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에서 4할 타율이 나온 것은 원년(元年)인 1982년 단 한 차례이다. 4할은 미국에서도 1941년 테드 윌리엄즈(0.406) 이후 재현되지 않고 있는 기록이다. 일본은 기록이 전무하다. 장기 시리즈인 프로야구에서 4할 타율은 상당히 어려운 기록이다. 그렇다면 4할 실종의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최고의 타격 재능을 가진 교타자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선발, 구원, 세이브 등 세분화, 전문화된 투수 시스템 때문일까?


'백인천 프로젝트’는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와 시사인의 천관율 기자 등 전문가들과 집단 지성의 형식을 갖춘 백인천 프로젝트가 그 이유를 밝힌 답이다. 백인천 프로젝트란 이름에서 거론된 백인천(MBC 출신. 현 한일유소년 야구육성 이사장)씨는 프로야구 원년 유일하게 4할(0.412)을 기록한 타자이다. 그런데 당시 백인천 선수의 기록은 오랜 일본 프로야구 경력(특히 백인천 선수는 1975년 일본 프로야구 수위타자였다.)을 바탕으로 경험이나 실력 면에서 한 수 아래인 투수들(삼성, 롯데, 해태, 삼미, OB)을 상대로 거둔 성적이어서 순도가 낮다고 할 수 있지만 놀라운 기록임에는 틀림없다.


그런데 당시 백인천 감독겸 선수가 수준급의 박철순 투수(OB), 이상윤 투수(해태), 이선희 투수(삼성) 등에 대해 어느 정도의 타율을 기록했는지 궁금하다. 4할 실종의 답이 제시된 것은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제이 굴드에 의해서이다.‘풀 하우스’란 책에서 그가 내놓은 답은 4할 실종은 시스템의 진화적 안정화가 낳은 결과라는 것이다. 특기할 것은 시스템의 진화적 안정화가 4할 실종 뿐 아니라 1할 실종(이 경우 실종이라는 부정적 의미의 단어를 쓰는 것이 적당하지 않아 보이지만 대체할 단어가 없어 그냥 쓴다.)도 낳았다는 것이다.


백인천 프로젝트의 결성 및 활동은 야구팬인 정재승 교수가 역시 야구팬(굴드는 뉴욕 양키스의 열렬한 팬이었다.)인 스티븐 제이 굴드의‘풀 하우스’에 나오는 4할 실종의 미스터리에 관한 글을 인상적으로 읽고 그 내용을 한국 야구에 적용하기 위해 다중의 힘을 요청한 데서 비롯되었다. 그 태스크 포스팀이 모여 한 것은 지난 30여년의 한국 프로야구 기록의 전량분석(컴퓨터에 의한 야구 데이터의 통계적 연구: sabermetrics)인 것이다.


4할 타자가 사라진 것이 오히려 프로 야구 경기의 전반적인 수준 향상을 의미한다는, 모순적으로 들리지만 설득력 높은 굴드의 가설이 이렇게 한국 야구팬들까지 움직인 것이다.(백인천 프로젝트의 의의는 위키피디아적 편집 수준의 작업을 넘어 과학 지식의 집단 연구 형태를 취했다는 데 있다.) 굴드에 의하면 평균 타율 4할을 따로 떼어서 정의할 수 있는 것으로, 그것이 사라지면 반드시 그에 대한 특별한 설명이 필요한 하나의 실제로 취급하는 것은 오류이다.(‘풀 하우스’141 페이지)


굴드는 시스템 전체 또는 변이들로 가득찬 풀 하우스가 가장 적나라한 현실이며 평균이나 최대값들은 전체의 움직임에 대한 터무니 없는 오해를 일으키거나 극히 편파적인 견해를 제공한다는 말을 했다.(‘풀 하우스’142 페이지) 굴드는 미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평균 타율은 20 세기 내내 태산처럼 확고부동했다는 말을 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2할 6푼의 평균 타율에서 20 세기 내내 머문 것이다.


결론은 평균 타율은 2할 6푼에서 움직이지 않았지만 변이(變異: 같은 종에서 성별, 나이와 관계없이 모양과 성질이 다른 개체가 존재하는 현상. 외부 요인의 작용에 의한 환경 변이, 유전자의 변화에 의한 돌연변이가 있다.)가 양쪽(왼쪽 즉 1할대 타율과 오른쪽 즉 4할대 타율)으로 넓게 나타나던 것이 실력이 상향 평준화 즉 안정화된 결과 타율이 종 모양의 꼭지점 근처에 조밀하게 분포되는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이런 설명은 한국에도 그대로 들어맞는다. 사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4할 타율이 실종된 것을 야구 수준의 하락으로 보는 것은 투수의 능력을 고려하지 않은 결과 무리하게 내린 결론이다. 궁금한 것은 한국의 경우 4할 타율이 나온 1982년 이후 수준이 별 차이가 없었던 1983년(원년 다음해) 최고의 교타자로 불렸던 장효조(작고. 전 삼성: 이 선수는 1982년 세계 야구 선수권 대회 출전 이후 프로에 데뷔했다.) 선수 같은 경우 어떤 이유로 4할 타율에 성공하지 못했는가, 이다. 이 경우 개인 기량에 그 원인을 두어야 할 것이다.


물론 뒤에서 언급하겠지만 동기 부여의 부재를 주요 원인으로 지목한 전문가들이 몇 있다. 시사인 기자 천관율은 백인천 프로젝트에서 만난“왜 4할인가?”란 질문이 자신을 야구를 최초로 발명한 사람의 위대함을 찬양하던 창조론자에서 야구를 변덕스런 관중이라는 선택압에 적응(適應)한 게임으로 보는 진화론자로 전향시켰다는 말을 했다.(77 페이지) 이는 4할 타율을 하나의 실체로 파악하는 것을 플라톤적 사고(이데아적 사고)로 본 굴드의 견해(‘풀 하우스’114 페이지)를 떠올리게 한다.
 

천관율이 말했듯 굴드가‘풀 하우스’를 쓴 것은 야구 이야기를 도입 삼아 자신이 천착해온 진화론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이다.(138 페이지) 과학기자 윤신영은 백인천 프로젝트라는 집단 지성을 가동한 것을 배명훈의‘타워’라는 소설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147, 148 페이지) 나는 윤신영의 글(야구는 과학이다?!)을 읽으며 백인천 프로젝트 같은 기획이 타율 뿐 아니라 장타율과 홈런 등에 대해서까지 가동된다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데이터도 중요하지만 야구의 물리학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아울러 했다. 가령 저속구(시속 150㎞ 강속구 못지않게 척척 삼진을 잡아내는 유희관의 시속 130㎞ 초중반대의 속구)라는 말을 유행시킨 유희관(두산 투수)에 대해 우리는 야구의 물리학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그가 현재 8승을 기록한 비밀은 공끝 즉 분당 회전수에 있다. 유희관이 던지는 속구의 분당 회전수는 2412.51번으로 돌직구로 불릴 만큼 강력한 구위를 자랑하는 오승환의 속구 분당 회전수인 2875.29회에는 못 미치지만 대부분 2100 ~ 2300회의 회전수를 보이는 시속 145㎞ 이상의 투수들은 물론 류현진(LA 다저스)의 2300회 이내보다 많은, 놀라운 회전수이다.


참고로 유희관의 속구 상승 무브먼트는 31.63㎝, 좌우 무브먼트는 13.03㎝이다. 상하 무브먼트가 10㎝라는 의미는 공이 10㎝ 떠오른다는 의미가 아니라 회전하지 않고 중력의 영향만 받은 가상의 궤적에 견줘 10㎝ 높게 들어온다는 뜻이다. 타자 입장에서는 상승 무브먼트가 높은 공을 만날 때면 공끝이 살아 쭉 뻗어온다는 인상을 받는다는 것이다.(2013년 8월 30일 한겨레신문‘뚝 떨어지는 서클체인지업이냐, 맹렬회전 저속구냐’참고)


야구 현장의 목소리란 글에서 MBC 스포츠 PD인 이민호는 4할 타자가 나올 확률이 0.00723퍼센트에 불과하다는 분석을 소개한다.(211 페이지) 시즌으로 환산하면 346 시즌에 한 명 나올 수준이라는 것이다. 2012년 시즌 4할 문턱에서 좌절한 김태균(한화)은 4할을 노릴 만한 타자로 김현수(두산)와 이용규(KIA) 등 두 명의 좌완 교타자를 꼽았다.(220 페이지) 양준혁(은퇴. 전 삼성)은 4할을 절대 가능하지 않은 것으로 규정하며“원년의 백인천 감독님처럼 80경기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 분의 업적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본인이 감독이라 페이스 조절이 가능한 위치에 있었지 않은가. 하지만 오늘날처럼 133 경기라면 절대 불가능한 미션.”이라 말했다.(225 페이지)


양준혁은 구속(球速), 구종(球鍾) 등애서 과거와 비교해 월등히 수준이 높아진 최근의 투수들의 위상을 거론한다. 양준혁이 지적한대로 이슈를 만들려는 언론의 문제도 거론해야겠다.(어떤 선수가 4할을 유지하면 어김없이 4할 가능성을 운운하는 언론은 너무 성급할 뿐 아니라 선수에게 심적 부담을 준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양준혁은 역대 최고로 장효조 선수를 꼽았다.(235 페이지) 정근우(SK)는 4할 가능성의 최대 경기수를 110 경기로 보았다.(249 페이지) 이는 1994년 이종범(해태, KIA 출신. 현 한화 코치)을 떠오르게 하는 경기수이다.


이종범은 당시 104 경기까지 4할을 유지했다. 홍성흔(두산)은 밀어치기를 할 수 있어야 4할이 가능하다고 말했다.(261 페이지) 김정준(LG 출신. 현 SBS 해설위원)은 백인천 감독이 선수로만 뛰었다면 더 대단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한다.(273 페이지) 이는 감독이라 페이스 조절이 가능한 위치에 있었기에 좋은 성적을 낸 것이라는 양준혁의 말과 상반된다.(흥미롭다.) 김정준은 장효조의 4할 달성 실패(?)를 동기 부여의 부족으로 본다.(282 페이지)


풀타임 2년차인 박병호(넥센)는 올시즌 9월 1일 현재 타율 3위(0.319: 370 타수 118안타), 홈런 1위(26개), 타점 1위(85), 득점 2위(72), 안타 4위(118), 출루율 1위(0.435), 장타율 1위(0.573) 등 최고의 할약을 보이고 있다.(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수치인 OPS는1.008로 수퍼스타라 할 수 있다.) 박병호는 원년 투수들의 구종이 단조로웠다는 말을 한다.(292 페이지) 박병호는 메이저리그에서는 타율이 2할 6푼이어도 35홈런, 120타점을 기록하면 정말 대단한 선수로 인정받는다는 말을 한다.(296 페이지) 인상적인 이야기이다.


타율은 정교한 볼거리를 제공하지만 스몰 베이스(이런 단어가 있는지 모르겠다.)을 만드는 주 요인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용달 코치(MBC 출신, 현 KIA 코치)는 백인천 선수는 투수가 어떤 구종을 던질지 폼에서 70퍼센트 이상 알고 쳤다는 말을 한다.(301 페이지) 김정준이 장효조의 4할 달성 실패를 동기 부여의 부족으로 본 것처럼 김용달 코치 역시 목표를 두지 않은 것에 둔다.(306 페이지) 박흥식 코치(MBC 출신. 현 롯데 코치)는 이승엽(삼성)이 홈런 타자가 되지 않았다면 4할을 장담하진 못하겠지만 최고의 교타자들인 장효조 선수나 이종범 선수들에 비해 나으면 나았지 못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말을 한다.(315 페이지)


박흥식 코치는 장효조 선배가 다시 돌아온다면 정말로 4할을 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4할은 퍼펙트 게임보다 힘들 거라는 말도 한다. 야구 칼럼니스트 손윤은 이종범은 모든 걸 갖췄지만 파워가 부족했고 양준혁은 은근히 주력도 갖추었지만 툴 플레이어(타격정확도, 타격의 파워, 수비능력, 송구능력, 주루능력을 갖춘 선수)라기보다 순수한 타자에 가까웠으며 박용택(LG)은 준수하지만 최상급이라기엔 뭔가 아쉽고 김현수(두산)의 장점은 장타력이 아니라 히팅 능력에 있다고 말한다.(326 페이지) 요즘 김현수는 홈런을 많이 노린다. 바람직한 현상이다. 타율도 좋지만 장타력이 더 중요한 것이다.
 

손윤은 백인천 선수의 원년 4할의 한 요인으로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때문에 좋은 투수들이 프로에 데뷔하지 않은 것을 들었다.(328 페이지) 최동원(롯데 출신. 작고), 김시진(삼성 출신. 현 롯데 감독), 임호균(삼미 출신) 등이 그들이다. 손윤은 메이저 리그가 타고투저의 양상을 보이지만 4할이 나오지 않는 것은 장타의 가치가 훨씬 높은 트렌드 때문이라고 말한다.(329 페이지) 메이저리그 전문가 김형준은 모든 스포츠 중에서 가장 어려운 것을 타격이라고 말한다.(344 페이지) 흥미로운 것은 백인천 한일유소년 야구육성 이사장의 말이다. 홈런과 타율 중 하나만 고르라면 홈런이라는 말이다.(368 페이지)


나의 지론(持論)과도 부합하고 메이저리그의 추세와도 통하는 이야기이다. 홈런은 줄지 않고 타율은 줄어든다는 말이 백인천 한일유소년 야구육성 이사장의 설명인데 이 인상적인 말에는 많은 생각 거리가 들어 있다. 타수(打數)가 늘면 타율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을 감안하면 4할 달성은 극히 어렵다는 소리이고(특히 오늘날처럼 130 경기 이상을 치르는 상황에서라면 더욱) 관리하지 않은 이상 아니 관리해도 타율은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의미가 들어 있는 듯 하다. 반면 홈런은 관리가 불가능하다. 반면 시시각각 변하는 타율은 불안감을 주는 것은 아닐까? 흥미와 과학적 만족, 그리고 최고의 스포츠 프로 야구에 대한 종합 드라마, 그것이'백인천 프로젝트'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