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평론가 이명원의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에서 마음이 소금밭이란 표현은 마음에 소금이 뿌려지다 못해 아예 소금밭이 되었다는 뜻이다. 쓰리고 아린 소금밭이란 문학적 표현이 내 마음에 파문 같은 것을 남긴다. 이 책을 통해 우선 알게 된 것은 한 비평가가 다른 비평가나 소설가 또는 시인의 글에 대해 비판을 하거나 표절 사실을 지적해 불편감을 만들더라도 해당 비평가나 소설가 또는 시인의 문체에 대해서는 긍정하고 창조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김윤식이 가라타니 고진의 상당 분량의 글을 표절했다는 사실을 지적한 이명원은 자신이 선호하는 문체는 김현이 아닌 김윤식의 것이라 밝힌다. 이명원의 이런 읽기 방식이 바람직한 것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명원은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그가 쓴 글들을 읽다 보니 삶과 작품에서의, 내용과 표현간의 불일치를 보인 작가들이 눈에 띈다. ‘귀천(歸天)’이란 시를 쓴 천상병 시인이 동백림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되어 모진 고문을 당한 것이 대표적이다.

불일치라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시적 비전으로 충만한 사회과학서라는 평을 받은 엘리아스 카네티의 ‘군중과 권력’의 사례는 문체의 중요성을 드러내는 예라 해도 좋을 듯 하다. 올해 이상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지상의 양식’을 쓴 이승우가 늘 “절필할 계획이 없다”는 말을 했다는 사실이 새롭다. 이승우는 “소설이 나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소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밝혔다.(중앙일보 2010년 9월 20일) 이명원은 이승우의 소설을 두고 관념 소설이라 해서 거기에 극적 감동이 빠져야 한다는 법은 없다고 말한다.

무기력한 짜라투스트라란 글을 통해 나는 박상륭의 소설이 상투화된 고정관념으로서의 관념과 형이상학을, 소설의 뿌리를 뒤흔들고 있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려운 소설이 그 자체로 미덕이 아니듯 쉬운 소설 역시 그 자체로 비판의 대상이 아니지만 그간 너무 쉽고 편하게(상투적으로) 소설과 세상을 대해온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되는 것은 박상륭의 난해한 소설에 대한 이명원의 논의에 힘입어서이다.

주마간산 책 읽기의 묘미란 글에서 이명원은 딱딱할 뿐만 아니라 실용적으로는 전혀 효과적인 기여를 할 수 없는 책을, 과연 어떤 사람들이 읽는단 말인가라고 말한다. 이것이 이명원에 한(限)한 이야기는 아닐 것인데 비평가라면 누구든 고민해야 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비평과 마찬가지로 실용적으로 전혀 효과를 내지 못하는 문학 장르 예컨대 시, 소설 등이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란 생각에 이르면 사태는 그렇게 간단해 보이지 않는다. 소설이나 시의 독자들에게 자연스럽게 어필하는 비평은 왜 없을까?란 의문이 든다.

윤효의 작품에 대한 논의에서 이명원은 문체에 대한 열망은 간직하되 장식적인 수사(修辭)의 유혹을 최대한 차단할 필요가 있다는 말을 한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사람은 장식적인 수사에 대해 신념에 가까운 혐오를 자주 피력했다는 허균이다. 엄정한 문장, 밀도 높은 서사, 생생한 인물 묘사 등으로 승부하면 그만일 것이란 말을 하고 싶다.

유언으로서의 글쓰기에서 나를 감회에 젖게 한 것은 작품은 먼지처럼 축적되는 것이 아니라 매순간 새롭게 탄생하는 것이라는 문장이다. 작가에게 존재하는 창작의 고통 이상의 무엇을 표현한 이명원의 문장은 매혹과 비극의 어우러짐을 잘 드러낸 것이다. 정체성 부재의 한국 미술이란 글에서는 한국 미술계가 작가의식 및 역사의식의 부재, 이론 무시 경향 등에 빠져 있다는 문장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미술계의 이론 무시란 진단을 보며 나는 이것이 문학계와 특히 비평이 읽히지 않는 현상과 어느 정도의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명원은 그런 점이 문학계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이명원의 글들이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란 이름으로 출간된 것은 2004년으로 이 시기는 부시의 미국이 이라크에 대해 부도덕하고 정당성 없는 전쟁을 일으킨 시기와 겹친다. “우리가 눈 앞에서 보고 있는 이 더러운 전쟁”이란 표현이 그런 점을 환기시킨다. 그런데 이명원은 전쟁을 비인간적인 것으로 보기보다 파괴적 인간성이 현실의 표면으로 무자비하게 분출되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사건으로 보는 것이 사태의 진실에 더욱 가까워 보인다는 말을 한다.

이 말에 나는 할머니에 대해 성폭행을 시도한 사람, 악의적인 댓글을 남기는 사람들, 어머니의 시신을 두고 조의금만 챙겨 달아난 삼남매, 아내와 두 아들을 살해한 후 자살한 40대 남성, 어머니와 여동생을 살해한 20대 남성 등에 대해 다양하고 폭넓게 인면수심이라는 표현을 쓰는 세속을 불편해 하는 내 심정의 짝을 만난 반가움을 느꼈다. 사람이 저지른 죄를 짐승의( 마음에서 비롯된) 짓으로 표현하는 것은 무책임한 일일 뿐 아니라 무엇을 모르기에 하는 말이다.

굳이 동물권을 들먹일 필요도 없다. 동물들이 인간처럼 조직적이고 계획적이고 무차별적이고 난폭하고 도착적(倒錯的)인 행동을 하는지 묻고 싶다. 철학자 이정우가 말했듯 인간에게 힘은 논리적으로 존재하는 행동가능성이라는 특이성들을 현실화시키는 조건을 의미한다. 날 수 없는 한계를 비행기를 발명함으로써 극복한 것에서 보듯 (종으로서의) 인간은 없던 특이성까지 만들어내는 존재이다. 미생물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인간이든 가능한 특이성들의 총체로 규정된다는 점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 총체는 진폭의 차이로 나타난다. 동물의 진폭(동물이 할 수 있는 가능성들의 총체)은 인간의 진폭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인간은 천사가 될 수도 있지만 악마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인간이 신의 경지에 이르는 일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지만 괴물의 차원으로 떨어지는 것은 매우 손쉬운 일처럼 보인다(125 페이지)는 이명원의 말처럼 인간은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자멸적인 방향으로 더 쉽게 기운다. 상황에 개입하는 비평이란 글에서 내가 읽은 것은 비평은 상황에 개입하는 일이라는 내용이다. 이명원의 말인 즉 인간에 대한 사랑이 없으면 글쓰기는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모순 덩어리이기에 상황에 개입하는 비평은 때때로 모순과 부딪힐 수 밖에 없다는, 그것을 회피한다면 글을 쓸 이유가 없다는 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서재의 공화국에 대한 몽상이란 글에서 내가 느낀 것은 “20대의 어느 시절에 맨 몸뚱이로 집을 나왔는데 많은 세월이 흐르다 보니 별 수 없이 책들이 늘어났다.”는 글의 묘한 울림이다. 그 글은 하릴 없이 책만 읽고 있다는 생각에 시달리는 나를 위로하는 글이다.

‘‘마음이 소금밭인데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다’에는 도피처, 대피소라는 묘하게 낭만적이지만 실상은 고통과 연루된 단어가 나온다. 이명원은 향기 없는 젊음의 대피소(24 페이지)인 도서관 지하서고를 드나들었고 책상이 없는 자취방의 다락방을 책들의 피난처(157 페이지)로 삼았다. 그 난장판과도 같은 책들의 호위 속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었으며 읽어야 할 책과 자료가 넘쳐났지만 정리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는 이명원의 글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나는 사유, 현실, 글쓰기란 글에서 다시 한번 동질감 같은 감정을 느꼈다. “나에게는 쓴다는 행위가 있은 연후에 사유가 가능해지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나를 심각하게 만드는 것은 그 쓴다는 행위조차도 컴퓨터의 도움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195 페이지) “영리한 작가들은 자신들의 작품 속에 지뢰처럼 해석의 단서들을 심어둔다. 미련한 평론가들은 그 단서들을 재구성하면서 작가가 의도했던 바로 그 방식대로 작품의 의미를 추론하고 평가한다. 우스꽝스러운 담론의 축제가 아닐 수 없다.“(197, 198 페이지)는 글을 보라. 이 한 문장이 느끼게 하는 것은 질서이다.

특정한 이념을 기반으로 작품을 평가하다 보면 동일한 작품이 전혀 다른 맥락의 평가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는 글 역시 도움이 많이 되는 글이다. 서정주의 어떤 시에 대해 여러 평가를 내린 소설가 김형경의 사례가 생각난다.(‘만가지 행동’ 참고) 문학작품에서 약간의 환상을 찾고 싶은 욕구는 현대독자에게도 여전히 강렬한 성향인 듯 하지만 투명한 이념이란 것 역시 환상의 한 종류가 아닌가(200 페이지)란 글 역시 음미할 만하다.

이명원은 감동의 원인을 정교하면서도 부드럽게 설명하는 존재를 비평가라 부른다.(220 페이지) 조지 스타이너가 이런 말을 했다. 비평의 일차적 역할은 좋은 작품과 나쁜 작품을 구별하는 일이 아니라 좋은 작품과 최고의 작품을 판별하는 일이다.(권성우 지음 ‘ 낭만적 망명’에서 재인용) 이명원은 문학이 몰락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과부하(過負荷)된 문학의 역할이 재조정되고 있다고 말한다.(271 페이지) 이명원이 말했듯 문학이 마이너리티의 자리에 처해 있지만 그것이 자동적으로 사회적 책임의 면제 논리가 될 수는 없다는 사실(272 페이지)은 문학의 어려움과 책임감, 위상 등을 생각하게 한다.

이명원은 비평이 읽히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간추린다. 1) 인식의 새로움에 기여하는 비평을 발견하기 힘들다. 2) 육성(肉聲)이 담겨 있는 비평을 찾기 힘들다. 3) 지식잡화상과 같은 비평가의 태도도 문제다. 4) 비평적 평가에 대한 불신도 문제다. 5) 비평에 있어서의 현장성 또는 논쟁성의 상실도 문제다. 상식의 눈으로 바라보아도 능히 해독 가능한 일차원적 문제를 체감할 수 없는 추상적 개념어로 덧칠하는 것이 마치 비평의 의무인 양 현학성을 극대화함으로써 독자의 무관심이란 복수를 초래하는 것(276 페이지)이 비평가 개인의 문제라면 한 가지 사안에 대한 개별 비평가들의 상이한 관점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관점을 수정, 보충하게 하지 못하는 것(277 페이지)은 비평가들의 문제이다.

전자는 현학, 후자는 몰개성의 문제이다. ”비평가는 작품을 분석함으로써 자기의 내면을 고백하고 작품이 끝내 숨기고 있는 새로운 의미를 발굴하고 촉발한다. 그러나 그 과정은 땅속에서 광물을 발굴하는 행위라기보다는 발굴된 광물들을 분해하고 결합하는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광석을 창조하는 연금술사의 행위에 가깝다. 그때 비평은 작품에 몰입하면서 그것과 투쟁하고 작품으로부터 소외되면서 작품 속에 편입된다. 그러므로 비평은 저주받은 글쓰기이다.“(297 페이지) 이 글은 내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절묘한 글이다.

비평에 깃들인 근본적인 불가능성을 가장 예민하게 사유한 비평가로 이명원은 김현을 꼽는다. ‘타는 혀’(2000년 9월)를 통해 김현을 비판한 이명원이 생각나기도 하는데 요는 비판과 배우고 수긍하는 것은 별개라는 점이다. 어느 하나에 치우치면 무비판적 매혹이나 청산주의적 태도 이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애정이 있어야 아니 적어도 동료의식이 있어야 비판도 가능한지도 모르겠다. 김윤식과 가라타니 고진을 언급하며 비평의 위상에 대해 설파한 ‘고백, 숭고한 글쓰기의 책략’은 내가 읽은 (몇 안 되는 범위 내에서이지만) 최고의 글이다.

비평가가 아니지만 비평 정신을 기웃거리는 사람으로서, 비판적이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일방적인 경도(傾倒) 또는 매혹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냐 할 수도 있겠지만 이는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지적 깊이의 문제이다. 비판, 그리고 그를 발판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 지적 깊이가 담보되어야 하는데 그러기에 내 공력(工力)이 너무 초라한 것이다. 어떻든 다시 읽고 또 읽을 책이라는 점만은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