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영 교수는 정신분석학으로 석, 박사가 된 분이다. 그는 분석심리학은 정신분석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이고 정신분석과는 또 다른 치유 영역이라 말한다.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은 영화를 정신분석학으로 밖에는 보지 못한다는 그의 영화 분석서이다. 개인의 차원에서 좋은 영화가 논의될 때 비로소 한 편의 영화의 효과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하는 저자에 의하면 정신분석은 전체가 아닌 개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좋은 도구이다. 저자는 자크 라캉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개인에 초점을 두는 정신분석학에 대해 이야기 한 끝에서 라캉이 우리는 예외 없이 신경증 환자들이라는 말을 했다는 말을 들으니 저자가 강조한 개인의 의미가 훨씬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라캉의 말은 인간은 누구나 히스테리 또는 강박증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히스테리적 성향을 띠는 사람은 자신이 바라는 것보다 다른 사람이 바라는 것에 더 관심을 둔다는 사실이다. 문제는 욕망하는 것을 손에 넣는 순간 흥미나 관심이 식는 인간 일반의 성향이다. 그렇기에 히스테리적 성향의 사람은 상대방을 만족시키지 않는 전략을 사용한다. 이 부분에서 롤랑 바르트를 생각해본다. “글쓰는 사람으로서 나는 미칠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감히 정신 나간 상태를 자처할 수도 없다. 나는 그저 신경증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 바르트. 그에 의하면 신경증은 불가능한 것에 관한 임시변통물이다. 김영민 교수는 “그러니 바르트에게 글쓰기란 불가능한 것을 예감하면서도 그 불가능한 것 앞에 임시변통물을 끝없이 내보이고 스스로 그 임시변통물을 생산하는 것에 괴로워하는 짓인 셈”이리고 말한다.(1996년 계간 철학과 현실 봄호 글쓰기(와) 철학 참조)

그런데 바르트가 말한 사항은 곧 우리들 일반의 것이 아닌지? 저자에 의하면 강박적인 성향의 사람은 자신이 이미 만족 상태에 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 사람은 지키는 것이 불가능한 규칙을 정하며 이 규칙만 지키면 내 세상은 완벽해진다고 말한다. 또는 그렇게 믿는다. 결론을 말하자면 히스테리적 성향의 인물도 강박적 성향의 인물도 완전한 충족감이란 있을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히스테리적 성향의 사람이 자신이 상대에게 만족되지 않는 전략을 짠다면 강박적 성향의 사람은 불가능한 규칙을 정한다. 물론 욕망의 대상으로서 상대를 만족시키지 않으려는 지연 전략만으로는 항상 누군가의 시선을 받을 수 있겠지만 진정한 사랑을 얻거나 하지 못한다. 저자는 김기덕 감독의 시간, 라스 폰 트리에의 브레이킹 더 웨이브를 각각 히스테리의 전략이 불가능하고, 성공가능하다는 사실을 말하는 영화로 소개한다.

저자에 의하면 강박증 환자를 히스테리화하는 것이 라캉 정신분석학의 치유의 첫 단계이다. 강박증은 질문 자체를 하지 않기에 분석가를 찾지 않을 정도로 증세가 심한(강고한) 것이다. 저자에 의하면 로만 폴란스키의 피아니스트는 강박증의 히스테리화를 보여주는 영화이다. 강박증의 히스테리화는 자신이 무엇인가를 결여하고 있으며 다른 사람 역시 결여된 부분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이다.(강박증, 하면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가 생각난다. 피아노 연주를 하며 허밍(이는 굴드가 어머니의 가르침을 따른 결과이다.)을 하고 몸동작을 하고 녹음 스튜디오의 온도가 완벽하게 맞추어져야 한다고 고집하고 아버지가 만들어준 낡은 의자에만 앉아서 연주를 하고 따뜻한 곳에서도 두꺼운 옷을 입을 정도로 추위를 싫어했다. 이는 굴드의 섬유조직염에서 기인한 행동일 것이다. 사람들과의 접촉을 혐오했고.. 우울증과 무대공포증 등을 앓았던 그의 힘겨웠던 삶을 애도한다.)

강박증 환자가 악수를 회피하고 피가 날 때까지 손을 씻는 것은 병균에 대한 공포에서 기인하는 행동으로 보이지만 실은 자신이 만든 세상을 무너뜨릴 수 있는 틈새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는 행동이라고 한다.(34 페이지) 라캉의 정신분석학이론에서 자신의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세상은 상징계이다. 완벽한 사랑에 대한 꿈이 상상계적 사랑이라면 사랑은 완전할 수 없음을 받아들이는 사랑은 상징계적 사랑이다. 상상계적 영화가 가리고 덮는 현실(의 폭력성과 누추함)을 상징계적 영화는 그대로 드러낸다. 저자는 쉬운 답을 얻기 위해 복잡한 진실의 모습에 인위적으로 가위질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43 페이지) 상상계의 허상은 완벽이라는 미끼로 우리를 유혹하지만 그 안에는 어떤 새로움도 없다는 저자의 말은 낙원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낙원의 생명체가 변화한다면 그곳은 이미 낙원이 아니고 변화하지 않는다면 그곳은 죽은 세계이다. 새로움이란 변화를 전제하고 변화의 끝은 죽음이다. 상징계적 영화는 그 자체 완전한 것이 아니라 실재계적 요소가 필요하다. 저자에 의하면 가능하지 않은 일들, 모두 입을 모아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일들이 성취되는 것은 상징계의 중심에 실재계라는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실재계는 우리 안의 미지의 세계이다. 저자에 의하면 왠지 모르지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실재계의 가능성을 경험하는 순간이다. 실재계란 원래 라캉이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더욱 심층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정신분석의 주체는 자신의 욕망을 이해하고 그에 따라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95 페이지)

저자는 간간이 자아가 철통 같은 수비로 일구어낸 허상을 무너뜨릴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100 페이지) 저자는 정신분석적 영화비평이란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 기의(시니피에), 기표(시니피앙) 등의 용어들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용어들이 설명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영화를 분석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한다.(105 페이지) 풀어 써야 한다는 뜻이다. 영화를 분석할 때 중요한 것은 절실한 이야기를 치열하게 하는 것으로 그런 분석 과정 자체가 정신분석이라고 저자는 말한다.(109 페이지) 저자는 자신이 정신분석으로 밖에 영화를 보지 못한다고 말하지만 분석심리학에도 능한(적어도 그런 분야에서 배우고 분석에 응용하려고 열심인) 모습을 보인다.

저자는 말한다. 정신분석에 의하면 어머니의 욕망으로부터 해방된 사람만이 자신의 진정한 욕망을 말로 표현할 수 있다고.(137 페이지) 앞서의 이야기를 응용하면 히스테리적 성향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 된다. 피아니스트를 분석하며 저자는 에리카가 클레메를 성적으로 흥분하게 한 뒤 “더 이상 당신을 만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나를 영원히 사랑해 주세요”라는 뜻이라고 말한다.(140 페이지) 불완전한 사랑 때문에 두려워 하는 마음이 담긴 진술이다. 저자는 다른 사람을 모방하며 비슷하게 맞추는 것은 놀지 못하는 것이라 설명한다. 이를 보며 나는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A river runs through it)의 대사를 떠올렸다. ‘바로 그때 나는 놀라운 것을 목격했다. 생애의 처음 폴은 아버지의 가르침에서 자유롭게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리듬 등을 타면서 낚시줄을 던지고 있었다.“

노는 것이란 히스테리적 성향을 벗어버리는 것이고 자신만의 리듬을 타는 것이고 자신만의 스타일(특히 글쓰기에서)을 갖는 것이고 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분석심리학적으로 말해 자신 안의 그림자(인정하고 싶지 않은 부분)을 인정하고 그것과 화해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거칠고 불편하고 기괴할 수도 있는 영화를 피하지 않는 것을 통해 오를 수 있는 지점이다. 우리 영화계에서 그런 상징계의 실재계와의 접면을 보여주는 영화들이 꾸준히 유통되는 것은 의미있다. 하지만 문제는 오히려 현실에서 일어난다. 보고 싶은 것만을 보고 진실을 외면하는 일은 현실에서 자주 일어난다. 저자는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정신분석적 영화 비평을 오이디푸스나 성이론, 외상적 기억만을 중심으로 영화를 분석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고 말한다.(163 페이지) 또한 정신분석을 인간의 상상력이나 창조성이 결여되어 있는 것으로 간주해 왔으며 개인의 이야기에만 초점을 맞추는, 사회이론과 동떨어진 영역이라 비판해 왔다고 말한다.(164 페이지)

정신분석에 대한 오해를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저자는 프로이트가 1900년 이후 잠자는 사람보다 깨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신분석 이론을 체계화했다고 말한다.(164 페이지) 들뢰즈는 어머니, 아버지, 아이라는 정신분석의 삼각형을 비판해 오이디푸스 신화의 천편일률적인 적용을 정신분석의 고질적 문제로 지적했다.(177 페이지) 이는 오이디푸스의 근친상간적 욕망과 관련이 있다. 가령 ’햄릿‘에서 덴마크 왕자인 햄릿이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를 취한 숙부를 죽이지 않은 이유를 그 모든 것이 햄릿의 무의식적 소원이기(소원과 같기) 때문이라 답하는 프로이트를 보라. 문제는 그것이 햄릿 자신의(자신도 예외일 수 없는) 욕망이라면 모든 것이 용서될 수 있는가, 이다. 욕망을 가지고 있는 것과 그것을 현실화하는 것은 다르다. 프로이트는 마음 속으로 간음한 자는 이미 죄지은 것이라는 예수의 후예인가. 물론 프로이트가 의도적으로 예수의 후예의 길을 걸은 것은 아니지만 그런 그가 종교(유대교와 기독교 등 일신교)의 기원을 마을의 여자를 독차지한 아버지를 살해한 아들들의 죄의식이 승화된 것에서 찾은 것(’토템과 터부‘에서)은 아이러니하다.

저자는 오이디푸스의 부친 살해와 어머니에 대한 욕망을 벗어던진 후 시간 여행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181 페이지) 원전(原典)이라는 감옥을 해체하는 동시에 그 이중 의미와 모호함을 품고 고대의 신화로 되돌아 가야 한다는 것이다. 프로이트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한 라캉의 예는 어떤가. 저자는 한 권 전체를 모두 문자 그대로 믿어서는 안되고 억지로 믿지 말고 읽다가 자연스럽게 고개가 끄덕여지고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듯하면 그게 정답이라고 말한다.(197 페이지) 저자는 말한다. 라캉을 진정으로 공부하려면 라캉의 중심을 뚫고 그 밖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218 페이지) 저자는 사회이론을 제외한 채 정신분석이론만으로 영화를 분석하는 것은 공허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228 페이지) 정신분석에서 꿈보다 중요한 것은 선택이라는 저자의 말(237 페이지)은 후회 하지 않을 선택과 성숙한 책임감을 강조하는 말로 들린다. ’영화로 읽는 정신분석‘ 읽기는 무의식의 심연을 이해하고 수용하기는 곧 신경증(히스테리)에서 벗어나는 것임을 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