약이다. 물론 정확하게는 우려스러운 것이다, 소리만으로 환각을 일으키는 사이버 마약은 양쪽 귀로 들리는 소리의 차이를 이용해 뇌파를 부정적인 방향으로 자극하는 원리를 이용하는 것이다.(258 페이지) 사이버 마약은 정신 상태가 양호하거나 건강한 사람에게는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자기 통제력이나 방어력이 약한 사람들, 심리적으로 허약한 사람들에게는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하니 신비하다.(259 페이지)

스위트 스폿에 공이 맞았을 때 감미로움의 차원을 넘어 신체의 건강과도 직결되는 좋은 소리를 낸다는 사실(283 페이지)은 듣기 좋은 소리가 건강에도 좋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스위트 스폿은 야구 배트의 가장 아래에서 위로 10에서 15 센티미터 위치에 있는데 이곳에 공이 맞으면 소리도 좋고 타구도 가장 멀리 나간다. 반면 그 외의 곳에 공이 맞으면 소리도 좋지 않고 타자의 손목에 이상을 일으킨다. MP3 음악이 나쁜 음악이란 소리를 들었다.(남우선의 ’나쁜 음악 보고서‘ 참조) 아날로그 음악과 다른 나쁜 면이 있는 것이다. 동일한 음악을 LP 음악으로 들려주었을 때와 CD 음악으로 들려주었을 때 같은 무게의 일을 해도 전자를 들은 사람들이 덜 힘들어 한다고 한다.(291 페이지) 저자는 불로톤(不老tone) 즉 평생 건강을 가져다 줄 소리를 찾아왔다고 말한다.(313 페이지) 소리공학 연구소에 여러 진기한 효과를 체험했다는 사연이 쌓인다고 한다. 솔깃하다.

이 부분에서 만트라를 생각하게 된다. 영적 에너지의 핵심을 이루는 성(聖)스런 음절의 조합인 만트라는 영적 파동을 끌어당기는 자석 혹은 그것을 집중시키는 렌즈와 같은 역할을 한다고 한다.(스와미 시바난다 라다 지음 ’신성한 소리의 힘‘ 27 페이지) 철학자(현상학자) 메를로 퐁티는 색(色: color)을 사는(living) 법을 다시 배워야 한다는 말을 한다. 우리의 존재 전체를 감싸면서 그 나름의 새로운 세계로 인도(조광제 지음 ’몸의 세계, 세계의 몸‘ 286 페이지)하는 소리 역시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니 소리를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말을 할 수 있겠다. ’소리로 읽는 세상‘에서 ’소리를 사는 법‘이란 말을 읽는 것은 그래서 가능하다 하겠다. 더 축적된 자료, 정교한 분석틀, 무엇보다 불로톤(不老tone)에 대한 지식이 유효하게 제시될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책이다. ’소리로 읽는 세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