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마음을 놓다’. 제목이 참 참신하고 색다르다. 그것은 그림을 통해 마음을 추스르고 새 힘을 얻을 수 있음을 전제한 제목이다. 정신분석의 로르샤흐 테스트가 있고 미술 치료가 있지만 보는 것만으로 또는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 위로를 받을 수 있고 마음의 짐을 내려 놓을 수 있다는 사실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저자 이주은님은 언어학과 서양 미술사를 전공한 남다른 이력의 미술인이다. 그런 사정을 반영하듯 저자는 그림이 더 많은 이야기들을 담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을 한다.

 

 

저자의 그런 문제의식은 인간의 이성은 감정을 통제할 만큼 월등하지는 않다(21 페이지)는 말이나 이성이 아니라 느낌이 혹시 해결책이 아닐까(23 페이지), 사랑은 이성의 작동을 중단시켜 버릴 때가 있다(27 페이지)는 말들로 변주(變奏)된다.‘그림에, 마음을 놓다’는 저자가 그림과 영화와 몇 편의 희곡 등을 넘나들며 일상에서 만나거나 짓는 갖가지 심리적 문제들을 분석하고 해결책을 제시한 책이다.

 

 

저자가 제시한 해결책은 특별하지 않다. 마음을 한 곳에 두는 것을 지양하고 때로 자신을 객관화시켜 보라, 최고의 복수란 용서와 완전한 망각임을 명심하라, 때로는 환상 속에 숨는 것이 슬픔을 잊는 묘약이 될 수도 있다는 것 등이다. 현대인은 누구나 한 두 가지 정신적 문제들을 가지기 마련이다. 나의 경우 피카소의 연인이었던 도라(32 페이지)처럼 자의식과 자기 표현력이 강하다. 불교식으로 아상(我想)이 강하다고 해야 맞을지도 모르는 나는 얼마 전 정확하지만성격이 드세다는 말을 들었다.

 

 

책을 읽으면 알겠지만 저자가 제시한 그림과 그로부터 길어올린 설명들을 들으면 스스로 공감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알 것이다. 저자가 특정한 의도에 따라 그림들을 골랐는지 모르지만 본문에 수록된 명화(名畵) 속 인물들은 대체로 불행하고 격정적이거나 의미로 가득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의미로 가득한 삶은 부정적인 삶이기 십상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저자의 설명을 참 재미 있게 그리고 유익하게 읽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은 설명 이전에 세상은 평탄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에 대한 자각만으로도 위로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사랑보다 슬픔이 훨씬 오래되고 끈질긴 감정이라는 말을 하며 그 감정을 직접 대면하자고 말한다.(57 페이지) 이는 내 견해이기도 하다.‘그림에, 마음을 놓다’는 사랑을 다룬 1부(사랑을 두드리다), 관계를 다룬 2부(타인에게 말 걸기), 자아를 다룬 3부(잃어버린 나를 찾아서)로 이루어진 책이다.‘그림에, 마음을 놓다’는 크리스토퍼 에커스베르(Christopher Eckerberg:1783 - 1853)의‘거울 앞에 선 여자 모델’이라는 아름답고도 고혹적(蠱惑的)인 그림을 표지 그림으로 삼아 강한 흡인력을 발하는 책이다.

 

 

흥미로운 것은 자기애와 관련한 진실이다. 19 세기 프랑스의 한 수녀원의 부속 학교는 수녀들의 거울 사용을 금했다고 한다. 그 이유가 재미 있는데 그것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는 일은 자기 만족에 빠지는 일이고 사랑에 빠지기 전 단계를 의미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그림에, 마음을 놓다’는 그러나 매편의 글이 서둘러 끝나는 듯하다. 어느 면 아포리즘을 연상하게도 하고 간결미를 발하기도 한다.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읽은 저자의 말은“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행복일 수도 절대적인 존재를 만나는 일일 수도 있으며 마음의 평화일 수도 있다. 아니면 그저 단순히 알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그것은 성공일 수도 있고 사랑일 수도 있다.”는 내용의 글이다(153 페이지) 무엇 무엇일 수도 있다는 표현이 여유와 조화를 느끼게 한다. 이런 표현들에 익숙해지는 것을 통해 강한 자의식과 자기표현력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나는 관념적일까?

 

 

이미 5년이나 지난 옛 일이지만‘미술 치료는 마술 치료’란 책을 읽은 기억이 선명하다. 이 책과‘그림에, 마음을 놓다’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다. 전자가 대상자가 그린 미술 작품에 나타난 심리적 문제점들을 분석, 해설한 책이라면 후자는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매개로 작가 자신은 물론 독자들의 심리적 색채를 분석해 해결점을 제시한 책이다. 미술 외에 각각 심리학과 언어학을 전공한 두 전문가의 책을 비교하며 나는 설득력 있는 심리학 책들을 꾸준히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에게는 아직도 풀어야 할 그늘이 많기 때문이다.