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다양한 귀신론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것은 음양관(陰陽觀)에 바탕을 둔 동양 전통의 귀신론일 것이다. 이에 의하면 우주 천지간에 존재하는 기(氣)는 양기의 영(靈)인 혼(魂)과 음기의 영인 백(魄)으로 나뉘는데 죽음 즉 양기의 부산(浮散) 이후에도 하늘에 올라가지 못한 음기가 인간 세상에 여러 영향을 미친다, 이것을 인간과 영의 상호작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주희의 경우 귀(鬼)는 굴(屈)하고 신(神)은 신(伸)한다는 말을 했는데 이는 사람이 죽음을 맞이하면 인간 안에서 인간 밖으로 또는 위로 상승해가는 혼(魂)과, 땅으로 흩어지는 백(魄)에 대한 논의에서처럼 일정한 방향성을 띠는 것이다.


‘우리에게 귀신은 무엇인가’는 이렇듯 다양한 불교, 기독교, 천도교, 유교, 무속 등의 귀신론울 한데 묶은 책이다. 믿는 만큼 경험한다는 제목의 총설에서 이찬수(종교문화연구원장)는 귀(鬼)를 땅에 가까운 음적(陰的) 혼으로, 신(神)을 양의 세계로 편입해 들어가는 양적(陽的) 혼으로 분류했다. 이찬수는 가장 원초적인 종교 현상을 영, 혼 등에 기반한 넓은 의미의 귀신 신앙이라 정의한다.(19 페이지) (귀신은) 믿는 만큼 경험한다고 전제한 이찬수의 논의에서 주된 이슈는 귀신 체험이 귀신을 상상하고 그 상상에 동의하는 사람들에게만 일어난다는 것(232 페이지)이다.


이찬수는 고야스 노부쿠니가 한“귀신이 사는 곳은 무엇보다 사람들이 하는 말 속”이라는 말을 소개하며 귀신을 몸을 넘어서는 나라는 존재가 나를 바꾸듯 몸을 넘어서는 나라는 존재가 일반화함으로써 영 또는 영혼 등으로 생성되는 것이라는 말을 한다.(43 페이지) 이찬수는 더 나아가 몸이 내 주변의 여러 요소들의 상호 작용의 결과물이듯 영혼 역시 관계적이며 과정적임을 전제하며 영혼은 상상하는 나와 상상되는 나의 어느 한 쪽에 살지 않고 그 사이 즉 영혼의 집에 존재한다고 말한다.(45 페이지) 이찬수의 말은 영혼이 영혼 담론을 유통시키는 사람들 사이에 현존하듯 귀신 역시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과 그 증언을 긍정하는 사람 사이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귀신이 아닌 귀신 담론이 존재하는 메커니즘에 대한 해명인 이찬수의 말은 우치다 다츠루가‘일본 변경론(邊境論)’에서 한 석화지기(石火之機)라는 말을 연상시킨다. 석화지기란 돌을 탁탁 치자마자 빛이 나오고 치는 그대로 불이 일어나는 즉 틈새가 없는 현상을 말한다. 물론 석화지기가 간발(間髮)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만 관건은 석화지기를 생성의 장(場)으로 삼는 자만이 석화지기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인 한에서는 소통의 여지는 충분하다 하겠다.


이찬수에 반(反)해 정순덕(무녀)은 귀신을 상상하며 살지 않음에도 귀신을 경험하는 사례들을 언급한다. 이에 김동규(브리티시 컬럼비아 대학교 박사 수료)는 귀신이 귀신 담론 속에 존재하고 인간의 상상력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한다는 이찬수의 견해에 동의하는 한편 아내인 정순덕이 신내림을 받았을 당시 가정환경 자체가 무속과 일정한 거리가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236 페이지)하며 무속에서의 귀신은 현실보다 더욱 현실적으로 종교의 의미론적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중심 상징으로 기능한다고 말한다.(92 페이지)


법현(태고종 열린선원 원장)은 불교의 귀신에 관한 개념과 사고는 일정 틀이 없다는 말을 한다.(142 페이지) 일정 틀이 없다는 말은 붓다의 무아(無我: 자기라고 할 만한 특질이 없으며 시간이 흘러갈수록 변화해 간다는...)의 가르침에 근거한다. 법현의 말은 영혼도 몸의 성장과 함께 성장하고 몸의 변화와 함께 변화한다는 이찬수의 말과 상응한다. 법현은 귀신은 낮은 수준의 존재라 말하며 그들에게도 수행의 기회를 주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해야 한다고 전제한 뒤 다만 귀신의 존재를 과장하거나 조상 또는 가족의 천도(遷度) 필요성을 강조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144 페이지)


여러 논의 중 가장 이슈적인 것은 최대광(정동제일교회 목사)의‘악령과 귀신론’이다. 최대광은 이 글에서 신(God)이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체하는데 어떻게 악(惡)이 존재하는가?란 질문을 던진다.(157 페이지) 그는 악을 선의 결핍(어거스틴)이나 무지로 정의하는 낙관적 이해는 낭만적일 뿐이라고 비판한다.(160 페이지) 그는 악의 문제를 신정론(神正論)과 결합해 신정론의 모순점을 지적한 존 셀비 스퐁의 말을 인용한다. 스퐁에 의하면 하나님이 초자연적 기적의 능력을 소유하고 이용한다는 주장은 비도덕적일 만큼 변덕스런 신을 만들고 하나님에게 초자연적 능력이 없다는 주장은 무능할 만큼 나약한 신을 만든다.


최대광의 논의는 기독교가 말하는 귀신은 인간의 영이 아니라 루시퍼와 그의 추종자인 천사를 총칭하는 사탄이며 죽은 네피림의 귀신인 악령이라는 말로 요약가능하다.(168 페이지) 최대광은 철학적 추상으로 악이 존재(“악은 선의 결핍“)한다면 왜 이렇게 세상에 실질적인 악이 존재하며 왜 존재하지 않는 선의 결핍으로서의 악을 위해 예수가 죽어야 했는가?(171 페이지)란 아포리아로 우리를 부른다.


천도교의 귀신론에서 특이한 점은 살아서도 귀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214 페이지) 여기서 말하는 귀신은 모든 것을 아는 지혜를 가진 자이다. 귀신이 곧 한울님이며 한울님은 또한 나로 나는 본래 귀신이며 죽어서 귀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도 죽어서도 귀신 자체라는 논의 역시 특이하다. 천도교에 의하면 귀신은 개체가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개체신이 아니라 모든 마음 작용들과 모든 기운 작용들 자체이다.(219 페이지) 신위(神位)를 자기를 향해 돌려놓은, 향벽설위(向壁設位)가 아닌 향아설위(向我設位)는 인내천(人乃天) 사상의 한 표현이다.


'우리에게 귀신은 무엇인가‘는 발제 및 토론자들의 열린 세계관이 돋보이는 책이다. 레비나스는 죽음은 존재의 종말(무)로 귀착되지 않는다는 말을 했다. 그렇기에 죽어 구천을 떠돌고 온 세상을 헤매는 유령(幽靈)과 원혼(冤魂)이 존재할 것이다. 이찬수가 말했듯 요절, 객사, 횡사가 아닌 죽음, 소속감과 유대감이 분명한 죽음, 이름과 신분 등이 살아있는 자들에 의해 확인되는 죽음 등 까다로운 호상(好喪)의 조건(27 페이지)은 떠도는 혼령의 무한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혼탁(混濁)하고 무도(無道)하지 않은 세상이 없었다는 점에서 호상은 지난한 일이다. 귀신도 교화의 대상이라는 법현의 말은 부단한 수행으로 원망하고 탐하는 자신부터 다스려야 한다는 말과 함께 수용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수행만으로 바꿀 수 없는 좋은 세상과 나의 접점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것인가? 이것이 귀신론을 통해 들여다보는 세상과 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