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서점 인터파크도서

한국 현대사 3부작(‘태백산맥‘, ’아리랑‘, ’한강‘)에서 정글 자본주의에 대한 묘사로.. 이 이행(移行)의 주인공은 주지하듯 작가 조정래이다. 중국 중심의 정글 자본주의를 분석한 ’정글 만리‘는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모한 중국 경제의 현주소를 균형 있게 바라본 작품이다. 저자가 말했듯 중국의 세계 시장화는 수출에서 내수 중심으로 전환(395 페이지)한 결과이다. 그렇다면 1978년 경제를 개방한 이래 30년 넘게 매년 20 %대의 초고속 압축 성장을 한 중국을 정확하게 지시하는 말은 무엇일까?

두 말한 나위 없이 기회의 땅이자 정글 자본주의의 중심지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자신들만의 자본주의(108 페이지)를 운용(運用)하며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적(338 페이지)이라는 평을 듣는 중국을 정통 사회주의 체제로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중국은 공산당원의 수가 8500만을 헤아리며 (공산)당은 정부를, 정부는 법원을 지배하고 있다.(98 페이지) 중국의 특별함은 이런 점들에서 기인한다. 중국이라는 국가를 이루는 국민들에 초점을 맞추면 그 양상은 다소 다르게 나타난다.

공산주의 혁명 이후에도 돈과 관련해서는 전근대적인 믿음(미신)을 버리지 못한 중국 사람들은 악귀를 몰아내고 액운을 막아주며 행운과 부귀영화를 가져다준다는 빨간색을 선호(91, 92 페이지)하며 돈을 번다는 뜻의 ’파차이‘의 파와 얼핏 혼동할 정도로 같이 들리는, 빠로 발음되는 8에 대해 집착하고 열광한다.(107 페이지) 중국이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2008년 8월 8일 8시 8분에 개회한 것은 그 한 예이다.

전대광, 전유숙, 김현곤(이상 한국), 샹신원, 우치추(이상 중국), 도요토미 아라키, 이토 히데오, 이시하라 시로(이상 일본) 등 ’정글 만리‘의 등장 인물들은 정글 같은 자본주의 체제, 그 중에서도 중국 상하이를 중심으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꽌시(인맥, 연줄, 배경)를 찾거나 맺고 자식의 전과(轉科: 경영학에서 중국 현대사로의)를 극구 반대하고 공생(정실자본주의)을 위해 분주한 행보를 보인다. 이들 외에도 양악 수술 실수로 직장 여성을 죽인 뒤 살인 의사라는 항의에 시달리다가 상하이 세관의 주임인 샹신원과 꽌시 관계를 맺고 있는 전대광과 연(緣)이 닿아 한국을 떠나 상하이에 안착한 서하원, 불쌍한 농민공 부부 쑹칭과 장완싱 등이 있지만 그들은 너무 순진하거나(서하원) 비참한 희생자(농민공 쑹칭)일 뿐이다.

특히 전대광의 주도에 따라 의료 사고 사실을 비밀로 한 채 샹신원의 사촌이 운영하는 상하이의 한 병원에서 성형수술을 하며 재기를 노리는 서하원의 행보는 관심을 끈다. ’정글 만리‘는 정글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물론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중국의 실상을 총괄했다는 점에서 남다르다. 조정래 작가의 작품 목록 가운데 ’박태준‘이란 책이 눈에 띄는데 작가가 말하는 박태준은 포스코의 명예 회장이었던 故 박태준 회장을 말한다. 그는 지난 2007년 3월 한국이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 끼어 샌드위치 신세가 될 것이라는 말을 했다. 이른바 샌드위치 위기론이다.

그런데 우석훈, 박권일 두 저자는 그것에 대해 반박 불가능한 명제라는 말을 한다. 그들의 설명인 즉 경제학자들은 이런 위기를 진실일 경우와 진실이 아닌 경우로 나누어 각각의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한국의 기업이 언제 샌드위치가 아닌 적이 있었냐며 그런 점에서 샌드위치 위기론은 하나마나 한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말한다.(2007년 개마고원 출간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 15, 16, 18 페이지) 두 저자의 책이 나온 지 6년이 지난 셈인데 물론 박태준 前 회장의 샌드위치 위기론과 ’박태준‘, 그리고 ’정글 만리‘의 연관성을 헤아릴 필요는 없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중국이 G2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이다. 그러나 중국이 G2인 것은 외환 보유고에 따른 경제력으로부터 산출된 것으로 1인당 GDP 4,500 달러(308, 309 페이지)를 보면 중국은 여지 없이 개발도상국 수준의 국가이다. 특기할 것은 중국이 전체 인구의 8.5 % 정도인 1억 2천만이 1인당 GDP 1만 달러를 넘었고 4 % 정도인 6천만이 1인당 GDP 2만 달러를 넘었다는 점이다.(395 페이지) 현격한 빈부 격차를 보여주는 수치이다. 저자가 말했듯 중국은 교통사고 사망자 수, 범죄자 수 등에서 가히 범람이라 할 수치를 보이고 있다. 그리고 짝퉁 천국, 불법 복제 천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하지만 저자가 말했듯 인구 비례로 따지면 우리나라보다 적고 짝퉁이나 불법 복제는 자본주의 전체 역사를 고려해 판단할,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상하이 주재 한국 종합상사의 부장인 전대광과, 경영학과에서 중국 현대사를 연구하는 역사학과로 전과하려는 베이징 대학 학생인 (전대광의) 조카 송재형의 대화 속에, 그리고 일본 종합 상사의 직원들의 대화 속에 결코 만만치 않은 양과 수준의 진기한 사실, 정보, 자료들을 담은 ’정글 만리‘는 지적 유희를 즐기기에 마땅한 높이를 갖춘 작품으로 보인다.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중국이 호텔을 짓던 초창기인 20년 전 이탈리아나 프랑스 설계에 독일 기술을 동원했는데 10년 쯤 후 그 기술을 자체 습득한 것(31, 32 페이지)이나 유인 인공 위성 발사 성공과 시속 350km로 달리는 고속철 허셰호 등은 중국이 싸구려 국가라는 오명을 벗게 하는데 충분해 보인다.

더구나 중국이 철강 산업에서 일본의 거절을 당한 뒤 독일과 연합해 자국은 G2가 되었고 독일은 EU 헤게모니를 장악했다는 이야기(168 - 170 페이지)은 흥미롭기까지 하다. 중국에 한한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갖추어야 할 것은 대국굴기(大國堀起: 대국은 일어선다란 뜻)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패권적 힘인 중국의 잠재력(334, 335 페이지)에 대한 대처라고 말하고 싶다. 자본주의 일반의 문제인가, 아니면 개별 국가의 특수한 문제인가 등을 따지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생생한 현장감과 리얼한 인물 묘사가 돋보이는, 소설의 활용 가능성을 극명히 보여준 ’정글 만리‘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